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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산그룹이 두산중공업 회생을 위해 확보하겠다는 유동성 목표가 3조원이라고 했습니다. 일부 언론에서는 밥캣 같은 핵심 계열사를 팔지 않고는 3조원을 만들기 어려울 것이라고 보도하고 있습니다만, 재무제표를 읽는 사람들(재읽사)의 생각은 다릅니다.
두산그룹이 자산 매각 만으로 3조원을 확보하겠다는 것이 아니고, 두산중공업에 3조원을 투입하기 위해 두산그룹이 3조원 전부를 책임져야 하는 것도 아니거든요. 가령, 두산중공업이 자산 매각을 통해 1조원 정도를 만들 수 있다고 치고, 유상증자로 또 1조원을 확충할 수 있는데, 이때 ㈜두산이 투입해야 하는 신주 인수자금은 실권주가 없을 경우 4500억원(지분율 44.86%)이 안됩니다. 물론 실권이 발생하지 않는다는 가정이 현실성이 없다고 할 수도 있지만, 그건 실제로 발행을 해 봐야 알 수 있습니다. 상황은 얼마든지 바뀔 수 있습니다.
나머지 1조원은 어떻게 확보할 수 있을까요. 꼭 자산을 외부에 매각해 조달할 필요는 없습니다. 오너 일가의 사재 출연과 계열사 구조 개편에 그 해답이 있습니다.
지주회사 격인 ㈜두산의 자산 매각이 예상보다 훨씬 큰 것 같다고 전편에 쓴 바 있습니다. 그룹의 상징인 두타빌딩, 지게차 사업부, 모트롤 사업부, 여기에 그룹의 미래로 불리던 두산솔루스와 두산퓨얼셀까지 매각 대상에 올렸죠. 더 있습니다. 두산그룹 계열사들이 골고루 지분을 갖고 있는 골프장인 두산큐벡스(라데나골프클럽)도 당연히 매물로 나오겠죠? 두산큐벡스 지분은 두산중공업이 36.33%로 가장 많은 지분을 갖고 있지만, ㈜두산도 29.19%, 두산인프라코어도 24.66%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이 밖에도 열거되지 않은 다른 자산의 유동화가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두산솔루스와 두산퓨얼셀을 제외하고도 ㈜두산이 추진 중인 자산 매각이 성공리에 이루어지면 그것만 얼추 1조원이 됩니다. 두산중공업이 1조원의 유상증자를 실시한다고 해도 5000억원 이상이 남게 됩니다. 그런데 왜 두산그룹은 두산솔루스와 두산퓨얼셀까지 매각 대상에 올렸을까요?
이미 말씀드린 바와 같이 ㈜두산 역시 유상증자가 불가피합니다. 오너 일가가 사재 출연을 약속했고, 사재 출연이 두산중공업이 아니라 ㈜두산을 향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건 절차 상의 이유일 뿐입니다. 진짜 이유는 두산그룹의 지배구조 개편에 있다고 봅니다.
본론으로 가기 전에 두산퓨얼셀 매각 이야기부터 할까요. 얼마나 받을 수 있을까요. 두산퓨얼셀은 시가총액이 이달 15일 현재 5500억원입니다. 3월말 현재 ㈜두산이 16.78%를, 박정원 회장 외 34인이 61.27%(이상 우선주 포함)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매각 대상 지분이 총 78%에 이릅니다. 시가총액 5500억원의 78%는 약 4300억원이 되는데, 경영권 프리미엄이 얹혀질 걸로 봅니다.
두산퓨얼셀은 발전용 연료전지 기자재 공급과 연료전지 발전소에 대한 유지보수 서비스 제공을 주요 사업으로 하고 있는데, 연료전지는 전기와 열을 포함한 복합 효율이 높고 안정성이 우수하고 분산 발전이 가능한 친환경 발전원으로 각광을 받고 있죠. 두산퓨얼셀은 국내 발전용 연료전지 시장의 무려 90%를 점유하고 있습니다. 거의 독점에 가깝죠.

재읽사는 두산솔루스와 두산퓨얼셀 모두 전략적 투자자(SI)가 아닌 재무적 투자자(FI)에 매각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는데, 그렇다고 하더라도 상당한 경영권 프리미엄이 매겨질 걸로 봅니다. 통상 국내 주식시장에서 경영권 프리미엄을 30% 정도라고 보니, 이를 적용하면 경영권을 포함한 두산퓨얼셀 78% 지분의 예상 가격은 시가총액인 5500억원에 달합니다.
두산솔루스가 매각될 경우 두산그룹이 기대하는 수준이 최소 9000억원 정도라고 한다죠? 일각에서는 1조원을 호가할 거라고도 합니다. 두산솔루스와 두산퓨얼셀 지분을 모두 매각하게 되면 약 1조45000억원 정도의 유동성이 생기는 겁니다. 1조4500억원 중 약 3660억원은 ㈜두산에게 돌아가고 1조원을 약간 웃도는 돈이 박정원 회장 포함 오너 일가에게 돌아갑니다. 오너 일가의 사재 출연을 위한 주요 재원입니다.
여러 언론들이 두산솔루스 등을 매각해도 3조원을 마련하기 어려울 것이라고들 합니다. 주요 근거는 오너 일가 등이 보유한 주식이 대부분 담보로 잡혀 있다는 것입니다. 보유 주식을 매각하면 빚부터 갚아야 할 것이라는 논리이죠. 재읽사 역시 일부 차입금은 상환이 이루어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만, 그게 그렇게 의미 있는 수준으로 큰 규모는 아닐 겁니다.
오너 일가의 사재 출연으로 ㈜두산이 유상증자를 하게 되면, 오너 일가는 ㈜두산의 신주를 받게 되고, 기존의 담보 대신 ㈜두산의 신주로 교체하면 되니까요. 지금 오너 일가가 빚 갚는 게 바쁜 게 아니잖아요?

