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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산중공업의 당면 과제는 두말할 필요도 없이 유동성 확충과 재무구조 개선입니다. 영업에서 벌어들인 돈으로 갚을 수 있을 정도만 남기고 차입금을 대폭 줄여야 하고, 충분한 유동성을 확보해 정상적인 경영활동에 지장이 없도록 해야 합니다.


근본적인 과제는 사업경쟁력을 높이는 것입니다. 탈원전이 두산중공업의 위기를 초래했다는 주장은 부분만 보고 전체를 보지 못하는 오류인 동시에 지극히 시대착오적인 것입니다. 이미 전 세계 발전산업이 원자력과 화력발전의 비중을 크게 줄이고 친환경 에너지로 빠르게 전환하고 있습니다.


원자력과 화력발전에 대한 발주 자체가 크게 줄었습니다. 특히 원자력발전 수주는 특정 업체가 자체 능력으로 어떻게 해 볼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정부와 글로벌 파트너사들이 팀플레이를 해야 가능한 일이죠. 발주가 나오지 않는 데다가 주문을 따내는 것도 매우 어렵습니다.


정부가 지난 27일 '산업경쟁력 강화 관계장관 회의'를 열어 두산중공업 문제를 다뤘다고 하죠. 순수 민간 기업인 두산중공업의 정상화를 위해 정부가 장관 회의를 열었다는 것은 발전산업이 국가 기간산업이고, 두산중공업이 우리나라 발전산업의 기둥이기 때문이죠. 조금 과장해서 이야기하면 두산중공업의 사업구조가 곧 우리나라 발전산업의 구조이고, 우리나라 발전산업의 현주소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현재 사업구조는 너무 낡았습니다. 여전히 매출의 대부분을 원자력과 석탄화력발전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시대의 흐름에 뒤쳐져 갈수록 수주와 매출이 줄 수 밖에 없습니다. 원자력은 최근 들어 일본 미국 등을 중심으로 다소 활기를 되찾는 분위기이지만 신규 원전 건설보다 원전 해체 시장의 전망이 더 밝다고 하니 두산중공업의 구세주가 될 수는 없습니다. 매출 중 가장 비중이 큰 석탄화력발전은 전 세계가 이산화탄소(CO2) 배출 줄이기에 나서고 있기 때문에 과거로 회귀가 불가능합니다.


27일 장관 회의에서 두산중공업이 내놓은 사업개편 계획은 크게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①석탄화력발전 부문 축소 ② 원전 사업을 유지보수 및 해체로 집중 ③ 액화천연가스(LNG) 발전과 풍력 발전 강화 입니다. 석탄화력발전을 축소하는 것은 다른 두 부문을 강화하는 것이니 실제로는 두 가지라고 할 수 있겠네요.


문제는 두 가지 모두 당장 두산중공업의 먹거리가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기존의 매출 원천인 석탄화력 발전을 점진적으로 축소하면서 원전 해체와 LNG 및 신재생에너지 경쟁력을 높여가야 하죠. 향후 몇 년 간은 두산중공업의 살림이 크게 좋아지기 어렵다는 겁니다. 석탄화력발전에서 나오던 매출 이상을 원전 해체와 LNG 등에서 만들어 내는 데는 시간이 필요하니까요.



원전 해체의 경우 지난해 영국 자회사인 두산 밥콕이 4000억원 규모의 수주를 한 경험이 있습니다만, 두산중공업 자체의 역량이라고 보기는 어렵고, 그 지속성에도 의문이 있습니다. 신재생에너지 중 풍력발전의 경우 2017년 수립된 정부의 8차 전력개발기본계획에 근거해 투자와 수주를 진행했지만, 계획대비 실행률이 매우 저조한 실정입니다. 당분간 매출에 기여하기 어려워 보이죠.


담수/수처리사업의 경우도 전 세계적으로 물부족 현상이 확산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에 전망자체는 좋습니다. 하지만 역시 당장 수주부족과 매출부족을 해결해 줄 대안이 되지는 못합니다.


눈에 보이는 희망이라면 LNG 발전입니다. 석탄화력발전이 줄어드는 발전산업에서 가장 빠른 성장이 예상되는 분야입니다. 게다가 두산중공업이 발전용 대형 가스터빈을 국산화하는 쾌거를 달성해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다섯 번째로 독자모델 보유국이 되었습니다. 아마 최근 몇 년간 두산중공업의 설비투자가 이쪽으로 집중되었을 것입니다.


국내에서도 신규 가스발전 설비가 지속적으로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에 상당한 수입대체효과가 기대됩니다. 기존의 국내 발전소 가스터빈은 전량 수입에 의존했는데 그 규모가 149기에 금액으로는 8조1000억원이라고 합니다. 정부도 가스발전 비중을 더 늘려갈 계획이니 시장은 더욱 커질 것입니다. 또 독자모델을 가진 나라가 5개국 뿐이니 해외 시장에도 진출할 기회가 충분히 있습니다.



문제는 시간과 돈이죠. LNG발전으로 본격적으로 현금흐름이 창출되는 시기가 빨라도 2022이고 원전해체나 풍력발전 등 신재생에너지 역시 2023년이나 2024년이 돼야 본격적인 매출을 기대할 수 있습니다. 두산중공업의 사업개편 목표 역시 이쯤의 시기로 잡혀 있습니다. 향후 3~4년간 두산중공업의 현금흐름 창출이 현재 수준을 크게 벗어나기 어렵다고 예상할 수 밖에 없습니다.


