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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모비스와 현대글로비스의 분할합병이 사업의 측면에서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을까. 현대차그룹은 여러가지 근거를 들어 시너지 효과를 주장하려고 하겠지만, 과연 주주들을 설득할 수 있을까. 2018년 분할합병이 무산된 핵심 이유가 분할비율과 합병비율이었다면, 올해 현대차그룹이 다시 두 회사의 분할합병을 추진했을 때 제기될 이슈는 바로 이 부분이 될 수 있습니다. 단순히 분할합병 비율을 조정하는 것 만으로 사업구조 재편이 주주와 시장의 신뢰를 얻을 수 있을지는 의문입니다.


현대차그룹이 원하는 게 순환출자 구조 해소와 현대글로비스의 일감 몰아주기 규제 제외, 그리고 총수 일가의 그룹 지배력 강화라고 할 때 정공법은 현대모비스와 현대글로비스의 분할합병이 아닙니다. 누가 봐도 총수 일가의 지분율이 높은 현대글로비스의 기업가치를 높이려는 꼼수입니다.


정공법은 기아차, 현대제철, 현대글로비스가 보유한 현대모비스 지분을 정몽구-정의선 부자가 사는 것이죠. 부자가 보유한 현대글로비스 지분을 재원으로 활용하면 순환출자 구조 해소, 일감 몰아주기 규제 제외, 그룹 지배력 강화가 모두 해결됩니다. 이때 관건은 두 부자가 현대모비스 지분을 취득할 재원이 얼마나 되느냐가 될 것입니다.



순환출자 고리에 해당하는 회사들로만 지배구조를 그리면 위와 같습니다. 두 부자는 현대모비스 지분 7.45% 외에 현대차 7.95%, 기아 1.74%, 현대제철 11.81%, 현대글로비스 34.45%(정몽구재단 포함)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죠. 그런데 현대모비스가 주력 계열사를 지배할 충분한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면, 정몽구-정의선 부자는 현대모비스 외의 계열사 지분을 보유할 필요가 줄어듭니다.


그렇다면 몇 번의 거래로 원하는 결과를 얻어 낼 수 있습니다. 우선, 두 부자가 보유한 기아와 현대제철 지분을 현대차에 현물출자합니다. 두 부자의 현대차 지분율이 상승하겠죠. 두 번째로 두 부자의 현대차 지분을 현대모비스에 출자전환합니다. 두 부자의 현대모비스 지분이 크게 높아질 것입니다. 세 번째로 현대글로비스 지분 34.45%와 기아차가 보유한 현대모비스 지분을 교환(스왑)합니다. 두 부자의 현대모비스 지분율이 추가로 상승하고, 현대글로비스는 일감 몰아주기 규제 대상에서 제외됩니다. 마지막으로 현대제철과 현대글로비스가 보유한 현대모비스 지분만 두 부자가 사오면 모든 순환출자 고리가 해소됩니다.


이 방법이 그 동안 거론되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정몽구-정의선 부자가 현대모비스 지분을 모두 사오려면, 막대한 돈이 들 거라는 이유로 지배구조 개편안 후보에서 제외되었을 뿐입니다. 아니 그 보다는 총수 일가의 돈을 덜 들이고 현대모비스 지분율을 극대화할 묘수(현대모비스와 현대글로비스의 분할합병)가 있었기 때문이겠죠.


기아차, 현대제철, 현대글로비스가 보유한 현대모비스 지분은 23.83%인데, 6월 8일 현재 시가총액(약 27조원) 기준으로 6.4조원쯤 됩니다. 총수 일가가 보유한 현대글로비스 지분(34.45%)의 시장가치는 2.55조원입니다. 턱없이 부족하죠. 그래서 현대글로비스 가치를 높이기 위한 분할합병이 필요했던 겁니다.


그런데, 현대모비스를 분할하면 얘기가 달라집니다. 이번에는 부품제조부문과 모듈/AS부품부문으로 분할하는 것이 아니라, 사업회사와 투자회사로 분할을 합니다. 기아차, 현대제철, 현대글로비스는 사업회사와 투자회사의 지분을, 각각 17.33%, 5.81%, 0.69%씩 보유하게 됩니다. 정몽구-정의선 부자에게 필요한 지분은 그룹 최상위 지배회사가 될 현대모비스 투자회사의 지분입니다.



