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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량용 반도체 부족 이슈 때문에 빛이 좀 바래긴 했지만, 현대자동차와 기아의 실적은 언론에서 떠들어대는 것과 마찬가지로 '봄날'입니다. 증권업계가 추정(6개사 평균)한 올해 1분기 현대차 매출액은 26조5462억원, 영업이익은 1조4608억원입니다. 지난해 1분기와 비교해 매출액은 5% 남짓, 영업이익은 약 70% 늘었을 것이라고 합니다. 기아 역시 1분기 매출이 16조1874억원으로 11%, 영업이익은 1조932억원으로 146% 가량 급증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코로나19 사태로 글로벌 자동차 수요가 급감한 지난해에도 두 완성차 회사 실적은 나쁘지 않습니다. 현대자동차 영업이익이 7686억원으로 반토막 나기는 했지만 매출은 49조원대에서 50조원대로 올라섰죠. 기아 역시 매출이 33조원대에서 34조원대로 올라섰고 영업이익은 소폭 축소되는 선에서 방어가 이루어졌습니다.



지난해 현대차와 기아의 선방은 내수 덕분입니다. 우리나라의 완성차 수출은 지난해 21.4% 급감했습니다. 내수는 6.2% 증가했죠. 주요국 중 유일합니다. 역시 현대차그룹을 지키는 건 내수인 듯…


그런데 현대차와 기아의 지난해 생산대수가 줄었습니다. 북미 유럽 아시아 인도 공장은 물론이고 국내 공장의 생산도 줄었죠. 완성차업체가 생산을 줄이면 각종 부품을 생산하는 협력업체의 사정이 어려워지는 건 당연하고요.


언론들이 현대자동차와 기아의 실적 호조에 팡파르를 울리고 있지만 국내 자동차업계, 특히 부품업계의 생태계는 그다지 낙관적이지 않습니다. 완성차업체가 잘 되면 부품업체에도 좋다는 낙수효과는 점점 기대하기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현대자동차와 기아를 제외한 외투기업 한국GM, 르노삼성, 쌍용차가 극도의 부진을 보이는 것도 하나의 이유이기는 합니다만,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력을 인정받고 있는 한두 기업과 현대차 계열 부품회사를 제외하면 대부분 보릿고개를 넘고 있는 상황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자동차 부품업계의 낮은 마진율과 현금흐름 부족은 잘 알려져 있죠. 국내 완성차업계만 바라보는 천수답 구조이다 보니 그렇습니다. 현대자동차와 기아와 달리 부품업계는 지난해 집단적으로 유동성 부족 상태에 놓였습니다. 올해 1분기 좀 괜찮아지나 싶었더니 차량용 반도체 공급 쇼크를 맞네요. 완성차 생산 중단은 부품업체의 연쇄적인 조업차질로 이어질 수 밖에 없죠.


자동차산업의 패러다임이 전기동력과 자율주행으로 전환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국내 부품업계는 이러한 생태계의 중대한 변화에 적응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죠. 한국자동차연구원은 지난 6일 '자동차산업발전포럼'에서 "미래차에서 전장부품 비중이 기존 내연기관의 2배를 넘는 70%까지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지만 국내는 공급망이 부족해 성장에 걸림돌로 작용할 것"이라고 우려했습니다.


부품업체들이 미래차 패러다임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배경은 많겠지만, 가장 큰 것은 역시 '이 없어서'입니다. 돈을 벌어야 미리 R&D나 설비에 투자를 하죠. 일부 부품업체를 제외하고는 '벌어서는 투자를 할 수 없는 사정이라, 자산을 내다 팔거나 외부자금을 조달(차입, 증자)해야만 전기차가 됐든, 자율주행이 됐든 대처할 수 있습니다.


오랫동안 유동성 부족에 시달려 온 자동차 부품회사 중 하나가 부산주공입니다. 지난해까지 5년 연속 영업적자를 이어가고 있고, 영업활동으로 창출하는 현금보다 사용하는 현금이 더 많습니다. 유동성이 부족하다 보니 차입금은 늘어나고 이자부담이 만만치 않습니다. 몇 년에 한번씩 유상증자와 전환사채로 곳간을 채우지만 좀처럼 영업활동 현금흐름 증가의 선순환으로 이어지지 못하고 있습니다.


