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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이 향후 어느 방향으로 성장 또는 쇠퇴할 지를 알려면 자산의 변화를 살펴보면 됩니다. 가령 본업에 대한 경쟁력을 끊임없이 추구하는 기업이라면, 유형자산과 무형자산 등의 설비를 계속해서 늘려가겠죠. 반면 본업이 캐시카우이고 다각화를 모색하고 있다면, 본업과 관계없는 투자자산(관계회사 주식 등)이 늘어날 겁니다.
업황이 장기간 침체되어 보릿고개를 지나는 기업의 경우 자산의 크기가 줄어들 공산이 크죠. 현금흐름을 내부적으로 창출하기 위해 비현금 자산을 유동화하는 경향도 나타날 테고요. 코빗, 코인원 뿐 아니라 상대적으로 사정이 나은 빗썸에게도 이 경향은 뚜렷합니다. 단적인 예로 암호화폐 보유액이 크게 줄었죠? 현금화해서 운영자금 등으로 썼을 겁니다.
그런데 빗썸은 다른 거래소에서 볼 수 없는 변화가 최근 2년간 나타납니다. 지난해엔 더욱 분명하게 변화를 보이죠. 자산의 크기가 급격하게 줄어드는 와중에 비유동자산은 훨씬 늘었다는 겁니다.

암호화폐 거래소의 자산은 아시다시피 별 거 없습니다. 고객예치금 등으로 구성된 현금성 자산과 암호화폐가 자산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비유동자산은 적습니다. 서버 등의 설비와 일부 무형자산, 사무실 임대보증금 정도이고, 더 있다면 계열사 지분이 있습니다. 거래소들은 지난 2년간 거래가 크게 부진한 불경기를 맞아 현금성 자산과 암호화폐가 급격히 줄어드는 경험을 공통적으로 겪습니다. 유동성이 급감하는 데다 현금흐름이 악화되기 때문에 비유동자산도 늘지 않죠.
그런데 빗썸은 그 와중에 늘린 자산이 꽤 있습니다. 우선, 관계회사 지분과 매도가능증권이 최근 2년간 각각 200억원 가량 늘어납니다. 암호화폐 시황이 최고조이던 2017년말 전체 비유동자산이 185억원이었던 걸 생각하면 자연적인 증가로 보기는 어렵죠.

이 중 매도가능증권은 일단 거르고 넘어가겠습니다. 장부가액은 209억원이지만 취득가액은 305억원이고, 대부분 2대 주주인 비덴트 지분입니다. 비덴트 지분을 254억원에 샀는데 지난해말 시가가 159억원이네요. 지난 편에서 주주회사들이 오히려 빗썸에서 돈을 빼가는 것 아니냐고 지적했는데 이게 그 중 일부지요.
관계회사 지분을 다량 취득했는데, 언제 어디에 투자를 한 걸까요. 놀랍게도 사정이 가장 안 좋았을 지난해 ㈜아시아에스테이트라는 회사 지분을 116억원 주고 취득했습니다. ㈜아이씨비앤코라는 회사와 ㈜볼트러스트라는 회사 지분도 각각 46억원과 10억원을 주고 인수했군요.
현금이 급격하게 줄어드는 와중에 거액의 투자를 했습니다. ㈜아시아에스테이트는 부동산 중개 및 대리를 주업으로 하는 회사입니다. 빗썸이 100% 지분으로 2018년에 설립했습니다. 다른 계열사들은 소프트웨어 개발을 하는 회사(비티씨코리아서비스, 아이씨비앤코, 볼트러스트)이거나 암호화폐 환전업(루프이칠사사)을 합니다. 비티씨인베스트먼트는 창업자이고 사모투자펀드도 하나 있군요. 대체로 거래소업무와 연관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아시아에스테이트는 부동산 중개업인데 좀 뜬금없죠? 암호화폐와 연관지어 생각을 해 본다면, 아마도 부동산중개 수수료를 암호화폐로 주고 받는 시장에 진출한 것이 아닌가 짐작이 됩니다.
빗썸의 부업 투자는 안타깝게도 대부분 손실을 보고 있습니다. 최근 2년간 이익을 낸 계열사가 하나도 없습니다. 2018년 2억원대이던 빗썸의 지분법 손실은 지난해 19억원으로 크게 늘었습니다. 실은 그게 전부가 아닙니다. 암호화폐 환전업을 하는 루프이칠사사는 완전자본잠식에 빠졌나 보군요. 적자가 발생하고 있지만, 그 손실이 빗썸의 개별재무제표에 반영되지 않았습니다. 루프이칠사사 지분의 가치가 0이 되어서 더 이상 손실을 인식할 수 없게 된 것이죠.
빗썸의 재무제표에 반영되지 않은 루프이칠사사의 손실 누적액은 14억원 정도 됩니다. 2018년까지 지분법손실이 반영되었던 걸 보면, 전액 2018~2019년에 발생한 손실입니다.
계열사 대부분 암호화폐와 관련된 업무를 하고 있으니, 암호화폐 거래가 활발해지지 않는 한, 그러니까 빗썸의 경영실적이 좋아지지 않는 한 계열사들의 실적도 호전되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빗썸에게는 가장 나쁜 시나리오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매도가능증권이나 계열사 지분보다 흥미로운 것이 건설중인 자산과 장기선급금입니다. 합쳐서 900억원이나 되니 상당한 규모의 투자입니다. 거래소 운영업을 하는 회사가 이 정도 투자를 할 게 뭐가 있을까요? 건설 중인 자산이면 유형자산 중 하나일 테고, 가장 가능성이 있는 것이 건물 아니면 서버 등의 기계장치가 아닐까 싶습니다. 장기선급금도 마찬가지지요. 1년 이상이 걸려 도입될 어떤 자산에 대한 대가를 미리 치룬 거잖아요? 건물이나 설비 말고는 마땅히 떠오르는 게 없습니다.
선급금과 건설중인 자산은 서로 관련이 있을 것입니다. 선급금을 지불하고 들여오는 기계장치가 설치되는 과정에 있으면 건설중인 자산이 되거든요. 설치가 완료되어서 가동이 가능해지면 기계장치로 계정이 바뀌고요.
결국 빗썸은 현재 900억원 상당의 대규모 설비투자를 하고 있다는 것인데, 이게 상당한 의미를 갖는 것이, 지난해 말 현재 전체 유형자산의 장부가액이 266억원인데, 건설중인 자산이 159억원입니다.
일단은 사옥이전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올해 1월에 빗썸이 사옥 이전으로 서버 점검을 한다는 공지를 띄운 적이 있습니다. 본사 주소가 삼성동에서 역삼동으로 바뀌었습니다. 또 지난해 2억2000만원 상당의 건물을 처분하고 임대보증금 7억원을 회수한 흔적이 있습니다. 아마 건설중인 자산이 본사 이전과 관련이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건물을 사면서 건설 중인 자산으로 분류하는 경우는 흔하지 않은 것 같지만…
하지만 장기선급금은 사옥이전과도 관련이 없습니다. 장기선급금이라고 했으니 도입하는 자산이 내년(2021년) 이후 들어오거든요. 무려 733억원이나 되니까 무언가 어마어마한 설비나 시설에 투자하는 것 아닐까 싶습니다.
힘겹게 보릿고개를 넘는 과정에서 대규모 투자를 단행하는 것을 지혜나 용기라고 봐야 할지, 무모하다고 해야 할지는 나중에 성과가 나타날 때 판단하면 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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