현대모비스를 사업회사와 투자회사로 분할하면, 투자회사의 가치는 분명 분할 전 현대모비스 가치보다 적겠죠? 정몽구-정의선 부자가 현대모비스 투자회사 지분을 취득하는 데 필요한 자금도 줄어들고요. 투자회사 가치가 분할 전 현대모비스의 절반이라면, 정몽구-정의선 부자가 기아차 등이 보유한 투자회사 지분을 매입하는 데 필요한 자금도 절반인 3.2조원으로 줄어듭니다. 현대글로비스 보유 지분 34.45%의 가치와의 격차는 7000억원 안팎으로 대폭 좁혀집니다.


이 역시 분할비율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수 있습니다. 투자회사에 많은 자산을 몰아줄수록 투자회사의 기업가치가 높게 평가를 받겠죠. 하지만 보유하게 될 모든 자산의 가치를 더한 만큼의 평가는 받기 어려울 겁니다.



현대모비스가 보유한 종속 및 관계회사 지분 중 압도적으로 큰 게 현대차, 현대건설, 현대오토에버, 현대차증권 등 상장사 주식인데, 3월말 기준 공정가치(시가)가 11조원 가량 됩니다. 올해 주가가 크게 오르면서 6월8일 현재로는 12조5000억원에 육박하고 있습니다.


비상장인 종속 및 관계기업 지분은 지난해말 현재 2조4000억원 정도 됩니다. 그런데 1조3000억원 가량의 종속회사는 대부분 사업 분할회사로 넘어갈 겁니다. 현대모비스의 부품제조나 AS부품 부문과 직결된 영업을 하는 곳들이거든요. 관계회사 중 상장을 추진 중인 현대엔지니어링 지분의 장부가치는 2866억원입니다. 상장 후 이 지분이 얼마로 평가를 받는지에 따라 투자회사의 기업가치에 다소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종속회사나 관계회사가 아니지만, 투자회사로 분할될 금융자산이 좀 더 있습니다. 약 4조5600억원의 당기손익-공정가치 측정 금융자산(상장주식)과 약 4500억원의 비유동 금융자산(비상장주식 또는 채무상품)입니다.


현대모비스에서 분할된 투자회사의 핵심 자산은 결국 계열사와 비계열사 주식이고 이 지분들의 가치에 의해 투자회사의 가치가 결정될 겁니다. 그런데 그 자산들의 가치만큼 투자회사의 가치가 형성되기는 어렵습니다.


주식시장에는 지주회사 할인이라는 게 있습니다. 따로 본업이 없이 종속 및 관계회사 지분을 보유한 지주회사는 자체적으로 현금흐름 창출을 할 수 없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주가가 낮습니다. 상장 지주회사의 PBR(주가순자산비율)이 다른 업종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은 이유입니다.


꼭 지주회사가 아니더라도, 일반 기업이 보유한 종속 및 관계회사 지분의 가치도 할인이 되어 주가에 반영됩니다. 피투자회사가 상장사는 30%, 비상장사는 50% 정도를 할인합니다. 이런 할인율이 현대모비스 투자 분할회사에도 적용된다고 치면, 글쎄요. 후하게 보더라도 시가총액 15조원 이상을 쳐주기는 어려울 것 같은데요.


현대모비스 투자회사의 시가총액이 최대 15조원에 형성된다고 가정하면, 기아차가 보유한 17.33%의 가치는 약 2.6조원입니다. 총수 일가가 보유한 현대글로비스 지분 2.55조와 얼추 비슷합니다. 총수 일가가 현대글로비스 주식을 기아차에 주고, 기아차에서 현대모비스 투자회사 지분 17.33%를 받아오는 주식 스왑이 가능해 집니다. 현대제철과 현대글로비스가 보유한 현대모비스 투자회사 지분은 약 1조원어치가 되는데, 이건 현대오토에버나 현대엔지니어링 등 다른 상장 계열사 지분을 처분해 사오면 되겠죠.


이 거래가 성사되면 총수 일가가 보유한 현대모비스 투자회사 지분은 기존의 7.45%(정몽구 7.13%, 정의선 0.32%)에서 24.78%로 늘어나게 됩니다. 현대모비스의 분할과 스왑 거래로 순환출자 고리도 모두 해소되고, 현대글로비스도 일감 몰아주기 규제에서 자유롭게 됩니다.


총수 일가는 현대차와 기아차 보유 지분 등도 현대모비스 투자회사에 현물출자해 지분율을 더 높일 수 있는데요. 이건 필수가 아닌 선택이 됩니다. 현대모비스를 투자회사와 사업회사로 분리한 이후 지배구조와 총수 일가의 보유 지분 현물 출자를 통한 현대모비스 투자회사 지분율 확대에 대해서는 다음 글에 쓰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