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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한달이나 지난 공시를 다시 들춰 봅니다. 지난 8월 현대로템이 중도 상환에 나섰던(아니, 상환하려는 척 했던?) 2400억원 규모의 전환사채 이야기입니다. 당시 언론들의 보도는 투자자들의 대박 수익에만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습니다. 과연, 유가증권시장에서 과거에 이런 초강력 콜옵션(발행기업의 중도상환청구권) 행사가 있었나 싶을 정도의 전개를 너무 소홀히 했죠. 보도가 되지 않은 것은 거의 없으나 완전체 보도는 없었다고 할까요. 뒤늦게 굳이 이 공시를 꺼내는 변입니다.


현대로템 이사회가 전환사채 발행을 결정한 때는 3월 25일입니다. 2400억원을 조달해 1650억원을 운영자금으로 쓰고 나머지로 차입금을 상환하기로 했지요. 매우 이례적인 일이었습니다. 현대차 계열 회사 중 10년 만에 처음 나온 전환사채였으니까요.


전환사채가 코스닥 시장에서 범람하다시피 하고 있지만, 사실 대기업들이 선호하는 자금조달 수단은 아닙니다. 마지막 수단이라고 까지 표현하는 사람들도 있지요. 신용과 담보가 부족해 은행 차입이나 일반 회사채 발행이 어렵고 주식에 대한 수요조차 없을 때 선택하는 게 주로 전환사채 거든요. 게다가 까딱하면 대주주의 지분율이 희석되는 리스크까지 져야 하니까 말이죠. 오너 입장에서 제일 싫은 게 지분율 떨어지는 것 아니겠습니까.


현대로템의 전환사채 발행은 어쩌면 궁지에서 벗어나기 위한 몇 안되는 탈출구 였을 지도 모릅니다. 당시 회사 상황이 꽤 안 좋았으니까요. 대규모 손실 계속 이어져 오면서 현금이 자꾸 빠져나가 자금사정이 긴박했습니다. 부족한 현금흐름을 외부 차입으로 메우면서 버티는 바람에 재무구조도 악화되었죠.


철도, 플랜트, 방산 등 주요 사업부문이 다 부진했습니다. 철도는 2년 적자 후 2년 흑자, 그리고 다시 2년 적자를 반복하고 있었는데 지난해 적자가 2600억원에 육박할 정도로 컸습니다. 플랜트는 매년 영업적자를 발생시키는 문제 사업부문이었는데, 카타르 하수처리장 사업에 발목이 잡히는 바람에 적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났죠. 그나마 버텨주던 방산부문의 영업이익은 점점 줄고 있었죠.


지난해까지 점점 부족해지는 현금흐름을 자금시장에서 초단기 기업어음(CP)를 반복적으로 발행하면서 돌려막기를 해 왔습니다. 그러다 결정타를 맞은 게 신용등급 하락입니다. 간신히 A-등급을 유지해 오다가 올해 3월에 BBB+등급으로 떨어집니다. BBB등급으로 떨어지다는 것은 공모 시장에서 대규모 장기 회사채 발행이 어려워졌음을 의미합니다. 기관투자가들이 사지를 않거든요. 매우 심각한 문제죠. 그렇지 않아도 현금흐름 경색과 재무구조 악화의 고리를 끊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던 현대로템에게는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었을 겁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코로나19 사태가 터졌죠. 현대로템 창원공장은 확진자가 발생해 2월28일부터 3월3일까지 생산 중단을 결정합니다. 공장은 쉬어도 직원들 월급은 줘야 하잖아요? 고정비 부담이 만만치 않았고, 주가는 급락했죠.


현대로템은 전환사채 발행으로 돈이 들어오는 6월까지 손 놓고 기다리지 않고, 자산 매각으로 자금 확보에 나섭니다. 경기도 의왕시에 27만㎡의 엄청 넓은 연구단지가 있는데 그 중 유휴부지 4만㎡와 건물을 그룹 계열사인 현대모비스에 878억원(감정가액, 공시기준)을 받고 매각하죠. 연구단지 안에 있는 유휴부지를 누가 사겠어요. 계열사에서 사 줘야지. 현대모비스가 그 땅과 건물이 꼭 필요했을까요? 급하게 융통을 한 걸로 보는 게 맞겠습니다.



전환사채 발행으로 들어올 2400억원 중 1650억원을 운영자금으로 쓴다고 했죠. 현대로템이 분기당 임직원에게 나가는 급여가 770억원 정도 됩니다. 1650억원이면 6개월치 급여에 상당합니다. 유동성 상황이 꽤나 심각했나 보다 싶네요. 코로나19상황까지 고려한 결정이었을 것 같군요.


