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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견 회장이 하나모두와 세종로봇을 통해 엔케이물산(구 고려포리머)을 인수한 게 2006년 11월입니다. 엔케이물산의 대표이사이던 안병탁씨 외 3인이 가진 6.11%의 지분을 주당 1875원에 장외 매수합니다. 세종로봇은 그해 1월 하나모두의 자회사인 사이언스에듀가 현물출자 방식으로 인수한 곳으로 남궁견회장이 거의 무자본으로 인수한 후 주가 급등으로 큰 이득을 챙겼지만 1년 후인 2007년 매각 직후 관리종목에 지정되고 2년 후에 상장폐지되었죠.


엔케이물산은 이 해에 최대 주주 변경의 신기록을 세웁니다. 무려 5차례, 전년인 2005년까지 하면 8차례나 최대 주주가 바뀌죠. 남궁견 회장이 인수하기 직전 최대 주주는 이호영 외 2인입니다. 이호영외 2인은 2006년 8월에 자신들이 100% 지분을 보유한 골드플러스와 함께 엔케이물산의 유상신주 386만주를 주당 1000원(38억6000만원)에 사들여 최대 주주가 되더니 한달 후부터 골드플러스 보유분 186만주를 장내외에서 손해를 보고 전부 처분합니다.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행동이죠.


조금 자세히 보면, 먼저 골드플러스가 3자배정 유상증자에 참여해 18억6000만원의 신주를 취득합니다. 그리고 1주일 후 추가로 60억원의 유상증자가 이루어지고 이호영외 2인이 이 중 20억원어치를 인수합니다. 그런데 두 번째 유상증자 대금 60억원의 조달 목적은 타법인지분을 취득하는 것이었고, 대항이 되는 타법인은 다름 아닌 골드플러스였습니다. 엔케이물산은 60억원을 이호영외 2인에게 지급하고 골드플러스 지분 100%를 인수합니다.


엔케이물산의 100% 자회사가 된 골드플러스는 유상증자로 취득한 엔케이물산 지분 중 50만주는 장남희라는 분에게 넘기고, 나머지 지분은 장내에서 전부 손해보고 팝니다. 그 손해는 결국 100% 모회사인 엔케이물산의 몫으로 돌아오죠.



골드플러스의 100% 지분을 보유하던 이호영외 2인은 엔케이물산 유상신주를 20억원에 인수하는 대신, 순자산 5억원, 당기순이익 1억원 남짓의 작은 회사 골드플러스를 엔케이물산에 60억원을 받고 팔 수 있게 되었죠.


그해 말 엔케이물산은 골드플러스에 대해 약 43억원의 감액손실을 인식합니다. 60억원을 주고 산 골드플러스 지분의 장부가액은 9억4100만원이 됩니다. 최대 공정가액 17억원 가량인 골드플러스를 60억원 주고 산 셈이 되죠.


결국 남궁견 회장과 이호영외 2인은 같은 편이었던 겁니다. 실제로 하나모두로 최대주주가 바뀐 엔케이물산은 주주총회를 통해 새로운 경영진을 선임하는데, 이호영씨도 이사진에 진입하게 됩니다.


남궁견 회장에게 인수된 후 엔케이물산은 본격적인 주식장사에 나섭니다. 전자기기 제조업체 라딕스(50억원), 근해어업업체 삼성수산(129억원), 양계도소매업체 ST&I글로벌(85억원), 섬유제품 제작업체 엠아이컨텐츠홀딩스(60억원), 네트워크솔루션업체 에너랜드코퍼레이션(50억원), 보안솔루션업체 대한종합상사(36억원), 필리핀 현지 호텔운영업체 BXT 코퍼레이션(83억원), 솔루션개발업체 디올메디바이오(83억원) 등이 나란히 엔케이물산 포트폴리오에 담깁니다. 최근으로는 미래아이앤지(2014년) 포비스티앤씨(2016년), 비덴트(2018년), 아티스트코스메틱(2020년) 등이 있죠. 위 기업들은 공시가 이루어진 것이고요, 공시되지 않은 경영참여 목적의 지분 취득이나 단순투자 목적까지 포함하면 훨씬 더 많습니다. 2008년에 예식장업을 하는 하나물산 지분 17.74%(85억원), 2010년에 리소스뱅크 지분 100%(13억원)과 디에이치패션 지분 27.44%(91억원), 2013년에 온누리투어(9억원)를 취득한 것 등이죠.


팔기도 많이 팔았습니다. 진득하니 보유한 게 별로 없습니다. 대부분 부실한 기업을 인수했는데, 남궁 회장이 기업 생존 전문가의 면모를 보여준 사례를 찾기는 어렵군요. 4.99% 지분을 가졌던 라딕스는 한달 만에 팔아 5억원의 손실을 봤고, 삼성수산 지분도 몇 달 안돼 전량 매각(129억원)했죠. 2018년에 매입한 관계회사 매일상선도 2010년부터 팔아치우기 시작하죠. 대한종합상사는 2012년 세 차례에 걸쳐 매각해 64억원의 현금을 확보합니다. 이 밖에도 2012년 에스아이리소스(64억원), 2013년 위폐감별기업체 에스비엠(76억원) 등 투자한 기업의 대부분을 오래 지나지 않아 처분합니다.


