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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산중공업이 차입금을 순상환한 해는 별로 없습니다. 2005년 이후 5번 뿐입니다. 가장 최근에는 2018년 2533억원을 순상환했지요. 영업을 해서 번 돈으로 설비자산에 투자하고 이자내면 남는 게 없으니 그럴 수 밖에 없죠. 오히려 매년 계열사 지분을 인수하는데 필요한 자금을 구하기 위해 은행 문을 두드려야 했습니다.
차입금 만기가 연내 돌아온다고 해서 전부 갚아야 하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만약 그렇다면 차입금이 많은 기업 대부분이 매년 생존 문제에 직면할 겁니다. 국내 기업의 특징 중 하나가 장기성 차입금보다는 단기성 차입금이 월등히 많다는 것이거든요. 그래서 평소에는 아무 문제가 없는 것 같다가도 경제위기나 금융위기가 오면 갑자기 유동성 문제에 시달리는 기업이 속출합니다.
두산중공업의 경우도 그렇습니다. 최근 몇 년동안 차입금이 늘기도 했지만, 더 심각한 건 단기성 차입금 비중이 크게 높아졌다는 겁니다. 특히 지난해에는 총 차입금이 5조원에 육박할 정도로 늘어난 데다 장기성 차입금이 줄고 단기성 차입금이 급증했습니다. 단기성 차입금이 4조2000억원대, 장기성 차입금이 7000억원대였습니다.

두산중공업이 단기성 차입금을 선호했을까요? 당연히 그건 아닙니다. 장기성 차입금의 차환이 어려웠을 것입니다. 그런데 만기도 돌아오고 신규 자금도 필요하니 결국 단기성 차입금 급증으로 이어졌겠지요.
웬만큼 사정이 나빠지지 않고서는 은행 차입금이 만기 연장에 실패하는 경우는 잘 없습니다. 대부분 담보를 잡고 빌려주니까, 담보만 충분하다면 신용등급이 좀 나빠지더라도 만기 연장은 해 줍니다.
또 차입금이 증가한다고 꼭 나쁜 것도 아니고 차입금이 준다고 꼭 좋은 것도 아닙니다. 때로는 차입금 감소가 더 나쁜 신호일 수도 있습니다. 아마 2018년의 순상환이 그럴 겁니다. 갚을 형편이 아닌데 할 수 없이 갚아야만 하는 처지였을 수 있다는 겁니다.
최근 몇 년간 두산중공업의 차입금의 변화를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유동성 위기에 몰리게 된 과정을 재무적인 면에서 이해할 수 있게 될 테니까요.

위 차트는 최근 3년 동안 어떤 차입금 늘고 어떤 차입금이 상환되었는지 알려줍니다. 유동화채무와 유동성장기부채가 3년 연속 순상환을 기록했습니다. 단기성 차입금은 2018년만 감소했고 지난해에는 크게 늘었습니다. 사채, 장기차입금, 장기유동화채무 등 장기성 차입금은 3년 연속 늘었습니다.
두산중공업은 자산유동화 채무와 연내 만기도래한 장기부채(사채,차입금 등)를 상환하기 위해 단기차입금과 사채와 장기차입금을 조달해야 합니다. 자체 현금흐름으로는 상환할 재원이 없으니까요. 그런데 지난해 사채와 장기차입금을 통한 상환재원 마련이 극히 미미합니다. 회사채 발행이 어려웠고, 금융기관들이 장기대출을 꺼렸거나 두산중공업이 단기차입을 선호했거나 둘 중 하나입니다.
기업의 신용이 하락할 때 만기연장이나 차환이 제일 먼저 어려워지는 건 금융기관이 아닌 시장성 조달(회사채, 기업어음, 자산유동화채무 등)입니다. 다수의 투자자들이 모두 동의해야 연장이 되는데, 현실적으로 불가능하죠. 게다가 담보 없이 신용만으로 조달이 된 경우라면 말할 것도 없습니다.
두산중공업이 갚아야 했던 차입금은 대부분 시장성 조달이었습니다. 미래 매출채권을 유동화한 채무, 만기도래한 공모사채와 사모사채들이 매년 상환되었죠. 상환한 사채가 4540억원에 이릅니다. 신용등급이 하락해 사채 발행이 어려우니 당연히 시장성 조달의 잔액은 크게 줄고 금융기관 차입금이 증가하게 됩니다. 여기에 은행들이 장기 대출을 꺼린다면 차입금은 급속도로 단기화 될 수 밖에 없지요.
일부 언론은 올해 만기인 차입금이 4조원이 넘는다며, 마치 그걸 다 갚아야 하는 것처럼 보도하죠. 그런데 그건 아닙니다. 문제는 담보가 없거나 이해관계자가 다수인 차입금인데 두산중공업의 경우 후자입니다. 바로 공모나 사모로 발행한 회사채죠.

