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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과 최대 주주의 이해관계가 늘 같을 수 없습니다. 아니, 오히려 다른 게 일반적일 것입니다. 지배구조 개편에 대한 현대차그룹과 정의선 회장의 이해관계 역시 일치한다고 볼 수 없습니다. 그룹에 최적인 지배구조 개편이 정의선 회장에게는 답이 아닐 수 있고, 그 반대 역시 성립합니다. 지배구조 개편에 대한 여러 선택지 중 어느 쪽으로 갈 지 여부는 결국 그룹의 입장을 따를 것이냐, 정의선 회장의 입장을 따를 것이냐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2018년의 선택은 그룹보다는 정의선 회장의 입장을 고려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현대모비스를 인적분할 해 캐시 카우(cash cow)인 AS부품 부문을 정의선 회장이 최대 주주인 현대글로비스와 합병하려고 한 게 움직일 수 없는 증거입니다. 합병의 시너지가 불확실하고, 현대모비스 주주에게서 정의선 회장에게로 부의 이전이 일어나니까요.
올해 현대차그룹의 지배구조 개편에 대해 대부분 언론이 바라보는 방향 역시 2018년의 그 방향과 같습니다. 현대차그룹에서 공식적으로 발표한 청사진이 없지만, 지주회사로의 전환은 없을 것이며, 현대차그룹의 분할과 신설분할회사와 현대글로비스의 합병을 기정사실화 하고 있습니다. 정의선 회장이 가장 적은 돈으로 가장 많은 지분율을 가질 수 있는 방법을 최적해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룹의 입장이나 다른 주주 입장에서는 아쉬운 일입니다.

현대차그룹 지배구조 개편의 가장 큰 대의명분은 순환출자 고리의 해소입니다. 계열사끼리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지분 관계를 통해 총수 일가가 적은 지분으로 전 계열사를 지배하는 소유의 집중, 부의 집중의 불합리를 없애자는 것입니다. 신규 순환출자는 2014년 이후 불법이 되었습니다. 불법이던 지주회사 체제는 1999년 외환위기를 겪은 이후 합법이 되었습니다. 순환출자 대신 정부가 제시한 당근이 지주회사라는 선택지입니다.
지주회사 체제를 법을 통해 제도화한 나라는 사실 거의 없습니다. 외국의 경우에도 지주회사는 존재하지만, 지주회사는 자회사를, 자회사는 손자회사를 100% 지배하는 것이 상식입니다. 상식이 그러하니 법으로 만들 필요가 없습니다. 대주주와 기타 주주의 이해관계가 충돌할 일이 없습니다.
우리나라의 지주회사 제도는 총수 일가에게 매우 유리한 구조입니다. 지주회사가 자회사 지분 40%(상장사 20%), 자회사가 손자회사 지분 40%(상장 20%)만 소유하면 자회사, 손자회사로 인정해 주겠다고 하니까요. 순환출자와 마찬가지로 적은 지분으로 그룹 전체를 지배할 수 있습니다. 기업의 문어발식 확장을 막을 수도 없고, 그룹간 연결된 지분관계로 한 기업의 부실이 다른 기업의 부실로 이어지는 문제도 여전히 남습니다. 다만 그 정도가 완화될 뿐입니다.
상속은 더욱 쉬워집니다. 최상위 지배회사 지분만 넘겨주면 그룹 전체의 지배력을 상속받게 됩니다. 순환출자의 경우, 각각의 연결고리에 해당하는 지분을 모두 넘겨주어야 해서 매우 복잡해 지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삼성(지주회사로 가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음)이나 현대차그룹이 지주회사 제도를 선택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첫째는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할 경우 총수 일가가 최상위 지배회사의 지분을 충분히 소유하기 위해 돈이 많이 들 것으로 예상되고, 둘째는 금사분리 원칙 때문에 현대캐피탈, 현대카드 등 자동차금융을 담당하고 있는 계열사들을 현대차, 기아와 함께 한 지주회사 아래 둘 수 없기 때문입니다. 중간 지주회사를 세워 그 아래 현대캐피탈과 현대카드를 두면 되지만 그렇게 하기는 싫은 것이죠.

