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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TV드라마 등 영상콘텐츠 제작업체인 엔케이물산의 과거 이름은 고려포리머였습니다. 유명한 기업사냥꾼 남궁견 회장이 이 회사를 인수한 건 지난 16년 전인 2006년입니다. 당시 고려포리머는 산업용수출포장재(FIBC) 사업을 영위하고 있었죠. 남궁 회장이 인수하기 전에도 무려 13번이나 최대 주주가 변경될 정도로 우여곡절이 많은 회사입니다. 사명도 다섯 번이나 바뀌었습니다.
남궁 회장은 엔케이물산을 인수한 것을 시작으로 코스닥시장의 큰 손으로 등장합니다. 세종로봇, 삼협글로벌, 유한NHS, 에스아이리소스 등을 M&A하면서 수천 억원의 재산을 형성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그가 인수한 회사들은 대부분 적자 누적으로 위기에 봉착한 곳이었고, 그는 저가에 기업을 인수한 후 대규모 감자와 증자를 거쳐 되파는 식으로 재산을 불려 나갔습니다. 기업사냥꾼으로 이름을 떨치게 되었죠.
그는 기업사냥꾼이라는 이미지가 억울했던 모양입니다. 6년 전 자본시장미디어 더벨과 인터뷰에서 자신은 기업사냥꾼이 아니라 '기업 생존 전문가'라고 주장했죠. 적자에 빠진 기업에 메스를 가해 되살리는 게 자신의 일이라고 말이죠. 인수한 회사를 되팔고, 되판 회사가 결국 상장폐지나 파산한 사례에 대해서는 '수술이 실패해 어쩔 수 없이 처분하는 수순을 밟기도 하다'는 입장을 보였습니다. 참고로 위에 언급한 회사 중 현재 상장 유지 중인 곳은 석탄 채굴업을 하는 에스아이리소스 뿐입니다.

엔케이물산을 축으로 하는 기업집단에는 상장사 미래아이앤지가 계열사로 포진하고 있고, 비상장회사로 온누리여행사, 온누리투어 등 여행업을 영위하는 회사와 문화콘텐츠업에 속하는 UFO프로덕션 온누리프로덕션, 스튜디오인빅투스 등이 복잡한 지배구조로 얽혀 있습니다. 지난해 9월말 현재 종속회사는 인도네시아 소재 산업용포장재 회사인 KOP 하나 뿐이지만 관계기업까지 포함하면 소속 회사가 16개에 이릅니다. 포비스티앤씨를 매각하기 전인 지난해 3월말 현재로는 25개로 더 많았습니다.
최상단에 기업인수를 업으로 하는 ㈜하나모두가 있고, 엔케이물산-미래아이앤지-포비스티앤씨-미래산업으로 상장사의 계층구조가 만들어져 있었습니다. 포비스티앤씨를 매각하면서 자회사인 디모아와 온누리투어, 상장사인 미래산업, 미래산업의 100% 자회사인 ㈜아론테크가 계열에서 제외되었죠.
지금도 지배구조가 복잡하지만, 포비스티앤씨를 매각하기 전에는 더 복잡했습니다. 감히 그릴 엄두가 나지 않아 지난해 3월말 현재 지배구조를 엔케이물산 분기보고서를 그대로 옮겨 놓았습니다.