그 중 가장 컸던 것은 4월 27일 만기인 외화공모사채로 수출입은행이 보증을 선 것이었죠. 신용등급이 BBB로 하락한 두산중공업에 다시 보증을 선다고 투자자 모집에 성공할 보장도 없고, 낮은 신용등급으로 외화공모 사채 발행에 굳이 나설 이유도 없습니다. 당연히 수출입은행 대출로 갈아타는 게 불가피합니다. 부도를 낼 게 아니면 수출입은행이 대출을 취급해 줄 수 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가 5000억원 규모의 신주인수권부 사채인데, 조기상환 요구가 가능하게 발행되었지요. 만기가 2년이나 남아 있지만 전량 조기상환이 예정되어 있습니다. 산업은행이 1조원의 마이너스통장(크레디트 라인)을 설정해 주었으니 그걸 뽑아 쓰게 될 것입니다. 그럼 남는 건 공모사채 500억원(9월)과 사모사채 500억원, 외화 사모사채 431억원입니다. 역시 크레디트라인에서 뽑아 쓰면 됩니다.
이 밖에는 자산유동화 채무 중 만기도래분 330억원이 있습니다. 미래 회수할 공사대금을 유동화해 발행한 것인데, 두산중공업의 공사대금 회수가 330억원 이상은 충분히 가능할 것이니 별로 문제될 건 없습니다.

최근 채무인수한 부동산PF차입금입니다. 이 역시 자산유동화 되어 다수 투자자에게 소유되어 있었던 것인데, 원 주인이 두산중공업입니다. 남의 차입금을 대신 갚아주는 게 아닙니다. 유동화회사로 넘겨 놓아 재무제표에 나타나지 않았을 뿐이죠.
두산중공업의 급한 부채는 산업은행의 1조원과 수출입은행의 외화대출 6000억원으로 대부분 해결이 됩니다. 급한 불은 끈 셈입니다. 그런데 언제 그 불이 지펴질지 모르는 불안요인이 하나 있습니다.
당장 만기도래하지 않더라도 어느 차입금에 숨어 있을지 모르는 '약정사항'입니다. 어떤 특정한 조건에 도달하면 기한이익 상실의 이유가 되어 상환을 요구받게 되는 일이 생길 수 있습니다. 두산중공업이 보유한 크레디트라인에 그 약정사항이 있습니다.

SC제일은행에서 차입한 786억원은 신용등급이 BBB 미만으로 하락하면(투기등급이 되면) 기한이익 상실이 됩니다. 또 한 외국은행에서 차입한 2026억원은 이자보상비율이 2.5배를 초과할 경우 일정기한 내에 자본확충을 하도록 요구하고 있습니다.
재무제표 주석에 공시된 약정사항은 이 둘 뿐이지만, 다른 차입금에도 별도의 약정사항이 없다고 장담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일반적으로 특정 차입금에 걸린 약정사항이 발동해 기한이익 상실이 되면, 다른 모든 차입금에도 같은 효력이 발생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대규모 유상증자가 필연입니다. 이미 외국은행과 맺은 약정사항에 저촉이 되었죠. 신용등급의 추가 하락도 막아야죠. 신용도 개선을 위해서도 유상증자가 불가피하고, 자산매각과 유상증자 등으로 재무구조를 개선해야 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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