오너 일가가 받게 되는 약 1조원의 유동성 대부분이 유상증자를 통해 ㈜두산으로 흘러 들어갈 것으로 예상합니다. 이렇게 되면 오너 일가의 사재 출연 약속도 이행이 되고 ㈜두산은 두산중공업 유상증자에 참여할 자금은 물론 상당한 자본확충의 효과까지 얻게 되죠.

물론 오너 일가의 사재 출연을 위한 ㈜두산의 유상증자가 주주배정 방식으로 이루어진다면 ㈜두산에 유입되는 유동성은 훨씬 더 늘어나겠죠. 하지만 그렇게 무리를 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두산중공업을 살리기 위해 ㈜두산의 일반 주주들에게 손을 벌리기는 좀 그렇지 않나요?
㈜두산의 자본 확충이 이루어지면 얻게 되는 효과가 크게 두 가지 있습니다. 하나는 신용도 개선입니다. 두산그룹은 3조원의 자본확충을 준비하면서 '신용등급을 확고한 수준으로 올려 놓겠다'는 각오를 밝힌 바 있습니다. 이게 비단 두산중공업의 이야기만은 아닙니다.
확고한 수준이라면 최소 A등급 이상을 기대하고 있다고 해석해야 합니다. 그런데 두산중공업의 신용등급은 BBB(하향 검토 대상)이고 ㈜두산은 BBB+(부정적)입니다. 두산중공업이 재무 구조조정에 성공한다면 신용등급의 추가 하락을 막을 수는 있겠지만, A등급 이상을 회복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또 모회사인 ㈜두산의 신용등급이 개선되지 않고서는 두산중공업은 물론이고 두산인프라코어, 두산밥캣 등 다른 주요 계열사의 신용등급 회복도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두산그룹으로서는 두산중공업 만큼이나 ㈜두산의 신용등급 개선도 절실한 상황입니다. 오너 일가가 1조원 가까운 사재출연을 하고 추가 자산 매각으로 유동성을 확보해 차입금을 일부라도 상환한다면 그것만큼 신용도 개선에 지름길도 없지요.

두산중공업 정도는 아니지만 ㈜두산 역시 재무 개선이 시급합니다. 2017년말 80%를 밑돌던 부채비율이 지난해 말 122%까지 치솟았고 무엇보다 단기차입금 비중이 지난해에 62%까지 치솟았습니다. 차입구조가 급격히 단기화 되는 것은 매우 위험한 신호입니다. 차입금을 상환하지 않더라도 차입구조를 장기화하는 것이 필요한데, 그러기 위해서는 신용도를 개선해 장기 자금을 조달할 능력을 갖추어야 합니다. 자본확충이 큰 도움이 되지요.
또 하나 더 중요한 이유는 두산그룹의 구조개편을 위한 자금 마련입니다. 이미 언론에 많이 보도된 것처럼 두산중공업 자회사 및 손자회사로 있는 두산인프라코어와 두산밥캣을 ㈜두산 바로 아래에 두어 두산중공업과 분리하는 작업이 이루어질 것으로 예상됩니다. 어쩌면 두산건설과 두산메카텍도 함께 딸려 오게 될 수도 있겠죠. 외부에 매각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전제하에 말입니다.
현재 예상되는 가장 유력한 시나리오는 두산중공업을 사업회사와 투자회사로 인적분할한 다음 두산인프라코어 등의 지분을 보유한 투자회사를 ㈜두산과 합병하는 것입니다. 이 경우 ㈜두산은 돈 들 일이 없지요. 투자회사의 외부주주가 보유한 지분을 ㈜두산의 신주를 발행해 교환해 주기만 하면 됩니다.
하지만 꼭 이 시나리오는 두산중공업에 신규 자금이 유입되지 않는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두산중공업의 위기가 다른 계열사로 전이되는 것을 막는데 그치죠. 인적분할 후 합병하는 방법 대신에 ㈜두산이 두산중공업의 보유 지분을 직접 사오는 것도 염두에 둘 수 있다고 봅니다. 가장 간단한 방법인데다 두산중공업에 상당한 유동성이 유입되는 효과를 누릴 수 있습니다. 두산중공업 살리는데 그룹의 운명을 걸었으니 충분히 해 볼만 하다고 봅니다. 이 이야기는 다음 편에 이어서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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