포비스티앤씨 매각은 엔케이물산 그룹에 매우 큰 이벤트였습니다. 엔케이물산이 직접 보유한 타법인주식은 이 당시 모두 9곳(상장사는 포비스티앤씨, 미래아이앤지, 버킷스튜디오)이었는데, 포비스티앤씨가 자산총액 1124억원으로 가장 큰 회사였습니다. 다른 8곳을 다 합친 규모와 큰 차이가 나지 않을 정도였으니까요. 그 다음으로 큰 회사가 포비스티앤씨의 최대 주주였던 미래아이앤지로 자산총액 780억원이었죠. 엔케이물산의 자산총액은 지난해 3월 현재 579억원이었고요.
계열내 회사 중 최대 기업인데다, 마이크로스프트 총판업을 하는 디모아의 96% 지분과 온누리투어 지분 100%를 갖고 있었고, 상장사인 미래산업의 최대 주주이기도 한 곳이 포비스티앤씨였습니다.
포비스티앤씨가 영위하는 소프트웨어 총판업이 그룹의 주력 사업인 영상 콘텐츠 제작이나 여행알선업과 결이 다르지만, 자산비중의 측면에서 보면 그룹의 가장 큰 부분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 부분을 사실상 통째로(온라인투어는 매각 전 분리) 팔았다는 건 보통 일이 아니죠. 남궁 회장이 소프트웨어 총판업에 뜻이 없었다면 아주 큰 기업장사를 한 것이고, 그게 아니라면 무언가를 위해 큰 돈이 필요했다고 생각해 볼 수 있겠죠.
남궁견 회장이 엔케이물산(당시 고려포리머)을 인수할 당시만 해도, 지배구조는 단촐했습니다. 종속회사로 잇츠티비와 해외 현지법인 3곳이 있고, 인디시스템과 시고라는 회사를 관계기업으로 두고 있는 정도였습니다. 이들 중 지금 남아 있는 곳은 산업용포장재(FIBC) 해외 현지법인인 KOP가 유일합니다.
엔케이물산은 지금까지 총 15차례 타법인주식 취득 공시를 냈고, 11차례 타법인주식 처분 공시를 냈습니다. 빈번한 M&A와 신설을 통해 그룹을 확장해 온 것이죠. 하나물산 온누리여행사 하나홀딩스 등도 한때 고려포리머의 자회사격, 또는 손자회사격이었습니다.
자칭 기업생존 전문가의 소유가 된 엔케이물산은 견실한 기업이 되었을까. 딱히 그런 것 같지는 않습니다. 엔케이물산은 2019년까지 4년 연속 영업적자를 기록 중입니다. 지난해 9월까지도 적자를 지속했죠. 유가증권시장이었기에 망정이지, 코스닥 상장사였으면 이미 관리종목에 지정됐고 지난해에도 영업손실로 귀결이 되면 상장폐지도 가능한 실적입니다.

더욱 당황스러운 건 영위하는 사업의 내용입니다. 과거 고려포리머 시절 영위하던 산업용포장재는 자회사를 통해 명맥을 유지하고 있고, 자체적으로는 영상콘텐츠, 여행, 유통, 자원, 구매대행(MRO)사업을 하고 있는데, 각 사업의 매출이 들쭉날쭉합니다.
자원사업은 이미 접었고, 자산비중이 가장 큰 영상콘텐츠사업은 2018년 이후 실적이 거의 없다시피 합니다. 지난해 9월까지 매출은 0원입니다. 그나마 지속성을 띠는 여행사업도 지난해 코로나19의 직격탄을 맞은 영향인지 매출이 없다시피 하죠. 매출 공백을 메우느라 부랴부랴 시작한 게 구매대행사업인 모양인데, 이를 통해 매출의 외형은 유지했지만 실속은 없었습니다. 이익을 내지 못했죠.
이 회사의 자랑거리는 부채비율이 15~16%로 매우 낮다는 것인데, 자랑할 만한 일이 아닙니다. 적자행진을 하는 기업의 낮은 부채비율은 청신호가 아니라 오히려 적신호인 경우가 많습니다. 외부자금을 차입할 능력이 없어서 부채비율이 낮을 수 있거든요. 부족한 자금을 유상증자로 메우면 살아갈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하면 유동성 위기에 봉착할 수 있습니다.
엔케이물산은 2017년까지 외부차입과 유상증자로 외부 자금이 크게 유입되었지만 이후로 뚝 끊긴 상황입니다. 차입금을 갚고 있고 유상증자는 2019년 10억원이 전부죠. 전체 자산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게 현금과 계열사 주식입니다. 현금흐름을 자체적으로 창출하기 어렵고 외부자금 유입도 되지 않는다면, 현금 보유에 대한 필요성이 높아질 수 밖에 없습니다. 실적 부진과 계열사 주식의 높은 비중은 이 회사가 남궁견 회장의 소유가 된 후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여실히 보여주는 대목이죠. 네, 자리를 잡은 본업은 아직 없고 타 기업 인수에 열중해 왔다는 걸 말입니다.
엔케이물산 그룹은 왜 최대 자산인 포비스티앤씨를 팔아야 했던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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