두산중공업이 매년 대략 3000억~4000억원 정도의 현금흐름(EBITDA 기준)을 창출할 수 있는데, 설비투자나 기술개발 등 자본적 지출로 연평균 2500억원 정도를 씁니다. 두산중공업이 향후 투자계획으로 잡아 놓은 예산이 3년간 6400억원인데, 올해를 필두로 사업개편을 더욱 적극적으로 추진한다면 예산을 더 늘려야 할지도 모릅니다.



그렇다면 앞으로 몇 년 간은 허리띠를 졸라매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할 수 밖에 없죠. 2019년기준으로 3000억원대 초반으로 줄어든 EBITDA에서 새는 돈을 막아야 합니다. 우선은 1000억원이 훌쩍 넘는 이자비용을 줄이는 게 급선무입니다. 이자비용을 줄이려면 차입금을 감축해야죠. 내부적으로는 긴축이 불가피하겠습니다. 벌이가 줄었으니 고정비 부담을 줄이는 게 필요합니다. 현재 추진하고 있는 명예퇴직이나 휴업이 그런 대책 중 하나죠.


그런데 더 중요한 게 있습니다. 두산중공업의 사정이 아니라 자회사 사정 때문에 예상치 못한 현금 유출이 발생하는 것을 막아야 합니다. 역시 두산건설이 문제입니다. 두산중공업이 유동성 위기에 몰린 몇 가지 중요한 원인 중 하나가 두산건설이죠.


역사까지 다 읊기는 그렇고 대충 두산건설에 들어간 지원금의 규모만 볼까요. 과거 10여 년간 두산그룹이 두산건설에 지원한 게 2조4000억원이라고 하는데, 그 중 2조700억원이 두산중공업에서 나갔습니다. 자본 확충에 들어간 돈만 그렇습니다.



2011년에 유상증자로 3000억원, 2013년에 역시 유상증자로 8716억원, 2016년에는 두산건설의 전환상환우선주를 기존 주주로부터 되사 오느라 4000억원을 썼습니다. 지난해에도 3000억원을 지원해야 했죠. 한번 했다 하면 3000억원 이상의 뭉칫돈이 나갑니다. 두산중공업이 1년을 벌어야 생기는 돈이 한번에 다 나가는 겁니다.


두산중공업의 연결 재무제표를 보면 유독 눈에 띄는 대목이 있습니다. 대여금이 엄청나게 많은데 그 대부분에 대해 대손충당금을 쌓았다는 겁니다. 총 대여금이 1조8000억원에 달합니다. 그런데 대손충당금을 1조3000억원이나 쌓았습니다. 떼일 것을 각오하고 있다는 겁니다.


그런데 그 대여금과 대손충당금 중 두산건설의 몫이 가장 큽니다. 1조8000억원의 대여금 중 1조3000억원이 두산건설의 것이고 1조3000억원의 대손충당금 중 7850억원이 두산건설이 쌓은 것입니다. 두산건설이 떼인 돈은 그 동안 두산중공업이 유상증자로 메워준 것이죠.



설마 앞으로도 그런 일이 계속되겠느냐고 할 수 있지만 장담할 수는 없습니다. 두산건설의 사정은 여전히 나쁘거든요. 두산건설의 재무제표 주석에는 올해 1분기에도 계속기업의 가정 항목이 남아 있습니다. 계속기업으로 살아남아 있을지 불확실하다는 겁니다.


매년 차입금을 줄여 나가고 있지만, 영업활동으로 여전히 현금을 까먹고 있고, 차입금 대부분은 단기에 몰려 있습니다. 올해 3월말 현재 2123억원의 미청구공사가 있습니다. 미청구공사는 공사비를 지출하고도 발주처에 청구를 하지 못한 일종의 미수금입니다. 건설사 부실의 근원으로 지목되고 있죠. 공사대금 청구가 이루어진 미수금도 께름칙합니다. 3월말 현재 1868억원이 남았는데 그 중 절반에 가까운 896억원을 대손충당금으로 쌓았습니다. 정상적으로 공사가 진행되었지만 발주처로부터 받지 못할 가능성이 높은 게 절반 가까이 된다는 소리입니다.



두산중공업 정상화 방안 중 하나로 거론되는 것이 두산인프라코어 두산밥캣 등의 우량 자회사를 두산중공업에서 떼 내야 한다는 것이었죠? 그것에 대해 재무제표를 읽는 사람들(재읽사)은 두산중공업의 위기가 자회사로 전이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가 아니라 두산중공업을 구하기 위해 지배구조 개편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피력했습니다.


두산인프라코어와 두산밥캣 뿐 아니라 두산건설이 반드시 두산중공업에서 분리되어야 합니다. 두산중공업을 사업회사와 투자회사로 인적분할해 투자회사를 ㈜두산과 합병을 한다면 투자회사에 두산건설 지분이 포함되어야 하고 두산건설과 두산인프라코어 등 자회사 때문에 지게 된 차입금 역시 지분과 함께 분할되어야 할 것입니다.


인적분할 대신 두산중공업 보유 지분을 ㈜두산이 매입하는 형태가 된다고 해도 역시 두산건설 지분은 반드시 포함되어야 할 것입니다.


두산건설에게도 그 편이 유리합니다. 구조조정의 객체는 두산중공업이지만 주체는 ㈜두산이 될 것입니다. 자본 확충이나 유동성 확보 역시 ㈜두산이 중심이 될 것입니다. ㈜두산의 신용등급이 개선되어야 두산중공업의 신용등급도 개선될 수 있습니다. ㈜두산의 자본확충과 신용등급 개선은 손자회사가 아닌 자회사 두산건설에게 새로운 전기를 마련해 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