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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원테크는 마그네슘합금 알루미늄합금 등의 경량 금속소재를 사용해 휴대폰, 테블릿 PC, 카메라, 노트북 등의 휴대용 IT기기에 외장 및 내장재, 조립품을 생산하고 있는 코스닥 상장사입니다. 어렵죠? 휴대폰 금속 케이스를 만들어 파는 회사라고 생각하면 되겠습니다. 2000년에 설립돼 2016년 코스닥시장에 상장했고 올해 12월 현재 시가총액이 1200억원 조금 넘습니다.


이 회사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한 독자의 댓글 때문이었습니다. 최근에 전환사채가 보통주로 전환이 이루어졌는데, 최종 전환가액인 1455원보다 한참 아래인 994원에 전환이 되었다는 거예요. 마지막으로 전환가액 조정(리픽싱)이 이루어진 후에 주가가 추가 하락하지도 않았는데 말입니다.


아시다시피 최근에 발행되는 전환사채들은 대부분 리픽싱 조항이 있습니다. 발행 이후 주가가 하락하면 한달에 한번, 또는 석달에 한번 전환가격이 하향 조정되죠. 어떤 기업은 그 조정의 정도를 최초 전환가액의 70~80%를 한도로 하지만, 상법상의 한도인 액면가까지 낮출 수 있도록 발행하는 기업이 더 많습니다.


문제가 많은 조항이죠. 일반 주식 투자자들 입장에서는 눈 뜨고 코 베이는 상황이 벌어지거든요. 주가가 한창 오르고 있는 상황에서 갑자기 아주 낮은 가격에 발행된 주식이 대거 등장하면 희석효과로 주가가 떨어지는 건 당연하잖아요. 일반주주의 부가 전환사채권자에게 부당하게 이전되는 겁니다. 조사를 해 본 건 아니지만 아마 전 세계에서 전환사채에 대해 우리나라처럼 리픽싱이 가능하게 한 나라를 찾아보기 어려울 겁니다.


당연히 선기능도 있습니다. 기업들이 자본확충을 하기 쉬워지죠. 전환사채는 보통주를 특정 가격에 살 수 있는 콜옵션이 내재된 채권인데, 그 옵션의 행사가격이 주가가 하락하면 따라서 하락하니 투자자 모집도 쉽고, 주식으로 전환될 가능성도 거의 확실해 집니다.


전환사채 투자자 입장에서는 승률 100%에 가까운 게임입니다. 전환가능 기간 중 가장 낮은 가격에 주식을 살 수 있는 권리를 갖고 있으니, 최초 발행시 전환가액은 의미가 없습니다. 주가가 하락할수록 주식으로 전환해 차익을 누릴 가능성은 오히려 높아집니다. 이건 뭐 돈 버는 게 땅짚고 헤엄치기죠.


그런데 이런 전환사채가 일반 공모로 발행되는 예는 거의 없습니다. 리픽싱의 특혜를 누리는 사람들은 대주주이거나 대주주와 결탁한 특정 세력이죠. 작전세력이나 기업사냥꾼의 전유물이 된 지 오랩니다.


장원테크는 상장 이래 지금까지 총 아홉 번의 전환사채를 발행했습니다. 그런데 그게 전부 최근 2년간 이루어졌습니다. 지난해 1월 4일 첫 발행결정이 이루어졌고, 올해 12월 8회차와 9회차 전환사채가 발행되었습니다.


짐작하시겠지만, 최대 주주가 바뀌고 난 후의 일입니다. 장원테크는 지난해 두 차례 최대 주주 변경이 이루어졌는데 1월과 7월입니다. 1월에 기존 최대 주주인 장현 외 1인이 삼본전자㈜ 외 5인에게 61%의 지분을 481억원에 양도했고요. 7월에는 삼본전자가 ㈜필룩스에 보유 주식 전부인 23.16%를 현물출자하면서 지금은 필룩스가 최대 주주로 있습니다.



삼본전자는 장원테크를 인수한 후에, 보유 주식 중 일부(700만주)를 현물출자하는 방식으로 필룩스까지 인수를 한 것이죠. 일타쌍피입니다. 필룩스는 12월 현재 주권 기준으로 17.82%, 전환사채를 포함하면 100%자회사인 와이케이파트너스(0.80%) 보유분을 합해 33.11%의 유효지분을 확보하고 있습니다. 지난달 일부 주식과 전환사채를 매도한 결과가 그렇습니다.


삼본전자와 필룩스는 본 시리즈에 조연으로 한번 등장한 적이 있습니다. 현대차 협력사이던 이원컴포텍이 새 주인을 맞아 바이오사업에 진출하면서 손을 잡은 미국 바이오업체 '리미나투스파마'의 100% 지분을 가진 곳이 바로 필룩스입니다. 필룩스의 100% 자회사가 엉뚱하게 다른 코스닥업체의 바이오사업 파트너로 등장한, 상부상조인지, 배신인지 모를 희한한 스토리를 전한 바 있습니다.


삼본전자는 장원테크를 인수한 것을 시작으로 활발한 M&A를 통해 지금은 필룩스 그룹으로 불릴 만큼 몸집을 키웠습니다. 장원테크 아래에는 건설소재기업 이엑스티가 있고, 최근 전지현 정우성 김혜수의 전 소속사인 엔터테인먼트 회사 IHQ 인수를 위한 양해각서를 체결했죠.


