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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이노베이션이 배터리 부문과 석유개발 부문의 분할을 공식화한 건 지난달 1일 '스토리 데이' 행사였습니다. 그런데 이 때만 해도 물적 분할이 될지, 인적 분할이 될지 결정되지 않았다는 입장이었죠. 분사 시점에 대해서도 특정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불과 한달 정도 지난 이달 4일 공시에서는 10월 1일 물적 분할을 통해 SK배터리(가칭)와 SK E&P(가칭)를 신설할 것이라고 밝혔죠. 약 한달의 기간 동안 분할자산, 분할방식 그리고 분할 시점이 모두 정해진 것으로 생각되지는 않습니다. 아마 스토리 데이 때 이미 대부분의 내용이 결정되어 있었을 것 같습니다. 공식적인 의사결정 기구인 이사회 의결이 이루어지기 전이었을 뿐이겠죠.


SK이노베이션은 SK㈜에서 투자 부문을 남기고, 석유, 화학 및 윤활유, 유전개발, 대체에너지사업 등이 인적분할해 설립된 회사인데, 윤활유 부문은 SK루브리컨츠로, 석유 및 화학 사업 부문은 SK에너지, SK종합화학, SK인천석유화학으로 각각 물적 분할되었죠. 정보전자소재 부문도 2019년에 SKIET로 분할되어, SK이노베이션의 자체사업은 배터리와 석유개발, 일부 석유사업 정도가 남아 있었습니다.


배터리부문과 석유개발 부문을 분할하고 나면, SK이노베이션은 원유, 석탄, 석유제품 등의 수입과 제조, 판매 등의 사업만 남게 됩니다. 지난해 SK이노베이션 자체 매출의 약 절반 정도 되지만, 성장성이 떨어지고 SK이노베이션이 탄소에서 그린으로 사업의 대 전환을 꾀하고 있으니 사업의 확대를 위한 투자가 이루어질 것으로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3월말 분기보고서를 기준으로 하면, SK배터리의 자산은 약 4조6309억원, 순자산은 2조1265억원으로 설립됩니다. SK배터리와 SK E&P에 분할된 자산이 합계 5조4000억원 정도인데, 분할 전후 SK이노베이션의 자산은 3조원도 줄지 않고, 자본합계는 변하지 않죠. 자산을 분할하지만, 대신 분할된 회사의 지분을 전부 소유하기 때문에 자산은 별로 줄지 않고, 자본은 그대로 유지되는 겁니다.


SK이노베이션의 분할 후 남은 자산이 16조원 정도인데, 그 중 약 15조원은 종속회사 또는 관계회사 주식입니다. 대부분의 현금성자산과 설비자산(유형자산, 무형자산)을 분할신설회사에 넘겨주게 됩니다. 부채 중에서 차입금은 SK이노베이션에 대부분 잔류하게 되고 매입채무 등 영업부채는 분할되는 사업별로 신설회사로 이관됩니다.


분할 자산 중 눈에 띄는 것은 현금 유동성(현금성자산 및 단기금융상품)의 대부분을 SK배터리로 떼어준다는 겁니다. 약 5000억원 중 3770억원을 SK배터리 몫으로 분류했더군요. 그런데 이걸로 끝나지 않을 것 같습니다.


SK이노베이션은 지난 5월에 분할된 SKIET의 주식 매각으로 약 1조3476억원의 현금을 수령했고 2분기에 자회사 배당금으로 약 5500억원의 현금유입이 있었습니다. 6월말 기준으로는 현금이 2조3530억원인데요. 이 중 약 1조7000억원을 SK배터리에, 약 2400억원을 SK E&P에 배정할 예정입니다. 또 지난달 SK루브리컨츠의 소수 지분(40%)을 매각해 1조1000억원을 받게 되었죠. 이 현금도 분할신설회사에 주로 배정될 것으로 보이는데, 대부분 SK배터리로 향하게 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이렇게 되면 SK배터리는 신설되는 시점에 현금이 최소한 2조원 이상, 어쩌면 3조원 가까이 확보되는 셈입니다. SK이노베이션이 자회사 지분 매각과 배당금 수입으로 마련한 유동성 대부분을 SK배터리에 넣게 되는 건데요. 그 이유는 분명하지요.


SK그룹은 향후 5년간 배터리 사업에 약 18조원을 투자하겠다고 밝혔습니다. 1년에 평균 3조원이넘습니다. 배터리 사업이 지난해를 기점으로 급성장하고 있고 수주도 크게 늘었으니 투자를 늦출 이유가 없죠. 분할을 신호탄으로 더욱 공격적인 투자에 나서게 될 것입니다.


