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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상윤 회장의 필룩스 그룹이 엔터테인먼트기업 iHQ 인수를 마무리 짓고, 새로운 경영진 선임까지 마쳤습니다. 방송인 출신의 박종진씨, 필룩스그룹 소속사의 임원을 두루 거친 김형철씨, 그리고 가수 김창열씨가 경영을 맡게 되었죠. 새 경영진은 iHQ를 글로벌 엔터테인먼트 회사로 키우겠다는 포부와 투자를 아끼지 않겠다는 약속을 했습니다.


필룩스그룹의 소속사가 되자 마자 iHQ가 가장 먼저 발표한 계획은 200억원 규모의 전환사채 발행입니다. 타법인 증권 취득, 다시 말해 M&A 용도의 자금마련이 목적입니다. 언론들은 이전 대주주인 딜라이브가 채권단의 관리를 받고 있어서 덩달아 iHQ도 투자에 족쇄가 채워져 있었는데, 필룩스그룹이 인수하면서 비로소 투자의 날개짓을 하게 됐다고 평가하고 있군요. 국내 대표적인 엔터테인먼트회사에서 언더독으로 전락한 iHQ의 부활을 예고한다는 것이죠.


실제로 iHQ의 전환사채 발행은 2013년 이후 8년만입니다. 그 동안 이렇다 할 신사업이 없었죠. 딜라이브의 자회사가 된 2015년 이후 6년 동안 새로운 성장동력 확보를 위한 투자가 부족했었던 것을 부인하기 어렵습니다.



전환사채 200억원 발행을 타법인 증권 취득용이라고 공시를 했으니, 틀림없이 그렇게 하겠죠. 시장의 예상대로 능력있는 제작사에 투자를 할 수도 있고, 아예 자회사를 설립할 수도 있을 겁니다. 아니면 전혀 다른 업종에 투자해 다각화를 시도할 수도 있겠죠.


그런데 좀 의아스럽습니다. 전환사채 발행 결정을 왜 서둘렀을까요? 공시를 액면 그대로 해석하면 아직 어떤 기업을 인수할 지 확정되지 않았습니다. 인수를 모색하고 있는 대상 기업이 있는 지도 아직 알 수 없습니다. 200억원의 조달금액 중 100억원은 확실히 타법인 증권 취득용으로 못박았지만 100억원은 기타 자금입니다. 인수 규모가 100억원에서 200억원 사이라는 뜻이겠죠. 좀 모호합니다.


전환사채를 인수하는 곳은 에스에스2호조합으로 특정되어 있습니다. 발행일자는 4월 30일, 이사회 결정이후 거의 두 달이 지난 시점입니다. 사채의 발행일자는 자금의 용도가 생기는 시점일 터, iHQ의 경영진은 4월말경 모종의 M&A를 실행할 모양입니다.


전환사채는 사모로 발행됩니다. 조합 구성이 마무리 되었다면, 발행절차를 밟는데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공모로 발행을 한다면 증권신고서를 내야 하고 투자자모집도 해야 하니 시간이 걸리지만, 사모 전환사채는 인수자와 조건만 정해지면 며칠만에도 뚝딱 발행할 수 있죠.


굳이 두 달 후 있을 M&A를 예고하듯 사모로 발행하는 전환사채를 미리 결정할 이유가 있을까요? M&A는 비밀 유지가 생명이라고들 하던데 여기는 왜 이렇게 티를 내는 것일까요? iHQ를 인수한 기념으로 이벤트를 하자는 것도 아닐텐데 말입니다.


조달자금이 iHQ의 기존 사업, 즉 엔터테인먼트부문이나 미디어부문을 강화하기 위해 쓰이는지도 불확실합니다. 인수 대상이 드라마 제작사라는 보장이 없습니다. iHQ는 조달 자금의 사용목적을 '신규사업을 위한' 타법인 증권 취득이라고 했습니다. 드라마 제작은 기존 사업이지 신규 사업이 아닙니다.



iHQ는 지난 3월 26일 정기 주주총회에서 10개의 사업목적을 추가했습니다. 신규 사업들이죠. 여기에는 호텔경영, 화장품제조, 부동산매매, 면세점판매업, 온라인게임과 모바일게임, 브이알(VR)콘텐츠 퍼블리싱, 경영자문 및 기업인수합병 주선 등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화장품이니 모바일게임이니 하는 업종은 요즘 기업들이 유행처럼 사업목적에 추가하는 아이템이고, 호텔경영은 아마도 필룩스그룹의 하이얏트 서울 인수를 염두에 둔 것이겠죠. 필룩스가 사운을 걸고 인수하는 하이얏트를 두고 iHQ가 별도의 호텔 경영에 나서지는 않을 테니까요.


