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재무제표를 읽는 사람들의 기사는 작성 후 최소 1주일 경과된 시점에 무료 공개되고 있음에 유의 하시기 바랍니다.

필룩스그룹에 대한 댓글이 많이 달립니다. 대부분 높은 주가에 매수했다가 크게 물린 후 본의 아니게 장기 투자 중인데 어찌하면 좋겠냐는 하소연 같은 겁니다. 재무제표를 읽는 사람들(이하 재읽사)이 분석을 업무로 하지 투자전문가는 아니어서 속 시원한 답변을 해주지 못합니다.


다만 기업들이 본업을 통해 돈을 버는지, 어떻게 자금을 조달해서 어디에 쓰는지, 그리고 그 활동들의 현재 상황이 어떤 지에 대해서는 좀 알려드릴 수 있습니다. 이번 글은 그런 목적으로 씁니다.


필룩스그룹에 4개 상장사가 있는데, 지금의 최대 주주가 등장한 2016년 이후 현금흐름은 좋지 않습니다. 회사를 키우거나 신사업을 벌이려면 돈 버는 회사가 있어야 하는데, 4곳 중 어느 곳도 꾸준하게 현금흐름을 만들어 내지 못합니다. 삼본전자가 그 나마 약간의 잉여현금을 창출해 내는 편인데 미미합니다.


잉여현금흐름을 만들어 내지 못한다는 것은 본업에서 돈을 벌더라도(영업활동 현금흐름) 설비투자와 배당금 지급을 하고 나면 남는 돈이 없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필룩스와 장원테크는 2016년 이후 본업에서 조차 현금흐름이 마이너스이니 설비투자를 할 돈도 없습니다.



그런데 필룩스그룹의 계열사들은 본업이 아닌 곳에 쓰는 돈이 엄청 많습니다. 주로 계열사 지분을 산다거나 다른 기업에 투자하고 있죠. 대표적인 게 바이오사업 같은 것인데, 대주주와 회사 경영진들은 미래 먹거리를 위한 사업다각화이며, 그 역시 본업이라고 주장하겠죠. 재읽사가 추정한 현금흐름은 종속회사를 제외한 개별 재무제표를 기준으로 한 것이고, 그 기업이 원래 해 오던 본업과 무관한 지분투자(종속회사이든, 관계회사이든, 단순 투자이든)는 전부 딴짓(부업?)으로 규정한다는 걸 미리 말씀 드립니다.


매출액이 가장 큰 필룩스는 2016년 이후 지난해 3분기까지 490억원의 현금이 빠져나갔습니다. 영업활동의 결과 67억원의 현금 적자를 보았고, 토지나 건물 등의 유형자산을 취득하는데 돈을 쓰고 나니 490억원의 현금 부족이 생긴 겁니다.


영업활동의 결과에 비해 현금 부족이 커진 중요한 이유는 2019년 7월초 매입한 삼성동 사옥에 있습니다. 돈을 벌지도 못하는 회사가 289억원에 빌딩을 사들이죠. 당시 필룩스가 가진 현금은 164억원이었습니다. 영업활동의 결과 남긴 현금이 없으면 가진 현금을 소진하거나 부족분을 외부에서 조달해서 메워야죠. 필룩스는 삼성동 사옥을 사들이기 위해 금융기관에서 200억원을 단기차입합니다.


그런데 필룩스의 계열사들은 벌이가 시원치 않은 와중에 부업에 열중합니다. 특히 2018년과 2019년 집중적으로 영업 외의 곳에 투자합니다. 대장회사 격인 필룩스는 2016년 이후에 본업이 아닌 곳에 1835억원을 썼는데, 그 중 1440억원을 2018~2019년에 지출했습니다. 삼본전자도 같은 기간 약 1200억원을 부업에 썼죠. 장원테크는 2019년 이후 지난해 3분기까지 922억원을, 이엑스티는 같은 기간 690억원을 집행합니다. 대부분 다른 회사 지분을 사는 데 쓴 돈이죠. 4개 계열사가 2018년 이후 이렇게 쓴 돈이 4200억원에 달합니다.


회사가 돈을 벌지 못하는데, 그 돈이 다 어디에서 왔겠어요. 전부 외부에서 차입을 하거나 증자를 통해 들여왔죠. 4개사가 2016년 이후 조달한 외부자금(순액)이 단순 합산하면 5000억원이 넘습니다. 계열사들끼리 주고 받은 게 있으니 실제로는 그 보다 적을 겁니다. 대부분은 전환사채를 발행한 것이고, 그래도 모자라면 유상증자를 했습니다.



