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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환사채를 중도 상환하는 기업이 엄청 늘었습니다. 최근 몇 년 두드러진 현상입니다. 전환사채를 반은 주식이고 반은 채권이라고 하지만, 엄밀하게는 틀린 말입니다. 주식으로 전환하기 전에는 차입금이고, 전환을 하면 주식이지, 처음부터 절반이 주식인 것은 아닙니다. 결론은 전환사채는 차입금입니다.
만기가 되기 전에 빚을 갚는다? 개인이라면 모를까, 기업에게서 익숙하게 볼 수 있는 상황은 아닙니다. 만기에 갚거나 연장을 하는 게 일반적이죠. 여유자금이 남아돌거나, 채권자가 조기상환을 요구하거나, 재무구조조정을 진행 중인 예외적인 경우에나 빚을 중도 상환하는 게 보통입니다.
그런데 최근 전환사채 중도 상환은 구조조정 차원이거나 채권자의 상환요구에 의한 게 거의 없습니다. 기업이 스스로 콜옵션(만기 전 상환할 수 있는 권리)을 행사합니다. 그럼, 요즘 기업들 자금 사정이 전에 없이 좋아진 걸로 봐야 하나요?
몇 가지 이유에서 그건 절대로 아닙니다. 첫째는 올해 3월부터 실물경제에 큰 리스크가 되고 있는 코로나19 확산을 생각해 보십시요. 일부 수혜 기업을 제외하고는 매출이 급감하는 상황이라, 전 세계적으로 기업들이 현금유동성을 확보하는 데 혈안이 돼 있습니다. 국내 기업도 예외는 아니죠. 곳간이 차 있어야 위기에서 죽지 않고 살아 남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전환사채를 중도 상환하는 기업은 오히려 지난해 보다 훨씬 늘었습니다. 시대 흐름에 어울리지 않는 전개죠.
둘째로 전환사채를 중도 상환하는 기업은 거의 코스닥시장 상장사들입니다. 나머지는 OTC시장인 코넥스시장에서 목격되고 있습니다. 신기하게도, 유가증권 시장에서는 중도 상환이 없다시피 합니다.

註 : 주의를 당부 드립니다. 위 자료는 전환사채 발행 기업이 '만기전사채취득'이란 제목으로 공시를 한 건수를 기준으로 한 것입니다. 일부 기업의 경우 '기타공시'등으로 콜옵션을 행사한 사례가 있습니다. 또 발행 결정 후 취소가 이루어지거나 자회사의 전환사채 발행이나 상환을 모회사도 공시하는 의무가 있어 중복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건수는 믿지 마시고 추세와 국면을 이해하는 용도로 사용하시기 바랍니다.
코스닥시장에서는 2018년까지 200대에 있던 전환사채 중도 상환 공시가 지난해 496건, 올 들어서는 이달 14일까지 439건에 이릅니다. 연말까지 600건을 넘을 수도 있겠습니다. 유가증권시장에서 중도 상환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닙니다. 일례로 지난 8월에 현대로템이 액면 2400억원의 전환사채 전액에 대해 콜옵션을 행사한 바 있습니다.(대부분 주식 전환으로 끝났지만)
코스닥시장에서 중도 상환이 많은 건 전환사채 발행 자체가 많아서 아니냐고요? 네 그런 면도 있지요. 최근 3년간 유가증권시장의 전환사채 발행 공시는 265건이고 코스닥시장은 1391건으로 압도적으로 많습니다. 코스닥기업들이 자금조달을 전환사채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는 걸 보여주지요.
이걸로는 설명이 안됩니다. 코스닥시장의 최근 3년간 전환사채 중도 상환 공시가 무려 1293건입니다. 발행 공시와 비슷하게 빈번합니다. 이건 뭐, 발행한 전환사채 대부분에 대해 회사가 중도 상환을 시도했다고 봐야 할 것 같습니다.
까놓고 말해서 유가증권시장과 코스닥시장은 상장기업의 질이 다릅니다. 물론 코스닥시장에도 훌륭한 기업들이 많지만 평균의 차이는 매우 큽니다. 자산이나 매출액의 규모, 수익성, 재무구조, 현금흐름에서 모두 현격한 차이가 납니다. 이건 기회가 생기면 따로 한번 리포팅하는 걸로 하겠습니다.
전환사채를 중도 상환할 능력으로 따지자면, 유가증권시장 기업들이 코스닥시장 기업들보다 월등합니다. 이론의 여지가 없습니다. 그런데 왜 전환사채 중도 상환이 유독 코스닥시장에서 집중적으로 나타나는 걸까요. 결코, 돈이 남아 돌아서는 아닙니다.