아마, 유상증자가 쉬웠으면 했을 겁니다. 돈도 모자라고 재무구조 개선도 시급했으니까요? 당시 현대로템의 경영목표가 재무구조 개선이었을 정도로. 하지만 코로나19사태로 주가가 폭락했잖아요. 주식시장 전체가 멘붕에 빠져 있는데 유상증자? 언감생심이죠. 게다가 유상증자를 검토했어도 모회사인 현대차(지분율 43.36%)에서 동의를 안 했을 겁니다. 현대차도 그리 여유롭지 않은 상황이었을 테니까요.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현대차는 현대로템이 발행한 전환사채도 인수를 포기합니다. 유상증자를 했어도 당연히 참여하지 않았겠죠.


생각해 보세요. 현대로템이 2400억원의 유상증자를 했는데, 모회사인 현대차가 참여하지 않는다? 아마 주식시장이 뒤집어 졌을 겁니다. 현대로템을 포기했나? 매각하나? 현대차그룹이 유동성위기에 빠졌나? 별별 의심과 억측이 난무했을 게 뻔합니다. 전환사채 인수 포기는… 그렇게까지 민감하게는 반응하지 않죠.


하지만 현대로템이 발행한 30회 전환사채 2400억원은 사실상 유상증자에 다름 없습니다. 현대로템이 정말 낮은 자세로 발행한 전환사채입니다. 깜짝 놀랄 정도로 투자자에게 유리한 조건이었죠.


이사회는 잠정 전환가격을 9750원으로 정합니다. 3월 25일까지의 주가를 기준으로 산출한 가격이니 코로나19사태로 급락한 주가가 그대로 반영됩니다. 실제 전환가격은 구주주 청약일(6월12일) 3일 전에 다시 정하기로 했어요. 주가가 더 떨어지면 전환가격을 더 낮추고, 주가가 올라가면 9750원으로 확정짓기로 했죠. 그런데 그 사이에 주가가 급등해서 구주주 청약일 3일 전 가중 산술평균 주가는 1만6098원이었습니다. 9750원으로 전환가격이 결정되죠.



전환가격이 최근 주가를 기초로 결정이 되지만, 정하는 방식은 회사 마음입니다. 잠정적으로전환가격을 정한 뒤 주가가 오르면, 오른 주가로 전환가격을 바꿀 수도 있습니다. 현대로템의 경우에도 1만6098원으로 바꿀 수도 있었죠. 그 보다 더 높게도 정할 수 있습니다.


전환사채의 전환가액을 정하는 방법은 '증권의 발행 및 공시 등에 관한 규정' 제5-22조에 정해져 있습니다. 이사회 결의일 전일을 기산일로 해서 그 기산일로부터 ①1개월 가중산술평균주가, 1주일 가중산술평균주가 및 최근일 가중산술평균주가를 산술평균한 가액 ②최근일 가중산술평균주가 ③청약일전(청약일이 없으면 납입일) 제3거래일 가중산술평균주가, 이렇게 ①,②,③의 주가 중 높은 가액 이상으로 합니다. 다만, 현대로템의 경우처럼 공모로 발행하는 경우에는 ①,②,③의 주가 중 낮은 가액 '이상'으로 합니다.


그러니까 현대로템은 전환가액을 9750원보다 얼마든지 높게 정할 수 있었다는 겁니다. 이렇게 전환가액을 얼마 '이상'으로 하라고 한 것은 이미 주식을 보유하고 있는 기존 주주들을 보호하기 위해서입니다. 전환가액을 턱 없이 낮추어 발행하면 기존 주주의 부가 전환사채권자에게 이전되는 문제가 발생하잖아요. 재산상 손해가 발생하는 것이죠. 공모발행의 경우처럼 세 가격 중 낮은 가격 이상으로 할 수 있게 한 것은 혜택을 좀 준 것이고요.


현대로템은 이사회에서 전환사채 발행을 결정할 때부터 '무조건 발행을 성사시켜야 한다'고 생각했었던 게 분명합니다. 전환권 행사가격을 더 낮춰서라도 말이죠. 가격이 아니라 금액이 중요했던 것이죠.


그 이유 중 첫째는 당연히 현금흐름이 긴박했기 때문이었을 테고요. 어쩌면 더 중요했을 두 번째 이유는 현대차의 불참이었을 겁니다. 구주주 청약에서 최소 43.36%의 미달이 예정돼 있었기 때문에 일반 공모에서 투자 매력을 한껏 끌어 올려야 했을 겁니다.


사실상 유상증자와 다름 없다고 한 다른 근거는 전환기간입니다. 아주 파격적으로 발행 후 한 달 후부터 보통주 전환이 가능하도록 했죠. '무조건' 현재 주가보다 낮은 행사가격에, '언제라도' 보통주 전환이 가능한 전환사채라니, 이 보다 더 좋은 조건이 어디 있겠어요. 한달 후 당장 전환을 해도 되고, 주가가 더 오를 때까지 기다려도 되니 투자자 마음이 얼마나 편안하겠어요.


