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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의 '세금 먹는 하마'로 불리는 알펜시아리조트를 필룩스그룹(이제 KH그룹으로 불립니다)이 안게 되었습니다. 총사업비 1조6000억원이 들어간 알펜시아리조트는 그 동안 발생한 이자비용만 3700억원에 달한다고 합니다. 평창 동계올림픽이 끝난 후 공개입찰 네 차례와 수의계약 두 차례의 매각 시도가 모두 불발로 끝나고 다시 공개매각으로 선회해 다섯 번째 입찰만에 매각에 성공했습니다. 매각주체인 강원도개발공사는 지난달 24일 KH그룹이 세운 장부상회사인 KH강원개발㈜를 최종 낙찰자로 선정했고 8월23일 매매계약을 완결짓기로 했습니다. KH강원개발은 7100억원을 써냈죠.


요즘 이 거래가 하루가 멀다 하고 언론에 오르내리고 있습니다. 강원도 지역을 중심으로 헐값 매각 논란이 강하게 일고 있고, 매각 과정에 각종 의혹이 있다는 주장도 잇따르고 있죠. 수의계약 무산 이후에 재산관리규정을 고쳐 다시 입찰로 선회했다는 의혹부터, 인수처를 미리 내정해 놓고 입찰을 한 것이라는 짬짜미 매각 논란, 급기야 입찰에 나선 두 인수후보가 모두 KH계열이라는 보도까지 있습니다. 실질적인 인수 주체인 KH필룩스가 총자산 4000억원 밖에 되지 않는 기업이라며 '구렁이가 코끼리를 삼켰다'는 표현까지 등장합니다.



매각 과정에 제기되는 여러 의혹에 대해 큰 관심은 없습니다. 그 보다는 주요 계열사 자산 합계가 1조원 가량인 KH그룹에게는 상당한 규모인 7100억원짜리 알펜시아리조트를 인수하는 과정에 KH그룹에서 어떤 일들이 벌어지게 될 지가 더 궁금합니다. 현금 7100억원을 쌓아 놓고 있는 것이 아니니 매각 종료 예정일까지 한달 여의 기간동안 KH그룹은 자금조달을 위해 바쁜 일정을 보내게 될 게 뻔하니까요.


어떤 방식으로 인수자금을 마련할 지는 구체적으로 알 수 없지만 몇 가지는 충분히 예상해 볼 수 있습니다. KH그룹의 특정 계열사 한 곳에서 인수자금 전부를 조성하기는 어려우니 여러 계열사가 동원될 것이라는 점, KH그룹의 자체 신용으로 대규모의 금융권 차입이나 일반 공모 회사채 발행이 어려울 테니, 유상증자나 사모사채 등의 시장성조달이 불가피할 것이라는 점 등이죠.


아마도 가장 유력한 방법은 KH그룹이 하이얏트호텔 인수나 아이에이치큐 인수에서 보여준 것처럼 주요 상장 계열사들의 전환사채 발행이 아니까 싶습니다. 인수주체는 KH강원개발이지만, 인수자금을 댈 수 있는 곳은 KH필룩스, KH일렉트론(전 삼본전자), 장원테크, KH E&T(전 이엑스티) 그리고 올해 그룹에 편입된 아이에이치큐 등 5개사가 될 것입니다.


KH그룹이 아이에이치큐를 어떻게 인수했는지 상기할 필요가 있습니다. 아이에이치큐의 인수 주체로 내세운 곳은 KH E&T(전 이엑스티)가 100% 출자해 설립한 KH미디어였죠. 하지만 인수자금은 KH일렉트론, 장원테크, KH E&T에서 나왔습니다.