삼본전자와 필룩스에 대한 이야기를 하자면 꽤 길어질 듯 하니 잠시 미루고 장원테크를 중심으로 지배구조부터 보겠습니다. 그룹 지배구조 최상단에 있는 삼본전자의 최대 주주는 클로이블루조합이라는 곳이고, 이 조합의 최대 출연자는 ㈜건하홀딩스입니다. 건하홀딩스의 최대 주주는 배상윤 필룩스그룹 회장입니다.



배상윤 회장은 건하홀딩스와 클로이투자조합을 통해 삼본전자부터 이엑스티까지 4개의 상장사를 거느리고 있죠. 그 외에 많은 계열사들이 있는데 인수 이전부터 보유한 회사 말고는 대부분 투자목적의 회사들입니다. 필룩스와 장원테크의 자회사들 역시 마찬가지지요. 삼본전자 역시 다를 바 없고요.


배상윤 회장이 장원테크를 인수하고 난 후 부쩍 잦아진 게 바로 전환사채 발행입니다. 2019년 1월 인수와 동시에 200억원의 1회차 전환사채를 발행해 솔로몬투자1호조합이 사들였는데, 이 조합은 곧바로 실제 주인에게 매도를 했고요. 2회차와 3회차 전환사채는 삼본전자가 대부분 인수합니다. 4회차, 6회차, 7회차에는 필룩스가 인수자로 나서죠. 이달 들어서는 50억원과 30억원의 8회차와 9회차 전환사채가 발행되었죠. 그렇게 아홉번에 걸쳐 발행된 전환사채가 830억원에 달합니다.


장원테크가 발행한 전환사채들은 발행 이후 다시 2차 매도가 이루어져 실제 주인이 누구인지 정확하게 파악하기는 어렵습니다. 일부는 이미 주식으로 전환이 이루어져 유통되고 있고, 1회차의 경우 105억원 가량이 상환되었습니다.


8회차와 9회차가 발행되기 전인 9월말 현재 전환사채 잔액은 455억원이었습니다. 그런데 코로나19사태 이후 잠잠하던 장원테크 주가가 갑자기 요동을 칩니다. 1000원대 초반이던 주가가 9월 이후 4000원 언저리까지 치솟죠. 그러자 이미 전환조건을 충족한 전환사채들이 일제히 전환권 행사에 나섭니다.1회차 빼고는 전부 1000원대로 전환가액이 조정된 것들이라 전환만 하면 큰 수익을 얻을 수 있었죠. 12월 15일 현재 전환기간에 진입한 5회차까지 미전환된 사채는 150억원 정도입니다.



그 중 하나가 100억원 규모로 발행된 5회차 전환사채입니다. 11월 들어 집중적으로 전환이 이루어져 5억원도 채 남아 있지 않습니다. 가장 늦게 전환조건이 충족되었지만 가장 빠른 속도로 전환이 이루어졌죠.


지난해 11월 발행된 이 전환사채를 인수한 곳은 메자닌 전도사로 유명한 김형호씨가 주인인 한국채권투자자문입니다. 최초 전환가액 2400원에 발행됐는데, 시가 하락에 따른 조정으로 지난 8월19일 마지막으로 1455원에 전환가액이 하향 결정됐죠. 그리고 나서는 추가로 전환가액이 조정된다는 공시가 없었어요.


그런데 전환기간에 돌입하자 마자 나온 전환청구권 행사가 주당 994원에 된 겁니다. 11월에는 이미 장원테크 주가가 2000원대 초반으로 하락한 상태여서 이전에 전환권을 행사한 사채권자들 보다 수익률이 덜할 뻔 했죠. 그런데 전환가액이 500원이나 낮아졌으니 한국채권투자자문(최종 보유자라면) 역시 대박을 터뜨릴 수 있었죠.


황당한 건 일반 주주들입니다. 전환물량이 쏟아지면서 주가가 급락하는 것도 서러운데, 5회차 전환사채가 시가의 절반도 되지 않는 수준으로 전환이 되어 나오니 피해를 고스란히 떠안게 됐습니다.



알고 보니, 5회차 전환사채에는 다른 전환사채에는 없는 전환가액 조정 조항이 하나 더 있었습니다. 바로 사채의 전환가액(1455원)을 하회하는 가액으로 유상증자가 이루어질 경우 그 신주 발행가격을 전환가액으로 한다는 것입니다.


장원테크는 지난 5월에 55억원의 유상증자를 필룩스를 대상으로 발행을 했는데, 신주 발행가격이 994원이었습니다. 그 바람에 다른 전환사채와 달리 5회차 전환사채는 6월 발행된 신주와 같은 자격으로 보통주 전환을 할 수 있었던 것이죠.


좀 심하죠? 시가 하락을 전환가액에 반영해 조정한다는 것만으로도 일반주주에게 피해를 입히는 일인데, 유상신주 발행의 할인 혜택까지 사채권자에게 얹어주다니요. 지금까지 본 전환가액 조정 조항 중 가장 심한 특혜인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