유가증권 시장과 코스닥시장의 전환사채는 몇 가지 차이가 있습니다. 유가증권시장의 전환사채는 풋옵션(사채권자의 조기상환청구권)이 대부분 있지만, 콜옵션은 흔치 않습니다. 만기 상환이나 주식 전환이 전제된 발행이지 중도 상환을 생각하고 발행하지는 않는다는 겁니다. 코스닥시장의 전환사채는 콜옵션을 달고 발행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전부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거의 전부라고는 할 수 있습니다. 중도상환을 염두에 둔 발행이 많다는 겁니다. 어쩌면, 처음부터 중도 상환이 예정된 것일 수도 있겠죠.
전환기간이나 전환가액 조정에서도 차이가 있습니다. 유가증권 시장의 경우에는 발행 후 2년이 지나야 전환기간이 시작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반면 코스닥시장은 발행 1년 후부터 전환이 가능한 경우가 대부분이고, 한 달 후 바로 전환이 가능하기도 합니다. 유가증권시장 상장기업들은 주가 하락 시 전환가액을 조정하는 횟수를 제한하거나 전환가액의 조정 하한을 발행시 전환가액의 70% 선으로 맞춥니다.
코스닥시장에서도 대체로 그래 왔습니다만, 최근 그 흐름이 크게 바뀌고 있습니다. 전환가액 조정 횟수에 제한이 없고, 전환가액 조정 하한도 없습니다. 주가가 하락만 한다면 액면가 까지 낮출 수 있습니다. 액면가 미만으로 전환가액을 낮추는 것은 법에서 금지하고 있습니다.
중도 상환이 발생하는 경우는 두 가지가 있죠. 하나는 채권자가 풋옵션을 행사하는 경우입니다. 가령, 주가가 전환가격 이상으로 올라갈 조짐이 없어 보인다고 하면, 만기까지 들고 있을지, 조기 상환을 요구할 지 고민하겠죠. 보장수익률이 높으면 보유할 유인이 늘고, 그 마저도 낮다면 조기 상환 유인이 커지죠.
이 역시 유가증권 시장의 중도 상환이 더 많아야 하는 이유입니다. 대체로 유가증권시장의 전환사채 보장 수익률이 더 낮고, 전환가격을 낮출 기회가 적어서 주식전환으로 확실한 수익을 누릴 확률이 떨어지거든요. 코스닥시장은 반대지요. 보장수익률이 더 높고, 전환가격을 낮출 기회도 더 많습니다. 투자자에게 유리하죠. 기업의 경영상황이 크게 문제되지 않는다는 걸 전제로, 코스닥시장의 전환사채 투자자가 풋옵션을 행사할 여지가 별로 없습니다.
기업이 콜옵션(중도상환요청권)을 행사하는 게 두 번째 경우죠. 어떤 이유로든, 기업이 자발적으로 전환사채를 갚는 겁니다. 돈이 남아돌아서? 그럴 수 있습니다. 일반적이지는 않죠. 이자비용을 줄이기 위해서? 그럴 수 있습니다. 저금리 조달을 할 수 있다면 그렇게 해야죠. 역시 일반적이지 않습니다.
주식으로 전환되는 걸 막기 위해서? 상당히 설득력이 있는 이유입니다. 최근 전환사채 발행이 공모보다는 사모로, 특히 코스닥시장은 대부분 사모로 이루어지는데 주식 전환시 경영권을 위협할 수 있을 만큼의 물량을 특정 사채권자가 보유하게 된다면 최대 주주가 불안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도 아닌 것 같습니다. 코스닥 시장의 전환사채 중도상환을 하나씩 열어보니, 놀랍게도 이미 주식으로 전환이 가능한 기간이고, 주가가 전환가격보다 높은(in the money) 상황에서, 다시 말해 주식으로 전환만 하면 바로 차익실현을 할 수 있는 상황에서 중도 상환이 이루어지더라는 겁니다. 아니 왜? 주식으로 전환을 안하고 있다가 중도 상환을 당하는 겁니까, 당하기를?
게다가 콜옵션을 행사해 중도 상환한 기업은 취득한 전환사채를 소각하지 않고 보유하고 있다가 재매각하는 경우가 많더라는 겁니다. 마치 자사주처럼 말이죠. 공시에는 '취득한 전환사채를 소각할지, 재매각할지 나중에 결정하겠다' 해 놓고 대체로 재매각을 선택하더라고요.
그거야 회사 마음 아니냐고요? 물론 그렇죠. 그런데 그게 회사 마음대로 할 수 있게 되니까 회사 또는 최대 주주가 농간을 부릴 수 있는 여지가 커지기도 하지요. 다음 편에 이어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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