보다 구체적으로는 KH E&T가 케이에이치미디어를 200만원에 설립하고, KH일렉트론과 KH E&T가 120억원을 대여합니다. 그리고 케이에이치미디어가 996억원의 전환사채(1회차 796억원, 2회차 200억원)를 발행해 KH일렉트론, 장원테크, KH E&T 등이 인수하죠. 3사는 케이에이치미디어의 전환사채를 인수할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또 각자 전환사채를 발행하게 되고, 이를 메리츠증권이 인수해 주죠.


케이에이치미디어에 대여한 120억원은 4월에 출자전환(KH E&T 62억원, KH일렉트론 58억원)이 되고요. 케이에이치미디어는 인수한 아이에이치큐 지분 50.49%를 순차적으로 처분해 전환사채 일부를 조기상환하는 데 씁니다. 7월7일 현재 보통주 지분율을 25.28%까지 낮춰 놓았네요. 8월에 우호 세력에 15.49%를 양도할 계획이니 지분율은 더욱 낮아질 것으로 보입니다.


알펜시아리조트 인수 주체로 나선 KH강원개발은 KH필룩스가 1000만원의 자본금으로 설립했습니다. 그리고 입찰에 나선 6월18일 300억원을 입찰보증금용으로 대여합니다. 자금 소요가 있으면 어김없이 자금조달에 나서는 게 KH그룹의 특징이죠. 300억원 대여에 앞서 KH필룩스는 전환사채 발행에 나서게 됩니다. 아이에이치큐 인수에 KH필룩스는 나서지 않았지만, 3월 중 하이얏트호텔 우선주 인수에 큰 돈을 쓴 이후라 유동성이 넉넉치 않았을 겁니다.


4월 이후 KH필룩스는 세 차례의 전환사채 발행(17회차 350억원, 18회차 105억원, 19회차 150억원)에 나서게 되는데, 17회차 350억원은 모두 용도가 특정되어 있습니다. 장원테크와 KH E&T가 발행하는 전환사채 각각 100억원을 취득하고 149억원은 디비W투자조합1호에 출자를 하기로 했죠. 디비W투자조합 1호는 300억원으로 코스닥 상장사 나노스의 전환사채를 취득합니다. 나노스는 김성태 회장이 이끄는 쌍방울그룹 소속사인데, 광림이 1대 주주, 쌍방울이 2대 주주인 회사죠. 바이오사업에 진출할 목적으로 전환사채를 발행한 것인데, 그 전환사채의 절반을 KH필룩스가 제공합니다.


KH필룩스가 알펜시아리조트 입찰보증금으로 낸 300억원의 출처는 18회차와 19회차 전환사채(총 255억원)인 것 같습니다. 지난 7일 KH일렉트론을 상대로 51억원의 제3자배정 유상증자를 실시했는데, 이 역시 입찰보증금 납입 후 줄어든 현금유동성 보강을 위한 것으로 추정할 수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KH필룩스는 아직 알펜시아리조트 취득자금을 전혀 조정하지 않은 상황이라고 판단할 수 있습니다. 다른 계열사들도 마찬가지 상황으로, 소소한 규모의 자금조달이 있었을 뿐 알펜시아리조트 인수에 대비한 것으로 보이는 징후는 없습니다.


가장 빈번하게 조달에 나선 곳은 아이에이치큐입니다. 4월에 200억원(3회차), 5월에 32억원(4회차 10억원, 5회차 22억원), 6월에 565억원(6회차 500억원, 7회차 65억원) 등 총 797억원을 모두 전환사채 발행으로 조달했습니다. 이 중 4회차와 5회차 32억원은 현금 확보를 위한 것이 아니고, 메가폰엔터테인먼트와 피팝코리아 등 소규모 M&A를 위한 것으로, 현금 대신 전환사채로 인수대금을 지불한 것입니다. 7회차 65억원은 최대 주주인 케이에이치미디어를 상대로 발행한 것으로 전액 운영자금 용도라고 합니다.


