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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 테스트 및 패키징 사업을 하는 코스닥 상장사 에이티세미콘의 최근 공시 중 가장 빈도가 높은 것은 전환가액 조정입니다. 금융감독원의 공시사이트 DART를 열어보면 첫 페이지가 거의 전부 10회차~17회차 전환사채의 전환가액 조정 공시일 정도이죠. 전환사채를 자주 발행해 왔고, 잔존하는 전환사채 규모가 적지 않고, 주가가 상당 기간 동안 죽을 쑤고 있다고 짐작할 수 있습니다.
에이티세미콘은 지난해 이후 8회차부터 17회차까지 무려 10 차례나 전환사채를 발행했고, 현재 미상환 상태로 남아 있는 금액이 460억원입니다. 주식으로 전환하면 2750만주에 해당합니다. 발행주식 총수 3096만주의 89%에 달합니다. 앞으로 더 늘어날 가능성이 높습니다. 마지막 전환가액 조정 이후 주가가 추가 하락했고, 14회차 전환사채 40억원을 만기 전 취득한 후 소각하지 않고 보유하고 있으니 재매각할 수 있습니다. 12월 1일부터 주가가 오르면 전환가액 상향조정이 의무화되지만, 신규 발행되는 사채부터 적용될 테니 에이티세미콘의 기존 전환사채에는 해당 사항이 없습니다.
주식투자자 중에는 전환사채가 발행되면, 인수자가 주식 전환 후 수익을 얻기 위해 발행 기업이나 세력이 주가를 끌어올릴 것이라고 기대를 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실제로 그런 사례가 없지 않습니다만, 전환 물량을 이겨낼 정도로 강력한 호재가 아니라면 결국 주가를 희석시키는 원인으로 작용할 수 밖에 없죠. 세력과 함께 수익을 얻는 개인 투자자는 극소수일 뿐이고 대부분은 총알받이 역할을 하게 되죠.
유상증자도 자주 했습니다. 지난해를 제외하고 2016년부터 매년 한 두 차례 꼬박꼬박 증자를 해서 2019년까지 147억원을 조달했습니다. 전부 제3자배정 방식이었죠. 그리고 지난달 290억원의 대규모 주주배정 유상증자를 실시했죠. 채무상환이 주요 목적이었습니다.
기업이 자주 자금 조달에 나서는 이유는 무얼까요? 쓸 돈이 없기 때문이죠. 특히 10억원, 20억원씩 소규모로 전환사채를 발행하거나 유상증자를 수시로 한다면 십중팔구 돈을 벌지 못하는 기업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에이티세미콘은 올해 결손금 보전을 위해 10대 1 무상감자를 단행했습니다. 지난해말 현재 누적 결손금이 836억원(개별기준, 이하 같음)에 달했습니다. 자본금이 633억원인데, 자본총액은 397억원분이어서 부분 자본잠식 상태였죠. 9월까지 순손실이 178어원에 이릅니다. 무상감자를 하지 않았으면 누적 결손금이 1000억원을 넘어서고 자본잠식률이 50%를 넘길 뻔 했습니다. 무상감자는 관리종목 지정과 상장폐지 가능성을 차단하기 위한 목적으로 이루어진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에이티세미콘은 이전에도 수 차례 관리종목 지정과 해제를 반복해 온 부실기업입니다.

그런데 사실 에이티세미콘이 영 깡통인 회사는 아닙니다. 최근 2년 대규모 적자를 기록했고 올해 역시 적자가 확실시되지만, 매출은 매년 조금씩 늘었고 현금흐름으로는 흑자였습니다. 최근 5년간 영업활동 현금흐름이 늘 순유입이었고 올해 역시 9월까지 98억원의 현금을 창출했습니다. 하지만 영업에서 벌어들이는 현금은 자본적 지출에 충당하기에도 부족했습니다. SK하이닉스를 주요 고객으로 두고 있었지만, 반도체산업이 슈퍼사이클로 불리는 호황을 누리고 있는 시절에도 에이티세미콘은 쪼들렸습니다.
반도체 후공정업계 사정이 대체로 그런 모양입니다. 반도체산업이 잘 나가도 그 수혜를 누리는 곳은 일부에 그치고, 나머지는 별 볼일이 없네요. 최근 4년간 매출성장이 뚜렷한 곳은 Amkor와 SFA반도체 뿐이고 다른 업체들은 매출이 정체를 보이거나 오히려 뒷걸음질 칩니다.

