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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룩스의 유상증자 1차 발행가액이 3660원으로 결정되었군요. 지난달 25일 주가가 큰 폭으로 하락하면서 기준 주가가 낮아진 영향이 큽니다. 주가가 360원 하락했는데, 그로 인해 1차 발행가액이 200원 이상 낮아졌습니다. 기준 주가는 25일 가중산술평균 주가인 5350원입니다.


신주 발행가액이 3660원으로 확정되면 필룩스는 약 1321억원을 조달하게 됩니다. 지난해 8월 처음 유상증자를 결정했을 당시 예상했던 것보다 267억원 정도 증가했습니다. 차입금 상환 후 확보할 수 있는 현금도 늘었습니다. 15회차 전환사채 100억원이 지난 18일 3165원에 보통주로 전환되었거든요. 2월 3일 상장 예정인데, 곧바로 팔아서 이익을 실현할 지, 계속 보유할 지 귀추가 주목됩니다.


제넨셀 효과로 주가가 급등한 틈을 타 목돈을 챙긴 경영진들이 있네요. 김진명 부사장, 장준 상무, 김형철 이사가 그 분들입니다. 이 세분은 2017년 1월 20일 이사회 결의로 주식매수선택권(스톡옵션)을 부여 받았죠.



이 분들은 3356원의 행사가격에 주식매수선택권을 받았는데, 필룩스가 유상증자 등을 여러 번 하면서 행사가격이 2612원으로 내려왔습니다. 2019년 같은 날 권리를 행사해 보통주를 받았고, 또 지난달 21일 마치 약속이나 한 듯 동시에 보유 물량 전부를 장내 매도했네요.


이 분들이 주식을 처분한 21일은 제넨셀 효과로 연일 급등하던 주가가 반락한 이틀째입니다. 주가가 꺾이자 바로 팔아 버린 거죠. 1월28일이 유상증자 신주배정 기준일인데, 며칠을 기다리지 않고 팔았네요. 신주를 받을 생각이 없었다는 겁니다.


이날 필룩스 주가는 변동성이 컸습니다. 6344원에 시작한 주가가 6473원까지 반등했지만 결국 5305원으로 끝났죠. 내부자들이니 장초반에 팔았다고 보면 최소한 6000원 이상에서 매도주문을 냈을 것 같습니다. 매도가액을 6000원이라고 가정하면 김진명 부사장이 3억원, 장준 상무가 2억원, 김형철 이사가 1억5000만원 정도의 차익을 얻었겠습니다.


이 분들이 더 높은 주가에 팔 수 있는 기회가 있었습니다. 2018년 3만원 근방까지 갔던 주가가 이후 약세를 보였지만 2019년 상당기간 1만원 위에 있었고 3천원선까지 떨어졌던 주가가 삼본전자로 최대 주주가 바뀌면서 2019년 10~11월 1만원을 회복하기도 했습니다.


그때도 팔지 않던 주식을 이제 와서 왜 팔았을까요. 신주를 싸게 받을 기회까지 날리고 말이죠. 필룩스의 핵심 이슈인 항암 치료제 개발은 여전히 진행 중이고, 2000억원 이상이 들어가는 그랜드 하얏트 서울 인수도 거의 마무리 단계입니다. 유상증자의 성공 가능성에 파란 불이 켜지면서 회사가 유동성 압박에서 벗어날 것으로 보이는 시점입니다. 그런데, 더 이상 주가 상승을 기대할 수 없다고 판단한 건가요?


항암치료제 만큼이나 필룩스의 미래에 큰 변수가 될 그랜드 하얏트호텔 서울 인수 건에 대해 좀 알아보겠습니다. 인수 구조가 매우 복잡한데 좀 단순화시켜 설명을 하자면, 그랜드 하얏트 서울을 운영하는 회사가 서울미라마(유)이고, 필룩스가 다른 투자자들과 함께 인마크1호 사모펀드를 설립해, 서울미라마(유) 지분 100%를 인수하는 겁니다.