현대차, 기아, 현대모비스 3사를 투자회사와 사업회사로 분할하고, 3개 투자회사를 합병해 지주회사를 설립할 경우 주력 자회사들이 지분율 조건은 대체로 충족(현대모비스 제외)하지만, 현대차와 기아가 지분을 나누어 가진 현대캐피탈과 현대카드를 두 완성차 회사에서 떼어내는 것은 현대차그룹 입장에서 반갑지 않은 일입니다. 자동차금융은 자동차판매의 핵심 중의 핵심이기 때문이죠.
현대캐피탈과 현대카드를 중간 금융지주회사 아래 둔다고 해서 현대차그룹의 자동차판매에 문제가 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오히려 현대캐피탈 중심의 중간 지주회사와 현대차와 기아 중심의 중간 지주회사를 지배하는 최상위 지배회사의 지분을 정의선 회장이 충분히 취득하는 문제가 더 클 수 있습니다.
현대글로비스의 일감 몰아주기 이슈 해소 역시 지배구조 개편의 중요한 이유 중 하나로 꼽히죠. 정몽구 명예회장과 정의선 회장의 지분이 29.9%여서 올해 12월말부터 적용되는 사익편취 규제의 기준 지분율 20%를 넘게 됩니다. 지분율을 10% 이상 낮춰야 현대글로비스가 지금 수준의 거래를 현대차그룹과 유지할 수 있습니다.

이 규제는 현대차그룹이 총수 일가의 회사나 다름없는 현대글로비스에 일감을 몰아주어 총수 일가의 재산 축적에 활용되지 못하도록 한 것인데, 따지고 보면 그룹의 일감을 토대로 현대글로비스를 키워, 승계의 재원으로 삼으려는 총수 일가의 의도는 이미 충족이 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2001년 12억5000만원의 자본금으로 설립된 회사가 현대차그룹을 등에 업고 매출 16조원, 자산총계 10조원을 넘는 기업으로 커졌죠. 정의선 회장이야 현재 지분율을 더 유지하면서 현대글로비스가 더 성장하면 좋겠지만, 지금의 지분가치 만으로도 현대모비스를 투자회사와 사업회사로 분할하면 투자회사의 지분을 충분히 취득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됐지, 더 바라는 건 좀 과한 욕심 아닐까요.
정의선 회장의 현대글로비스 지분은 그룹 승계를 위한 재원 마련 용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어차피 팔 지분이었다는 말이죠. 일감 몰아주기의 목적은 이미 달성했으니, 팔 때가 된 것이지 일감 몰아주기 이슈에서 벗어나기 위해 할 수 없이 판다고 보기 어렵다는 겁니다.

현대차그룹이 지주회사를 선택하기 어려운 이유가 여기에도 있습니다. 그동안 가장 많이 제기된 현대차그룹의 지주회사 체제는 지주회사-현대차-기아차의 구조인데, 정의선 회장이 현대글로비스와 맞바꿀 현대모비스(투자회사) 지분을 기아가 가장 많이 들고 있죠. 지분 교환을 하게 되면 기아가 정몽구-정의선 부자의 현대글로비스 지분을 갖게 됩니다.
그런데 지주회사 제도에서 지주회사의 손자회사는 증손회사를 소유하려면 100% 지분을 전부 가져야 합니다. 상장사인 현대글로비스 지분에 대한 공개매수라도 해야 한다는 얘기입니다. 기아에게 엄청난 부담을 안기는 일이 됩니다. 현대차그룹의 종합 물류 회사인 현대글로비스가 기아차의 자회사가 되는 것도 모양이 썩 좋아 보이지 않습니다.
결국 지주회사 체제는 현대차그룹에서 보나, 정의선 회장 입장에서 보나 쉽지 않은 선택으로 보입니다. 그러니 현대모비스를 지주회사가 아닌 지주회사 '격'으로 갈 수 밖에 없겠죠. 여러 차례 얘기했지만, 순환출자 고리 해소의 가장 쉬운 방법은 현대모비스를 분할하는 것입니다. 분할회사 중 투자회사를 지주회사 '격'으로 하고, 다른 계열사가 가진 투자회사 지분을 총수 일가의 현대글로비스 지분과 교환하면 순환출자 고리 해소와 일감 몰아주기 규제 제외가 모두 해결됩니다. 현대차그룹과 총수일가의 이심전심이죠.
하지만 현대모비스의 사업분할 회사와 현대글로비스의 합병은 필수가 아닌 선택입니다. 현대모비스의 수익을 책임져 온 AS부품 부문을 흡수하게 되면 현대글로비스의 기업가치가 높아질 것은 당연하고, 그 혜택을 총수 일가가 보게 되죠. 기대되는 현대차 그룹의 사업 시너지가 합병의 명분으로 내세우기 부족해 보이고요. 현대차그룹과 정의선 회장의 이해가 일치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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