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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가 창궐하면서 수혜를 입은 기업이 일부 있죠. 온라인 판매나 마스크 제조업체나 진단 키트를 개발한 회사, 방역업체 등이 대표적입니다. 대기업이고 중소기업이고 할 것 없이 마스크 제조 공장을 신설하는 진풍경이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전반적으로는 기업활동이 상당한 제약을 받은 게 현실입니다. 그로 인한 가장 대표적인 충격은 매출 감소일테죠. 사람들의 이동 제한은 기업 입장에서 매출이 떨어지는 소리와 같습니다.


코스피 상장사의 올해 매출은 당연히 줄었습니다. 지난 번 글보다 조사대상업체를 좀 더 늘려봤습니다. 금융업체를 제외한 12월 결산법인 중 실적을 전년과 비교 가능한 633개 업체를 기준으로 했을 때 평균 4.3% (개별 재무제표 기준, 이하 같습니다) 감소했습니다. 개별 업체라면 별 거 아니지만 상장사 평균이라면 적은 폭이 아닙니다.


삼성전자를 제외하면 감소 폭이 좀 더 커집니다. 삼성전자 존재감이 엄청나잖아요. 633개사의 매출에서 삼성전자가 차지하는 비중이 15% 정도 됩니다. 그런데 삼성전자는 올해 3분기까지 126조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의 117조원보다 늘었습니다. 삼성전자를 제외한 상장사 매출은 평균 6.1% 줄었습니다.



매출이 줄면 이익은 훨씬 큰 폭으로 줄게 마련입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어느 기업이나 고정비 부담이 있기 때문에 비용이 매출만큼 줄지 않거든요. 반대로 매출이 늘면 레버리지효과로 이익은 더 큰 폭으로 늘게 되죠. 물론 매출이 줄면서 이익이 늘거나 매출이 늘면서 이익이 감소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건 개별 기업의 차원에서나 가능한 말이지 전체 상장사를 놓고 할 수 있는 말은 아닙니다.


그런데 올해 3분기까지 상장사 평균 영업이익이 지난해 동기에 비해 많습니다. 줄어야 정상인 이익이 거꾸로 늘어난 겁니다.



633개 상장기업의 9월까지 평균 영업이익은 807억원으로 전년 같은 기간보다 무려 9.6%나 증가했습니다. 코로나19로 영업을 제대로 하지 못한 기업이 많고 그로 인해 매출이 50% 이상 급감한 기업도 수두룩한데, 전체 영업이익이 늘어나다니요? 상식적으로 납득이 잘 되지 않습니다.


삼성전자를 제외하고 봤더니 평균 영업이익이 감소한 걸로 바뀝니다. 평균 576억원으로 2.3% 줄었네요. 평균 영업이익이 늘어난 것은 삼성전자 때문에 발생하는 착시 현상이었던 것이죠. 삼성전자의 실적이 워낙 안 좋았어요. 9월까지 영업이익이 9.3조원에 불과했습니다. 전년 동기에는 36조원이 넘었었거든요. 올해 9월까지 14.7조원으로 회복되었습니다. 2018년에 비하면 절반이 되지 않지만 지난해 동기에 비해서는 57%나 증가했습니다.


그렇다고 영업이익 개선을 전부 삼성전자 착시로 볼 수는 없습니다. 삼성전자를 제외할 경우 매출은 6.1% 줄었지만 영업이익은 2.3% 로 덜 줄었습니다. 매출보다 더 줄어야 자연스러운 것인데 말이죠. 결국 전체 기업들이 매출원가와 판매관리비 등의 영업비용을 전반적으로 축소했다는 것인데, 인력 감축이나 비용 축소 등의 수익성 개선 노력의 영향인지, 재고자산을 늘려 매출원가를 낮춘 것인지, 아니면 이자율 하락으로 금융비용이 줄어든 것인지는 개별 기업별로 이유가 다르겠지만, 코로나19에도 불구하고 영업이익을 웬만큼 지켜 냈다는 건 코로나 19로 인한 영업의 타격이 그리 심각하지는 않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매출이 더 큰 폭으로 줄었다면 결과는 완전히 달라졌을 것입니다.