3월에 있을 유상증자는 다른 투자자들이 보유한 우선주를 인수할 자금을 마련하기 위한 것이고, 궁극적으로 인마크1호 펀드의 지분 전부를 필룩스와 계열사들이 보유하게 되죠. 인마크1호 사모펀드 출자액이 총 2064억원에 달합니다. 필룩스가 콜옵션을 행사해 다른 투자자의 우선주를 매입할 때는 연 8%의 이자가 붙기 때문에 전체 투자액은 훨씬 늘어나게 되죠. 아마도 인마크1호 사모펀드는 향후 서울미라마(유)와 합병을 하게 될 테고 그렇게 되면 필룩스그룹이 서울미라마(유)를 완전히 소유하게 되는 겁니다.


그런데 서울미라마(유) 지분을 인수하는 데 들어간 돈은 2064억원이 전부가 아닙니다. 인수대금은 5578억원에 달합니다. 인마크 1호 사모펀드는 인마크호스피탈리티(유)라는 장부상 회사(SPC)를 설립해 4400억원(선순위 3400억원, 후순위 1000억원)의 인수금융을 대주단으로부터 차입했고, 그 SPC는 지난해 3월 서울미라마(유)와 합병했습니다. 서울미라마(유) 인수를 위해 일으킨 차입이 서울미라마(유)의 부채가 된 것이죠. 그랜드 하얏트호텔 서울 운영에서 발생한 수익으로 차입금을 갚겠다는 의도가 숨어 있는 겁니다.


4400억원의 인수금융에 참여한 대주가 무려 35개사나 됩니다. 32개사는 금융회사이고 3개사는 일반 기업입니다. 선순위 3400억원은 연 3.20%, 후순위 1000억원은 연 4.60%의 고정금리로 이자를 줘야 합니다. 매년 이자가 155억원에 이릅니다.



그랜드 하얏트호텔 서울 인수를 추진할 때는 기대가 컸습니다. 2020년 리노베이션을 끝내고 나면 객실평균요금과 객실이용률이 증가할 것으로 예상했고, 호텔을 운영하는 서울미라마(유)의 매출은 연평균 6.3%씩 늘어나고 EBITDA마진은 2017년 11.27%에서 2024년 20% 이상으로 상승할 걸로 내다봤습니다. 필룩스가 인수에 나서게 된 건 이런 장밋빛 청사진 때문이었죠.


그런데 코로나19가 모든 걸 바꾸어 놓았습니다. 전 세계 호텔이 치명타를 입었죠. 그랜드 하얏트호텔 서울이라고 예외일 수는 없습니다. 서울미라마(유)는 지난해 3분기까지 고작 404억원의 매출을 기록했습니다. 2019년 연간 매출의 40%가 안됩니다. 영업손실도 269억원에 이릅니다. 호텔 영업의 부진과 함께 인수금융을 떠안은 차입금 4400억원의 이자가 손실 확대에 결정적으로 작용했을 겁니다.



그랜드 하얏트호텔 서울의 영업부진은 결국 인마크 1호 사모펀드의 운영 실패일 수 밖에 없죠. 펀드 운영의 성과를 출자자들에게 나누어 주어야 하는데, 그럴 수 있는 상황이 아닙니다. 필룩스는 배당을 한번도 받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우선주에 투자한 AR3 HOLIDAY와 인마크24호 펀드는 내부수익률 8%에 해당하는 분배금이 매년 쌓입니다. 필룩스가 콜옵션을 행사해 우선주를 사올 때 그 분배금을 더해서 사야 하는 거죠. 그래서 AR3 HOLIDAY 지분을 사는데 320억원이 드는 겁니다.


인마크1호 사모펀드의 손실은 전부 필룩스와 인마크23호 펀드의 출자자(삼본전자, 장원테크, 이엑스티)에게 귀속됩니다. 지난해 3분기 현재 필룩스의 지분가치는 157억원으로 출자금 440억원의 64%를 손해봤습니다.


이 투자가 성공하려면 결국 호텔산업이 다시 좋아져 그랜드 하얏트호텔 서울에 손님이 북적대야 하는데, 앞으로 어떻게 될까요? 계속 부진하면 정말 큰 일입니다. 다른 건 몰라도 서울미라마(유)가 지고 있는 부채에 원리금을 꼬박 꼬박 지급해야 하는데, 호텔 영업이 안되면 결국 필룩스가 상환 자금을 지원할 수 밖에 없지 않겠어요? 원리금 못 갚으면 헐값에 팔거나 파산해야 하는데, 그럴 순 없잖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