신규 사업을 위한 것이라면, 엔터테인먼트 강화를 위한 드라마 제작사 인수가 아니라 오히려 필룩스의 하이얏트 우선주 매입에 동참을 한다든지, 화장품업체나 게임업체 인수에 나서는 시나리오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iHQ가 지난 6년의 딜라이브 소속 시절, 돈이 없어서 투자를 하지 못했을까요? 그렇게 보기는 어려워 보입니다. 돈이 없다고 볼 수도 없고 투자를 하지 않았다고 보기도 어렵습니다. 신사업 진출을 위한 M&A를 하지 않았을 뿐이죠.



iHQ는 손익계산서상 적자를 지속하고 있지만, 현금흐름은 나쁘지 않습니다. 매년 400억원 이상의 현금을 영업활동에서 창출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유·무형자산 취득에 상당한 돈을 쓰고 있죠. 투자는 주로 무형자산에 이루어지고 있는데, 2019년에는 501억원, 2020년에는222억원을 무형자산 취득에 썼습니다. 주로 방송프로그램에 집중되었다는 문제는 있습니다. 엔터테인먼트 부문인 전속계약금 지출은 10억원 미만입니다.


투자 규모가 충분했다거나, 투자효과가 있었다고 평가하기는 어렵습니다. 무형자산 취득금액보다 상각액이 더 많고, 적지 않은 손상차손이 매년 발생하고 있었거든요. 지난해에는 총 46억원의 전속계약금 중 무려 28억원이 손상되었더군요. 소속 연예인의 활용가치가 크게 하락했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야 하는 건가요.


어쨌든 중요한 것은 영업에서 돈을 벌고 있었다는 것이고, 이를 재원으로 투자를 할 수 있었다는 겁니다. 게다가 보유 현금 또는 현금화할 수 있는 자산도 적지 않습니다. 지난해말 현재 현금성자산 및 바로 현금화 가능한 단기금융상품이 248억원이고, 여타 단기 금융자산을 포함하면 737억원이 있습니다. 전년말 현재 400억원 정도였는데, 지난해 투자부동산을 매각하고, 큐브엔터테인먼트를 291억원에 매각하면서 보유 유동성이 크게 늘었습니다.



iHQ는 크게 늘어난 유동성을 금융상품으로 보유하고 있는데, 현금 포함 총 1133억원에 이르고, 매출채권(163억원)과 딜라이브에 대한 대여금(100억원)을 제외해도 800억원이 넘습니다. 이 중 수익증권에 507억원이 들어가 있습니다. 어떤 상품에 투자하는 수익증권인지는 알 수 없지만 현금화하자면 할 수 있는 것이겠죠.


기존 사업인 미디어부문이나 엔터테인먼트부문을 강화하자면, 외부 자금을 따로 조달하기 보다는 영업활동과 자산 매각으로 확보한 유동성을 사용하는 게 우선일 겁니다. 그 많은 유동성을 다른 곳에 사용할 의도가 없다면 말입니다. 1000억원에 가까운 유동성을 두고 200억원의 전환사채를 발행할 이유가 있을까요.


iHQ는 전환사채 발행을 결정한 며칠 후 이사회를 열어 투자결의를 한 일이 있습니다. 주인이 바뀌고 첫 자금지출이죠. 앞으로 iHQ가 어떤 행보를 보일 지 상징적으로 보여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주주총회 소집결의와 함께 이루어진 이날의 결정은 두 개의 조합인 JSP조합과 HYT조합에 각각 45억원과 30억원을 출자하는 것이었습니다. 별도 공시는 이루어지지 않았더군요. 그런데 이날 삼본전자가 이사회를 열어 60억원의 사모 전환사채를 발행한다고 공시하죠. 3월10일 발행된 이 사모사채를 인수한 곳은 JSP조합이고, 삼본전자는 이 돈을 필룩스 증권 취득에 사용합니다.


이 당시 필룩스는 하이얏트 서울을 보유한 인마크 제 1호 펀드의 우선주를 취득하기 위해 1168억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했죠. 삼본전자가 취득한다는 증권은 아마도 필룩스가 이때 발행한 신주였을 것으로 보입니다.



iHQ가 30억원을 출자한 HYT조합도 하이얏트 지분 인수용으로 조성된 것입니다. 삼본전자, 장원테크, 이엑스티가 625억원의 출연과 130억원의 대여로 자금을 대서 만들었죠. HYT조합은 그 자금으로 인마크23호 펀드에 투자했고, 인마크23호펀드는 인마크제1호펀드의 지분 30.92%를 취득했습니다. 이 조합에 iHQ가 신규 출자를 한 것이죠.


iHQ의 JSP조합 및 HYT조합 출연은 그 규모가 크지 않지만 계열사 간 자금거래가 활발한 필룩스그룹의 소속이 되었음을 실감하게 합니다. 그룹 공동의 프로젝트에 iHQ 역시 동참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죠. 다른 계열사에 비해 유동성이 가장 풍부한 iHQ가 그룹의 새로운 화수분이 될 가능성은 열려 있습니다.


전환사채 200억원이 본연의 경쟁력 강화에 쓰일 지, 기존 사업과 전혀 별개의 새로운 곳을 향할 지 지켜 볼 필요가 있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