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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산중공업이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에서 1조원의 긴급 유동성 지원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정말 마음이 급했나 봅니다. 두 국책은행과 계약을 체결하기도 전에 공시부터 내버렸으니 말입니다. 짠하네요.

1조원의 긴급 유동성은 크레디트라인(creditline)입니다. 실제 차입이 실행된 것이 아니라 마이너스 통장을 개설한 것이죠. 두산중공업이 필요할 때 빼다 쓸 수 있습니다. 기사에는 국책은행서 1.6조 차입이라고 되어 있는데, 나머지 6000억원은 두산중공업이 수출입은행에 외화채권을 대출전환해달라고 요청한 것이라고 하네요. 그러니까 아직 결정되지 않은 것입니다.
두 국책은행은 크레디트라인 설정을 위해 담보를 제공받았습니다. 일부 언론에 1조원에 훨씬 미치지 못하는 6000억원대의 두산중공업 지분과 두산타워 신탁 수익권이 담보로 제공되었다며, 정부가 두산중공업을 살리기 위해 원칙에 어긋난 지원을 하는 것처럼 묘사되기도 했습니다.

공시에는 총 담보제공액이 1조2000억원이라고 표기되어 있습니다. ㈜두산이 보유한 두산중공업 보통주 지분과 부동산 신탁수익권의 담보설정액은 6646억원입니다. 이중 두산중공업 보통주 지분이 얼마로 책정되었는지는 공시에 나와있지 않습니다. 3월27일 종가인 3590원을 적용하면 4076억원이 나오네요. 평가를 최근 주가로 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총 담보가치가 1조2000억원이라고 했습니다. 그럼 그룹의 오너들이 제공한 나머지 담보인 ㈜두산 지분 등의 가치가 5400억원 정도 된다는 얘기가 됩니다. 그런데, 3월27일 종가(3만8950원) 기준으로 ㈜두산 3,612,970주의 가치는 1407억원에 불과합니다. 언론에는 두산솔루스, 두산퓨얼셀, 오리콤 등의 지분도 담보에 포함된다고 하네요. 각각 얼마나 담보로 제공되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습니다만, 두산솔루스(3월27일 기준 시총 5797억원)과 두산퓨얼셀(시총 2863억원)의 지분 각각 65%를 ㈜두산과 오너 일가가 보유하고 있으니 얼추 1조2000억원의 담보제공액을 맞출 수는 있을 것 같습니다. 오리콤(시총 335억원, ㈜두산 및 오너일가 지분 62%)은 별 보탬이 안됩니다.
부동산신탁 수익권은 두산그룹이 본사로 쓰고 있는 두산타워에 대한 것입니다. 건물인 유형자산이 아니라 신탁 수익권을 담보로 제공했지요. 두산타워는 이미 ㈜두산의 산업은행 차입금 4000억원에 대한 담보로 잡혀 있어서 그럴 겁니다. 그 수익권이 얼마만큼의 금전적 가치가 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두산중공업 지분과 합해 6646억원이면 2500억원은 돼야 하는데 그 정도가 될지…

2019사업연도 감사보고서에서 외부감사인인 삼정회계법인은 두산중공업 연결법인이 계속기업으로서 존속능력에 유의적인 의문을 제기할 만한 중요한 불확실성이 있다고 지적했지요. 만약 외부감사인이 '중대한 '의문을 제기할 정도의 불확실성이었다면 적정의견을 주지 않았을 수 있습니다. 감사의견은 적정의견이었습니다.
하지만 감사보고서에 제기된 불확실성은 심각한 유동성 위기를 공식화한 것이나 다름없지요. 두산중공업의 유동성 문제가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닙니다만, 위기 상황까지 몰렸다는 걸 감사보고서는 시사하고 있습니다.
감사보고서 주석 38은 두산중공업의 유동성 문제를 간략히 기술하고 있습니다. 연결기준 유동성차입금이 7조4000여억원에 이르고, 유동부채가 유동자산보다 4조4000억원 이상 더 많은 상황을 위기의 단면으로 제시하고 있죠. 차입금이 과도하게 많다고 계속기업으로서 존속이 어려워지는 건 물론 아닙니다. 그 차입 원리금을 자체적으로 갚을 수 있다는 믿음이 흔들릴 때 '의문'이 제기되는 것이죠. 감사보고서는 연결실체가 2019년에 1044억원의 당기순손실을 기록했고 2014년부터 손실이 누적되어 왔다고 설명합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두산중공업 연결실체 전체가 채무상환 능력을 상실해 가고 있다고 보기는 좀 어려울 것 같습니다. 두산중공업 연결 법인이 돈을 전혀 벌지 못하고 있다고 보는 것도 무리가 있습니다.

두산중공업 연결법인은 2019년에 15조6000억원 이상의 매출을 기록했고 1조원 이상의 영업이익을 창출했습니다. 그런데 영업외에서 그 이상의 순비용이 발생해 순손실 1044억원이 된 것이죠. 연결 기준을 두산중공업은 2016년 이래 영업흑자를 4년 연속 달성해 오고 있었고 매년 흑자 규모가 커져 왔습니다.
자회사 중에 똘똘한 두산인프라코어가 버티고 있는 덕분이죠. 두산인프라코어는 2019년에 8400억원의 영업이익과 3957억원의 당기순이익을 냈죠. 실질적으로 두산그룹을 먹여 살리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유동성 문제의 발생지는 모기업인 두산중공업, 그리고 지난해 말 100% 자회사가 된 두산건설입니다. 심지어 두산중공업과 두산건설도 영업으로는 이익을 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결 기준으로 1044억원의 순손실을 기록한 것은 영업외적인 비용 때문이죠. 두산중공업의 경우 지난해 영업외 손실이 무려 7400억원이 넘습니다.
두산중공업의 영업과 재무를 자세히 살펴보기 전에 이번 유동성 위기의 방아쇠를 당긴 것이 무엇일지를 먼저 볼까요. 점점 줄어드는 현금 창출 능력과 점점 무거워지는 원리금 상환부담에 결정타를 먹인 사건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전환상환우선주(RCPS)의 상환입니다. 지난해 12월 두산중공업은 1196만여주의 우선주를 상환합니다. 이 우선주는 KDB트리니티디에이치아이씨라는 사모펀드가 보유하고 있던 것인데, 펀드 이름만 봐도 산업은행이 개입된 펀드라는 걸 알 수 있죠.
두산중공업은 우선주 상환을 위해 1주당 3만2225원, 총 3856억원의 현금을 지불해야 했습니다. 우선주는 2014년에 3730억원 규모로 발행되었는데, 우선 배당률이 3.3%였습니다. 아마 발행가액에 우선주 배당액을 더해 상환이 이루어졌을 겁니다.
영업으로 현금을 창출하는 능력이 크게 위축되어 가던 두산중공업에게 3856억원은 매우 큰 돈입니다. 유상증자와 차입금을 합해 연간 8000억원 이상을 조달했는데 절반에 가까운 돈이 우선주 상환에 쓰인 셈이죠. 그 바람에 보유 현금도 연초 5275억원에서 연말에는 3458억원으로 크게 줄었죠.
우선주에는 콜옵션이 붙어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두산중공업이 콜옵션을 행사해서 상환을 한 것이죠. 두산중공업은 없는 살림에 왜 콜옵션을 행사했을까요? 다음 편에서 좀 더 자세히 이 우선주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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