자동차부품용 주물을 생산하는 부산주공의 수익창출력은 현대자동차의 국내 공장 생산량 감소 여파로 하염없이 하락했습니다. 생산능력은 차고 넘칩니다. 다르게 표현하면 '설비 과잉'이죠. 연간 16만8000톤의 생산능력을 갖고 있는데 지난해 생산실적은 6만5680톤에 불과합니다. 울산공장의 주조1~3라인 중 2라인의 경우 가동률이 2.2%에 불과했습니다. 공장이 서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지난해 매출은 1572억원으로 전년보다 34% 가량 급감했습니다. 다행히 비용 절감으로 영업적자가 45억원 가량으로 50% 가까이 줄었지만, 2016년이래 적자행진이 계속되고 있죠. 지난해말 현재 자본총계가 266억원으로 자본금 284억원보다 적은 부분잠식 상태입니다. 누적 결손금이 510억원에 달하기 때문이죠.


변화가 필요해 보입니다. 그것도 실적 부진과 유동성 부족에서 벗어날 수 있는 극적인 반전의 계기가 요구되는 상황입니다. 그 시작은 '돈'이죠. 재무구조를 개선해 빚 독촉에서도 벗어나고 기우는 회사를 다시 일으켜 세울 투자를 위해서라도 돈이 필요합니다.


부산주공은 충분한 자금만 있으면 본업에서 경쟁력 회복이 충분히 가능하다고 보고 있습니다. 사업보고서에 이런 말이 있더군요. " 생산물량 소진을 위해 수출거래선 확보 활동이 매우 강화될 예정이며, 경영상황에 따라 자금 확보만 가능하면 사세확장규모가 급신장 할 도 있음.


사업의 턴어라운드를 위해 회사가 추진하는 전략은 1)수출 확대와 2)수소저장소 및 수소충전소 사업 3)전기차 부품 개발인 모양입니다. 아마도 수출 확대는 주조공장의 소재부품보다는 가공공장의 완성부품 판매비중을 높이는 쪽으로 주안점을 둘 모양입니다. 부가가치가 높아 회사의 수익성을 향상시키는 효과가 더 크고 수출시장을 공략하는 데도 더 유리하다고 보는 것 같습니다.



부산주공은 올해 1월에 정관 변경을 위한 임시 주주총회를 개최했습니다. 이때 추가된 신사업이 △수소저장소 및 수소충전소 사업과 △냉동업 및 냉동창고 사업입니다. 현대자동차가 수소차에 전략적 방점을 두고 있다 보니,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려고 하는 것 같군요.


전기차 부품 사업에 대해서는 글로벌 완성차들과 전기차 부품 공동 개발을 하고 있다고 하죠. 주요 생산제품인 조향부품을 전기차용으로 개발해 현 설비를 그대로 이용하는 게 목표라고 합니다. 또 신규 부품 수주를 할 때도 내연기관보다는 전기차나 수소차에도 적용 가능한 제품의 비중을 늘리는 식으로 대응한다고 하죠.


글쎄요. 전기차 부품 개발이 성공한다고 해도 단기적으로 실적에 얼마나 보탬이 될 지는 모르겠네요. 주조공장의 가동률이 크게 낮은 상황이라 주문을 가려 받을 입장이 아닐 텐데 말입니다. 당장은 전기차 부품 수주를 늘리기 위해 영업을 강화한다는 차원으로 이해해야 할 듯 싶군요.


수소차 관련 사업은 아직 청사진을 알 수 없고, 고부가가치 완성부품의 수출 확대 전략은 실질적인 의미가 있어 보입니다. 완성부품의 생산이 가공공장에서 이루어지는데 현재 가동률이 가장 높고 최근 보도를 보면 올해 더 활기를 띠고 있는 것 같거든요.