그런데 현대로템은 가능한 빨리 전환을 시키고 싶었나 봅니다. 전환사채는 부채이지만, 보통주로 전환하면 자본이 되죠. 전환이 되면 부채비율을 떨어뜨릴 수 있습니다. 재무구조가 좋아지죠. 그래서 생각한 게 발행 후 한달이 지나면 회사가 조기상환을 청구할 수 있는 권리(콜옵션)를 갖습니다. 보통은 사채 발행금액 전체에 대해 콜옵션을 두지는 않습니다. 30% 또는 50% 식으로 부분적으로만 하죠. 그런데 현대로템은 2400억원 전액에 대해 콜옵션을 행사할 수 있게 합니다.


현대로템이 애써 전환사채를 발행해 놓고 여유가 생기면 2400억원을 전부 다 갚을 생각으로 콜옵션을 두었을까요? 이건 정말 난센스입니다. 현금흐름이 꼬여 운영자금마저 부족한 회사가, 신용등급이 떨어져 공모시장에서 자금 차입이 불가능하게 된 회사가, 재무구조 개선이 시급한 회사가, 빚을 내자 마자 갚을 생각부터 한다니요. 무슨 돈이 어디서 생깁니까.


현대로템은 콜옵션 행사 조건을 하나 붙입니다. 주가가 15일 연속 전환가격의 140%보다 높아야 한다는 겁니다. 보통주로 전환을 하면 40%의 수익이 생기는 기회를 15일이나 주었는데도 전환을 안해? 그럼 갚아버린다? 이런 협박이 아니면 뭐겠습니까. 콜옵션 행사는 보통주 전환을 강제하려고 계획된 장치라고 볼 수 밖에 없습니다.


와… 그런데 정말 의외의 전개가 이루어집니다. 주가가 다시 급락하지만 않으면 무조건 60% 이상이 수익이 나는 이 전환사채의 구주주 청약률이 형편없었습니다. 현대차 43.36%가 미청약하더라도 2400만 계좌의 50% 이상은 청약이 돼야 당연할 거 같은데, 고작 31%에 그쳤습니다. 현대차 뿐 아니라 국민연금도 청약을 포기했다고 하던데, 구주주님들 대체 왜 안하신 거죠?


그 바람에 일반 공모에 1655만1275계좌(1655억원)가 풀리게 되고, 무려 8조원에 육박하는 거금이 청약됩니다(주관사를 맡은 NH투자증권만 노났겠다!). 일반 공모 청약률이 4772%나 됩니다. 1억원을 청약하면 전환사채 209계좌(209만원)를 받게 되죠. 박 터지는 겁니다.


그런데도 불안했던 건지… 현대로템 임원이 총동원돼서 청약에 참여합니다. 임원 23명(사외이사 제외) 중 취임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이용배 사장을 포함해 21명이 전환사채 청약에 나서거든요. 물론 자발적 참여일 수도 있죠. 하지만, 회사에서 독려했다고 보는 게 훨씬 납득 가능하지 않나요?



임원 중에는 주주였던 이도 있고, 이용배 사장이나 김두홍 전무처럼 주주가 아니었던 분들도 있습니다. 주주가 아니었으면 분명 일반 공모에 참여했겠죠? 임원이라고 물량을 미리 빼 주고 그러지는 않을 테니까요. 이용배 사장이 1612계좌(1612만원)를 받았으니 약 7억7000만원을 청약금으로 넣었겠군요. 김두홍 전무도 3억원 이상 청약을 했고요. 많다고 해야 할지, 적다고 해야 할지 감이 오지 않는군요.


어쨌거나 현대로템의 전환사채 콜옵션 작전은 해피 엔딩입니다. 지난 달 현대로템이 콜옵션을 행사한다고 하니, 전환기회를 놓치기 싫은 투자자들이 전부 보통주로 전환한 것 같거든요. 이용배 사장을 포함한 현대로템 임원들을 포함해서요. 현대로템은 원하는 대로 2400억원의 현금유동성 확보와 재무구조 개선의 효과를 거두었고, 전환사채 투자자들은 불과 두 달 만에 60%의 수익을 얻었죠.


그런데 주주들은 입맛이 썼을 겁니다. 전환사채 인수를 포기해서가 아닙니다. 그건 아까운 기회를 놓친 거고요. 보통주 주가가 1만6000원을 호가할 때 회사가 9750원으로 유상증자를 한 것이나 마찬가지잖아요. 유통주식 8500만주의 30%에 해당하는 신주가 60%이상 낮은 가격에 들어온 겁니다. 1만6000원을 기준으로 1443원의 주가 하락 요인이 생기죠. 그 만큼을 전환사채 투자자들에게 넘겨 준 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