눈길을 끄는 건 6회차 전환사채 500억원과 3회차 전환사채 200억원의 자금 용도입니다. 3회차 전환사채는 타법인 증권 취득 용도로 발행이 되었는데, 아직 사용한 흔적을 발견할 수 없고요. 6회차 전환사채 500억원은, 6월에 건설업을 주요 사업으로 하는 ㈜아이에이치큐리츠를 신규 설립했는데, 이 곳에 자금을 지원할 목적으로 발행된 겁니다.


엔터테인먼트 회사가 갑자기 리츠회사를 설립한 것도 뜬금없는데, 하필이면 설립일이 5월26일로 KH그룹이 알펜시아리조트 인수에 나서기 직전이었죠. 300만원의 자본금으로 설립된 아이에이치큐리츠는 6월16일 743억원의 전환사채 발행과 10억원의 유상증자를 결정하고, 전환사채 전액은 아이에이치큐가 인수합니다. 6회차 500억원에 추가로 250억원 가량이 들어간 것인데, 아마 4월에 조달한 200억원이 고스란히 들어간 것으로 추정됩니다. 그것으로도 좀 모자라서 보유 현금을 써야 했을 텐데, 그래서 7회차 전환사채 65억원을 발행했어야 했나 봅니다.



아이에에치큐리츠는 같은 날 신사동의 빌딩 두 채를 712억원에 취득하는데, 이유가 목적사업을 영위하기 위한 것이라고 하니 아마도 본사 사옥 겸 임대용으로 사용할 모양이죠. 이 건물들이 위치한 곳이 주소는 신사동인데 압구정로데오역에서 도보로 1분 거리에 있는 선릉로 대로변입니다. 왼편에 있는 삼라통신 빌딩은 이미 사용 중인 건물인 것 같고, 오른쪽 빌딩은 공실 상태로 매입이 이루어졌더군요.


그런데 이 건물 매입이 이루어진 이틀 후인 6월18일 아이에이치큐는 계열회사 KH리츠㈜에 200억원의 금전대여를 합니다. 목적사업 영위를 위한 일시적인 대여라고 하는데 대여 기간이 6월25일까지였죠. KH리츠는 아이에이치큐리츠보다 앞선 5월10일 설립된 회사로 KH그룹 중 어느 계열사가 출자한 것인지 공시되지 않았습니다.


공교롭게도 6월18일은 KH필룩스가 알펜시아리조트 공개매각 입찰에 참여하기 위해 KH강원개발㈜에 300억원을 대여한 날입니다. 알펜시아리조트 입찰은 6월18일이었고 6월24일이 낙찰자 선정 예정일이었는데, 아이에이치큐가 KH리츠에 금전대여한 기간은 6월18일~6월25일, 즉 낙찰자 선정 예정일 다음 날까지였습니다. (알펜시아리조트 입찰에 두 곳이 참여했고, 두 곳이 모두 KH그룹 계열이라는 의혹이 있던데…)


아이에치치큐가 설립한 아이에이치큐리츠나 계열사인 KH리츠가 알펜시아리조트 인수와 어떤 연결고리가 있는 지는 아직 확인할 수 없습니다. 다만 시기적으로 직접적인 또는 간접적인 관련성이 존재할 수 있다는 추측만 가능할 뿐입니다.


분명한 것은 알펜시아리조트 매입을 위해 필요한 7100억원의 현금이 KH그룹 전 계열사를 통틀어도 이미 보유하고 있거나 본격적으로 조달에 나선 움직임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앞으로 대대적인 자금조달이 불가피하죠. 어느 한 계열사가 총대를 메고 책임질 수 있는 규모가 아니어서 거의 전 계열사가 동원이 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그래도 어딘가는 주된 조달자의 역할을 하게 될 텐데, 가장 가능성이 높아 보이는 곳이 그룹의 중심인 KH필룩스와 최근 그룹에 편입돼 가장 싱싱한(?) 아이에이치큐가 아닐까 싶습니다. 뜬금없이 등장한 두 리츠 회사를 무심히 볼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