보도에 따르면 부산주공은 올해 흑자전환을 목표로 하고 있답니다. 역점을 두고 있는 것 중 하나가 원가절감이더군요. 10%선을 넘나드는 불량률을 6.6%로 낮춰 매출원가율 85%를 달성하려고 한다는 군요. 이건, 1분기 보고서가 나오면 실현 가능성을 가늠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사업 이야기는 회사의 말만으로 판단하기는 어렵습니다. 사실 숫자로 나오기 전까지는 뜬구름 잡는 거나 마찬가지죠. 하지만 재무적인 부분은 다릅니다. 바로 검증이 가능하죠. 이미 알고 있는 바와 같이 부산주공은 유동성 부족이 고질병입니다. 신규 투자는 커녕 운영자금마저도 은행에서 빌려 오는 처지였으니까요.


그런데 고부가가치의 완성부품 비중을 높여 수출을 확대하려면, 가공공장의 설비투자도 해야 하고, 수출선 확보를 위해 영업망도 늘려야 할 겁니다. 수소저장소와 수소충전소사업을 한다고 해도 얼마가 될 지 모르지만 돈이 들죠. 결국 외부자금 조달이 불가피할 겁니다.


아직 투자자금을 확보했다고 보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부산주공은 지난해 12월과 올해 2월 한 차례의 유상증자(82억원)과 두 차례의 전환사채 발행(각 25억원)을 통해 132억원의 외부 자금을 조달했습니다.


그 중 82억원은 전액 부산은행 차입금 상환에 사용했고, 나머지 50억원도 운영자금 목적입니다. 차입금을 상환할 수도 있고, 원부자재를 구매하는데 쓸 수도 있죠. 가공 설비나 수소사업에 들어갈 돈은 아닌 모양입니다.


부산은행의 아킬레스 건 중 하나가 과중한 차입금과 그에 따른 이자 부담입니다. 지난해 이자비용이 76억원에 달하고 현금으로 나간 이자가 70억원에 달합니다. 당기손손실이 134억원이니 손실의 거의 절반이 이자비용 때문이라고 볼 수 있지요.


영업에서 어느 정도 현금을 창출하는 기업이라면, 외부자금 조달이 미래 먹거리를 위한 투자에 우선 쓰이겠지만, 현금 창출이 되지 않는데 당장 갚아야 할 차입금이 많다면, 당장 급한 건 재무구조 개선이겠죠. 회사도 물론이지만 거래 금융기관에서 추가 대출 보다는 기존 대출 회수에 더 관심을 가질 겁니다.



82억원의 차입금 상환은 솔직히 별로 표시가 나지 않습니다. 갚아야 할 총 차입원리금은 지난해 9월말 1713억원에서 지난해 말 1679억원으로 소폭 줄었고, 1년 내 갚을 차입원리금은 997억원에서 996억원으로 거의 같습니다. 단기 상환부담이 너무 많습니다. 매년 유동성 압박을 받을 수 밖에 없습니다.


다행히 차입금의 질은 나쁘지 않아 보입니다. 차입처가 부산은행 경남은행 등 지역의 1금융권에 집중되어 있고 나머지는 전환사채로군요. 특히 부산은행과 관계가 돈독해 보입니다. 부산은행 차입금은 줄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늘었습니다. 82억원의 차입금 상환은 신규 대출을 위한 일종의 예의였나 봅니다.


12월말 현재 670억원의 단기차입금 중 259억원은 매출채권 할인입니다. 상환청구권을 부여해서 은행에서 할인한 것인데, 매출채권이 제대로 회수되면 추가로 현금유출이 일어나지 않겠죠. 장기차입금은 853억원에 이르는데, 부산은행과 경남은행에 대한 일반대출이 대부분이고 전환사채 65억원 정도가 있습니다. 전환사채는 주가가 오르면 주식으로 전환되어 상환의무가 사라진다고 치더라도, 일반대출 중 약 180억원 가량이 올해 만기도래 분이어서 상환부담이 있습니다.