염불에는 뜻이 없고 잿밥에만 관심이 있는 대주주들의 특징은 공모 보다는 사모를, 유상증자보다는 전환사채를 선호한다는 것이죠. 당장 지분율이 희석될 위험을 피할 수 있고, 공시와 보고의 의무도 약하고, 절차도 간단하고, 1년 간의 의무보유없이 처분도 가능합니다. 게다가 주가가 하락하더라도 그에 맞추어 전환가액을 떨어뜨리고 전환시 확보하는 주식 수는 늘어나니 손해를 보기는커녕 오히려 나중에 주가차익을 누릴 기회는 커지지요.


필룩스는 블루커넬이 최대 주주로 등장한 이후 2016년 7월 1회차 50억원을 시작으로 지난해 4월까지 총 16차례의 전환사채를 발행했는데, 발행 총액이 1500억원에 이릅니다. 지난해 9월말 현재 미상환 잔액은 217억(13회차 17억원, 15회차와 16회차 각각 100억원)원이죠. 유일하게 시가하락에 따른 전환가액 조정 조건이 없는 13회차 17억원은 전환가액이 현재 주가보다 크게 높은 9000원대이니 아무래도 만기 상환될 가능성이 높아 보이고, 15회차와 16회차는 올해 1월과 4월부터 보통주로 전환될 것 같네요.



사라진 1200억원의 전환사채 대부분 보통주로 전환된 모양입니다. 2016년 이후 전환사채의 전환으로 늘어난 자본이 729억원이고, 자본으로 인정되는 전환권 대가까지 하면 830억원 정도 되더라고요. 주가가 하락할 때 전환가액을 한껏 낮추었다가 주가가 최고조로 상승했을 때 보통주로 바꿔 팔아 엄청난 투자차익을 남기고 떠났을 겁니다. 특히 필룩스 주가가 3000원대에서 3만원까지 10배 가까이 급등한 2018년에 보통주로 전환했다면 완전 초대박이었겠죠.


아시다시피 단순히 주가가 오르고 내린다고 회사에는 물리적으로 아무런 영향이 없습니다. 매출이나 이익이나 자본이 늘지도 않고, 현금이 들어오는 것도 아니죠. 주주들 간에 주식이 오갈 뿐입니다. 주가가 10배 올랐다고 회사가 좋아지는 건 아닙니다.


다른 회사도 비슷합니다. 장원테크는 계열에 편입된 2019년이후 총 9차례에 걸쳐 830억원의 전환사채를 발행해 아직 만기도래한 것은 없고, 1회차 200억원 중 95억원 외에는 조기상환 공시가 없는데 지난해 12월15일 현재 미상환 잔액은 150억원 뿐입니다. 특히 지난해 11월 이후 장원테크 주가가 갑자기 4000원대로 치솟자 전환청구권 행사가 집중적으로 이루어집니다. 삼본전자는 2018년 9월부터 총 5차례 전환사채를 발행해 711억원을 조달했는데 268억4000만원을 제외한 나머지가 보통주로 전환됐습니다.



필룩스그룹 회사들은 부채비율이 높지 않습니다. 지난해 9월말 현재 장원테크가 371%인 걸 제외하고, 나머지 3개사의 부채비율은 31~32%대로 매우 낮은 편입니다. 그렇다고 재무구조가 건실하다고는 볼 수 없습니다. 발행한 전환사채들이 대부분 자본으로 전환된 결과일 뿐이죠. 부채비율이 낮아도 회사에 남아 있는 돈이 없으니 부족한 현금을 보충하거나 추가로 투자를 하려면 위해 계속해서 전환사채를 발행해야 합니다.


필룩스그룹이 본업을 제쳐두고 부업에 대대적인 투자를 했어도 이득을 봤으면 괜찮죠. 그런데 아직 좋은 결과를 보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영업과 무관한 투자로 이익을 보거나 현금을 벌어들이면 그 역시 손익계산서에 이익으로 잡히고, 현금흐름표에 영업활동 현금흐름의 유입으로 계산됩니다. 그런데 아직 뚜렷한 변화는 없습니다. 필룩스가 지난해 3분기까지 흑자전환하고 영업활동 현금흐름이 순유입으로 바뀐 정도? 그러나 현재 벌여 놓은 투자의 면면을 보면 지속성이 있는 개선이라고 장담하기는 어렵습니다.


필룩스그룹은 각 사들이 따로도 투자하지만 함께 투자를 하기도 합니다. 특히 대규모 자금이 들어가는 프로젝트일 경우 전 계열사가 십시일반 돈을 보탭니다. 역시 가장 눈에 띄는 투자는 2018년 필룩스와 삼본전자의 주가를 급등시켰던 신약개발사업 진출이고, 그랜드 하얏트 호텔 지분 인수에도 거액이 들어갔죠. 그리고 최근 엔터테인먼트회사인 IHQ를 인수하게 됐죠.


회사의 운명도 그리고 주가도 결국 이 투자들의 성과에 좌우될 것으로 볼 수 있는데요. 다음 편에서 신약개발 사업부터 진행상황을 하나하나 점검해 보기로 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