더욱 주목할 결과는 영업활동 현금흐름에 있습니다. 633개사 전체로 보나 삼성전자를 빼고 보나 지난해 동기에 비해 크게 증가했습니다. 현금흐름이 전반적으로 크게 개선된 겁니다.



633개사 전체로 보면 전년 동기에 비해 무려 41.2% 영업현금흐름이 늘었습니다. 삼성전자를 빼도 29.7% 증가했습니다. 삼성전자를 뺀 결과는 호황기였던 2017~2018년 보다도 좋습니다. 상당히 긍정적인 결과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영업이익 감소에도 불구하고 현금흐름이 개선된 건 기업들이 현금흐름 위주의 경영을 했다는 걸 의미하겠죠. 현금흐름의 크기를 결정 짓는 건, 크게 영업실적(영업이익 또는 순이익)과 외상거래(매출채권, 매입채무) 그리고 재고조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영업실적이 주어진 결과라고 보면 외상거래를 늘리거나 줄여서, 재고자산을 늘리거나 줄여서 현금흐름을 어느 정도 조절할 수 있습니다.


올해 상장사들은 억지로 매출을 늘리기 위해 외상 거래를 하지는 않았나 봅니다. 구매업체의 매입채무를 서둘러 갚지도 않았을 테고요. 재고자산도 가능한 적게 가져가려고 했을 수 있습니다. 이렇게 운전자금을 줄이면 이익의 축소에도 불구하고 영업현금흐름이 개선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재고자산은 그 증감에 따라 수익성과 현금흐름에 반대의 영향을 줍니다. 재고를 줄이면 매출원가율이 상승하고 영업이익이 줄죠. 반대로 현금흐름은 개선됩니다.



올해 기업들이 외상 판매를 늘였군요. 매출채권이 증가해 현금흐름에는 마이너스의 영향을 주었습니다. 지난해보다 훨씬 컸네요. 현금 위주의 매출을 한 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재고자산이 감소하고 매입채무를 늘려 외상매출 증가로 인한 현금부족을 보충했군요.


예상했던 것과는 다소 다른 결과로군요. 특히 매출채권 증가의 폭이 재고자산과 매입채무보다 큽니다. 재고자산과 매입채무 외에 미수금 미지급금 선수금 선급급 등의 다른 운전자금에서도 현금흐름 개선이 나타났을 것이란 추정을 하게 됩니다.


투자의 행태도 크게 달라졌습니다. 공장이나 설비 등 자본적지출을 줄이는 대신 종속회사나 자회사 지분 등의 비영업 투자를 크게 늘렸습니다. 본업을 확대하기 보다는 다각화나 M&A에 더 열중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매출이 줄어드는데 공장을 세우기는 어렵겠죠. 주가가 떨어진 틈을 타 다른 회사 경영권 지분을 늘리기는 좋은 기회였을 테고요.



마지막으로 자금조달 측면을 보면 유상증자 등의 자기자본 증가 보다는 은행이나 회사채 시장을 통해 외부 자금을 조달했습니다. 코로나19로 주가가 크게 하락했다가 이후 빠른 속도로 상승 반전했지만 주식시장 상황이 유상증자를 하기에는 여의치 않았던 모양입니다.


차입금은 매우 큰 폭으로 증가했습니다.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거의 두 배에 달하거든요. 지난해에는 9월까지 11조원 가량을 차입했지만 올해는 18조원이 살짝 넘습니다.



영업현금흐름이 개선되었고 투자를 크게 늘리지 않았는데 외부차입을 훨씬 많이 한 것은 아무래도 현금 유동성 확보를 위한 것이었겠죠? 불확실성의 시대에는 현금이 왕이니까요. 유동성 확보는 국내 뿐 아니라 전 세계 기업의 올해 최고 화두입니다.


실제로 633개 업체의 현금유동성(현금과 단기금융상품의 합계)은 지난해 9월 130조원에서 155조원으로 늘었습니다. 삼성전자를 제외하더라도 104조원에서 127조원으로 증가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