전환사채를 두 차례(8회차, 9회차) 발행한 50억원은 지난 3월이 만기인 5회차 전환사채(50억원)를 조기상환하는 데 쓰였습니다. 5회차 전환사채는 전환가액이 1000원 이상으로 현재 주가와 괴리가 커서 전환 가능성이 희박했는데, 보유자가 재단법인 중도였습니다. 지난해 12월과 올해 2월 발행한 8회차와 9회차 전환사채를 인수할 때 각각 25억원씩 5회차 전환사채가 조기 상환되었죠. 투자자는 같고 전환사채는 새것으로 바뀐 겁니다. 8회차와 9회차 전환사채는 아직 전환가능기간이 아니지만 전환가액이 660원과 680원으로 낮아져 있어 주가가 현 수준에서 조금만 올라도 전환을 기대해 볼 수 있겠습니다.


최근의 자금조달과 관련해 궁금한 것이 대주주의 의중입니다. 82억원 규모의 유상증자는 주주배정 방식이 아니라 일반 공모 방식으로 이루어졌죠. 대주주가 돈이 없어서 그랬던 것은 아닌 모양입니다. 이어서 발행한 두 차례의 전환사채를 인수한 재단법인 중도는 대표이사의 특수관계인이 출자한 곳이거든요.


부산주공의 최대주주는 세연에이엠(5.12%)인데, 동국제강 3세인 장세훈 대표이사와 특수관계인이 출자한 회사입니다. 특수관계인인 재단법인 세연문화재단, 장세훈 대표, 관계회사인 ㈜동산에스엔알, 재단법인 중도 등이 보통주와 전환사채를 보유하고 있는데, 전환사채의 주식전환 가능 물량을 감안하면 재단법인 중도가 10.90%로 지분율이 가장 높습니다.



뇌피셜입니다만, 부산주공의 최대주주가 계획했던 반전의 계기는 당초 다른 방향이었다가 수정됐거나, 지연되고 있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부산주공은 지난해 10월 ㈜서울파이낸스클럽이라는 신생기업을 제3자로 100억원의 전환사채를 발행할 계획이었습니다. 일반공모 유상증자와 별도로 추진된 자금조달이었습니다.


100억원의 전환사채는 중도를 상대로 발행한 8회차,9회차 전환사채를 합친 것의 두 배 규모입니다. 보통주로 전환할 경우 47%의 지분을 가져갈 수 있는 물량이었습니다. 상황에 따라서는 경영권이 넘어갈 수 있었죠 . 특히 이 전환사채는 풋옵션만 있고 콜옵션이 없었습니다. 회사가 자의적으로 조기상환할 수 없고 만기까지는 투자자의 처분에 따를 수 밖에 없었죠.


60억원은 운영자금으로 쓰고, 40억원은 타법인 증권 취득에 사용할 계획이었습니다. 동종산업인지, 이종산업인지는 알 수 없으나 M&A에서 돌파구를 찾으려고 했던 겁니다. 어쩌면, 다른 회사 지분을 사는 것은 물론이고, 최대 주주가 경영권 지분을 넘길 생각을 했는지도 모르죠. 전환사채의 규모로 봐서 말입니다.


부산주공의 주가가 급등한 건 이즈음 입니다. 400원대이던 주가가 단숨에 600원으로 치솟더니 한때 1000원을 돌파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100억원의 전환사채 발행은 철회되고 대신 기존 주주의 특수관계인인 중도를 대상으로 차환발행을 하게 되죠. 사실상 자금조달은 일반공모 유상증자 82억원으로 끝난 셈입니다.


자금조달을 앞두고 오른 주가는 여전히 600원대 이상을 지키고 있습니다. 100억원의 전환사채 발행을 선반영한 시점의 주가 수준입니다. 82억원의 유상증자로는 차입금의 극히 일부를 상환할 수 있을 뿐입니다. 언 발에 오줌이고, 변죽만 올린 겁니다.


부산은행의 자금조달은 종결된 것일까요? 아직도 갚아야 할 차입금이 산처럼 쌓여 있는데 말이죠. 가공공장 설비는 무슨 돈으로 확충하고, 수소저장소와 충전소는 어떻게 구축할 건가요. 전기차 부품 개발에도 돈이 들어갈 텐데요. 장세훈 대표가 동국제강 3세이고, 세연문화재단이 동국제강 상속자들이 세운 재단이라는 게 힌트가 될라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