게다가 LG그룹에 올해와 내년 일시금 1조원을 지급해야 하는데, 분할과 함께 지급 의무도 SK배터리로 넘어가게 될 터이니 분할 시점에 현금 1조원을 손에 쥐고 있어야 하는 사정도 있겠습니다. 신설 시점에 현금 4조원쯤 갖게 되어도 1년 안에 다 소진된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SK이노베이션은 배터리 부문을 분할한 후에도 향후 몇 년간은 지속적으로 막대한 지원을 해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배터리 부문은 올해 상반기에만 매출 1조원을 돌파해 지난해 퀀텀 점프의 기세를 이어가고 있지만, 아직은 적자 사업입니다. 1분기에 약 1767억원의 영업적자를 기록했고, 2분기에도 약 1000억원의 적자를 보탰습니다.


SK그룹은 당초 2022년을 흑자달성의 해로 제시를 해왔고, 어쩌면 그보다 이르게 올해 흑자로 돌아설 수 있다는 기대를 받는 것 같지만 하반기 매출이 상반기보다 크게 늘지 않는 한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설사 내년에 흑자전환에 성공한다고 하더라도 18조원에 달하는 향후 투자규모를 홀로 감당하기는 어렵겠죠.


분할 후 상장을 하게 되면 2차전지에 대한 높은 성장 기대에 힘입어 상당한 목돈을 확보할 수는 있을 겁니다. SK이노베이션은 구주 매출로, SK배터리는 신주발행으로 현금을 손에 쥐게 될 테죠. 하지만 그 시기가 당장 올해나 내년이 될 것으로 기대하는 건 김칫국 마시는 게 될 수 있습니다.


상장을 하려면 우선 흑자 달성을 해야 하고, 분할 후 상장을 바로 추진한다고 해도 최소 1년 정도의 시간이 걸립니다. 투자 적기를 놓치지 않기 위해서는 당연히 상장을 서두르고 싶겠지만, 시장에서 가치를 높게 평가받는 때를 기다려야 하는 입장도 있을 겁니다.


10월초 분할을 하게 되면 기업공개와 관련된 계획과 전략이 수립되고, 내부적으로 상장 준비팀이 꾸려지겠죠. 가능하면 내년에 IPO시장에 출사표를 던지고 싶어하겠지만, 현실적으로는 2023년 정도에 상장이 이루어질 것으로 보는 게 맞을 것 같습니다.


배터리부문이 당분간 자체적으로 투자자금을 마련할 수 없다면 결국 모회사인 SK이노베이션이 지원에 나설 수 밖에 없습니다. SK이노베이션 김준 총괄사장도 "분할을 하더라도 초기에는 SK이노베이션 차원에서 타자자원을 당분간 넣어줘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그럼 SK이노베이션은 어떻게 배터리 부문 지원 자금을 마련하게 될까요. 상장사이니 유상증자를 할 수도 있고 대규모 회사채를 발행할 수도 있겠지만, 그런 식으로 외부에 의존하는 것은 부담이 적지 않습니다. 하지만 내부적으로 현금흐름을 창출할 수 있는 능력은 별로 없죠. 돈이 되는 사업을 거의 전부 물적 분할해서 자회사로 넘겨주었으니까요.



지주회사로서 현금 확보의 가장 큰 수단 중 하나가 자회사로부터의 배당금 수입입니다. 실제로 SK이노베이션은 배터리 부문이 적자 상황이었기 때문에 영업활동 현금흐름의 대부분을 배당금에 의존해 왔습니다. SK루브리컨츠와 SK에너지 등 캐시카우 역할을 하는 계열사에서 오는 배당금이 배터리 부문의 투자 재원이 되어 왔던 것이죠.


그런데 매년 2조원 수준이 유입되던 배당금은 앞으로 줄어들 것으로 보입니다. SKIET의 상장으로 지분율이 90%에서 61% 수준으로 낮아졌고 SK루브리컨츠의 지분율도 60%로 낮아져 이제 배당금 독식이 불가능합니다.


그렇다면 배당금을 매년 나누어 받을 것이 아니라 일시에 당겨 받을 생각을 할 것 같은데요. 자회사 지분 매각이 바로 그 방법이죠. SK이노베이션이 공정거래법상 보유하고 있어야 할 지분율(내년 이후 상장사 30%, 비상장사 50%)을 제외하고 나머지 지분을 매각한다면, 18조원의 투자 재원 마련에 성큼 다가설 수 있을 테니까요.


SK이노베이션에는 아직도 SK루브리컨츠, SK에너지, SK종합화학, SK인천석유화학 등 비상장 자회사들이 있습니다. 어느 정도 가치를 인정받을 지는 미지수이지만, 상장을 하는데 문제가 없는 기업들입니다.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IPO시장에 등장할 수 있다는 얘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