엔케이물산은 지난해 포비스티앤씨, 디에이치패션, 에어뱅크를 모두 2분기 중 매각했습니다. 그리고 유에프오프로덕션 19억원, 버킷스튜디오 10억원, 아티스트코스메틱 90억원어치를 인수했죠. 현재 경영참여 목적으로 보유하고 있는 지분은 2012년 취득한 해외 현지법인인 KOP와 미래아이앤지 뿐입니다.



엔케이물산그룹의 지배구조를 엔케이물산 중심으로 그리면 지난해말 현재 위 그림과 같습니다. 지배구조의 상단에는 하나모두와 하나물산이 있고, 그 위에 남궁견 회장이 있죠. 엔케이물산이 하나물산의 지분 0.64%를 보유해 상호출자 관계에 있고, 아티스트코스메틱은 미래아이앤지가 엔케이물산과 같은 49.72%의 지분을 갖고 있죠. 그룹 전반적으로는 여행업과 엔터테인먼트그룹이 상층그룹을 엔케이물산, 미래아이앤지 등이 하층그룹을 형성하고 있습니다.


남궁견 회장이 지속 보유할 것으로 보이는 기업들은 엔케이물산 같은 상장사가 아니고 하나모두 하나물산 등 지배구조 상위기업과 온누리투어, 온누리프로덕션 등의 상층그룹에 속한 비상장사들입니다. 엔케이물산 그룹의 전체 지배구조는 자본시장 미디어 더벨에서 잘 정리한 그림이 있으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실제로 엔케이물산도 여러 차례 매물로 나온 적이 있죠. 남궁 회장이 인수한 지 10년 후인 지난 2016년 이엠피연구소에 매각을 추진했으나 실패한 것이 시작입니다. 2019년에도 포비스티앤씨가 엔케이물산 지분을 원데이즈프라이빗에쿼티에 129억원에 매각하기로 계약했지만 성사되지 못했죠.


그런데 엔케이물산을 매각하려던 2016년은 엔케이물산이 미래아이앤지의 최대 주주에 등극한 해인 동시에 미래아이앤지와 함께 포비스티앤씨를 인수한 때입니다. 미래아이앤지가 239억원을 쏘며 주포로 활약을 하죠.


엔케이물산 매각이 불발로 끝나자 그해 12월 60억원의 사모 전환사채를 발행해 포비스티앤씨에 떠안기고, 자기주식 31억원도 팔아 넘깁니다. 포비스티앤씨가 추가로 42억원의 지분을 매입하기도 하죠. 60억원의 전환사채는 나중에 주식으로 전환돼, 포비스티앤씨가 엔케이물산 지분 18.9%를 보유하게 됩니다. 이 밖에도 포비스티앤씨는 엔케이물산 그룹에 인수된 후, 미래아이앤지, 온투리투어 등에 자금을 공급하는 젖줄 역할을 합니다.


포비스티앤씨는 2018년 5월 엔케이물산 지분 매각에 나섭니다. 60억원 전환사채를 주당 651원에 주식으로 전환한 뒤 전환된 주식 전량을 주당 790원에 퍼스트인베스트먼트외 2인에게 매각하기로 했죠. 하지만 매각은 불발됐고, 이듬해 다시 원데이즈프라이빗에쿼티에 매각하려다 다시 실패한 뒤 삼 세번만에 이안컴퍼니 외 4인에게 15.49%를 104억원에 매각합니다. 장부가 146억원짜리 지분을 42억원 가량 손해보고 팔게 되죠.



엔케이물산의 매출(개별)은 지난 2017년 281억원에서 2019년 88억원으로 급감했다가 지난해 284억원으로 둘쭉날쭉한 모습을 보입니다. 지난해 매출이 크게 늘었지만 영업손실은 오히려 더 커졌고요.


매출 급증에 의미를 부여하기는 좀 어렵습니다. 과거 본업이었던 산업용포장재 사업은 중단했고, 2019년까지 주력이던 영상콘텐츠사업과 유통사업도 매출이 없습니다. 매출 공백을 메우기 위해 시작한 것이 MRO(구매대행)입니다. 매출의 규모를 늘릴 수는 있지만 이익을 내기는 어렵죠.


자산의 대부분은 현금과 금융자산, 그 중에서도 종속기업이나 관계기업 지분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영업에서 지속적으로 현금흐름을 창출하기 어려운 구조입니다. 지난해말 기준으로는 현금성자산이 302억원으로 전체 자산의 40%를 넘기고 있고, 종속 및 관계기업 투자가 241억원에 달합니다. 이 둘을 합치면 전체 자산 4분의 3에 해당합니다. 유형자산이나 무형자산 등 영업을 위한 설비의 비중은 아주 낮죠. 지난해 13억원의 순이익을 올리며 흑자전환에 성공했지만 본업이 아닌 지분투자 등의 금융자산에서 올린 것이죠. 포비스티앤씨 지분 매각이 한몫 했을 테고요.


남궁견 회장이 기업생존가인 증거를 찾아보려고 했지만, 아쉽게도 그러지는 못했습니다. 타기업 인수의 창구인 엔케이물산 역시 지속가능성을 확신하기 어려운 현실인 걸요. 어쩌면 엔케이물산도, 미래아이앤지도 남궁견 회장에게는 평생 사업이 아니라 자금조달과 그를 통한 기업 장사의 수단에 지나지 않는지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