에이티세미콘이 본격적으로 한눈을 팔기(?) 시작한 건 지난해부터 입니다. 바이오사업 진출을 선언하더니 에이치젠바이오(5억원), 에이펙셀생명과학(5억원)을 설립합니다. 부동산업을 하는 에이티에이엠씨(20억원)도 설립합니다. 5G 부품 전문업체인 비상장사 이랑텍 지분 25.87%를 5억원에 취득하고, 화장품 제조업체인 비상장사 코스모파마 지분 30.38%를 60억원에 사들입니다.
에이티세미콘이 화장품과 바이오 등의 부업을 시작한 건 아마도 반도체 후방사업에서 성장의 한계를 절감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하지만 그 선택이 정말 수익 확보를 위한 돌파구를 찾으려는 회사의 선택인지 모르겠네요. 바이오사업이 애들 장난도 아니고 진출하자마자 돈을 벌 수 있는 게 아니잖아요. 고작 5억원, 20억원을 투자해 신약이 뚝딱 나올 것도 아니고요. 이랑텍이나 코스모파마 등 지분을 취득한 회사들은 적자 기업이었습니다.
최대주주가 주가를 끌어올릴 수단으로 바이오, 화장품, 5G 등을 내걸었다고 하면 수긍이 됩니다. 전혀 다른 사업을 하던 기업이 바이오에 진출한다고 선언만 해도 주가가 들썩이는 건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니까요. 정작 회사에서는 뭉칫돈이 빠져나가고 신사업에서는 손실이 쌓여도 말이죠.
에이티세미콘의 신사업들은 코스모파마를 제외하고 모조리 적자입니다. 신규 설립한 곳들은 물론이고 이랑텍은 지난해 11억원, 올해 9월까지 벌써 38억원의 순손실을 기록했습니다. 코스모파마가 흑자라고 하지만, 지난해 3300만원, 올해 9월까지 2000만원의 푼돈(?)을 벌었을 뿐입니다. 올해 9월까지 에이티세미콘이 계열사에서 발생한 평가손실이 80억원에 달합니다.
신사업 진출을 활발히 진행한 지난해 주가는 고공행진을 했습니다. 4000원대에서 머물던 주가가 한때 1만원을 넘어서기도 했죠.주가가 높은 수준을 유지하던 지난해 8월부터 올해 2월까지 전환사채의 전환청구권 행사가 집중됩니다. 전환사채 보유자가 투자를 회수하기 좋은 환경이 조성된 것이죠.
에이티세미콘은 올해 3월 창사 이래 최대 규모의 지분투자에 나섭니다. 바로 리더스기술투자를 인수 결정입니다. 이와 함께 90% 무상감자를 이사회가 결정하고, 대규모 전환사채 발행과 유상증자가 추진됩니다. 이전의 자금조달과 확연히 달랐습니다.
리더스기술투자 지분 인수를 위해 발행된 16회차 전환사채 200억원은 유진에이티제일차 주식회사가 인수했죠. 유진투자증권이 설립한 장부상회사(SPC)입니다. 이 장부상 회사는 인수한 전환사채를 담보로 전자단기사채나 전자기업어음을 발행했을 겁니다. 그 전자단기사채 또는 기업어음은 여러 일반투자자들 손으로 넘어갔을 테고요.
사모로 발행되는 전환사채나 주식은 인수자가 50인을 넘길 수 없습니다. 투자자를 소수로 제한하기 때문에 정보 공시에 대한 의무가 없죠. 투자자보호 장치가 약하게 작동합니다. 유진에이티제일차 주식회사가 발행한 전자단기사채 또는 전자기업어음은 몇 명의 투자자에게 유통되었을까요. 그 투자자들은 기초자산이 에이티세미콘 전환사채라는 것을 분명히 인지하고 있을까요?
무상감자는 재무구조를 개선시키지 못합니다. 자본금을 줄이고, 그 만큼 결손금도 줄 뿐이죠. 결손금을 줄이고 남으면 자본잉여금이 늘어납니다. 단지 자본항목의 구성이 바뀌는 겁니다. 재무구조의 개선은 감자 후 실시되는 증자에 의해 이루어집니다.
에이티세미콘은 90% 무상감자 후 지난달 초 290억원의 대규모 유상증자를 했습니다. 이중 210억원을 채무상환에 쓸 거라고 합니다. 금융기관 단기차입금을 갚거나 전환사채를 조기 상환할 것으로 보여집니다. 어떻게 쓰이던 간에 결과적으로는 유상증자한 돈으로 리더스기술투자를 인수한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3월 결산법인인 리더스기술투자는 올해 9월까지 173억원의 손실을 냈습니다. 2020사업연도(2020.4~2021.3)에 89억원의 순이익을 냈지만, 2019사업연도와 2018사업연도에는 각각 111억원과 33억원의 적자를 기록했습니다. 그 이전 3개 사업연도에도 도합 42억원의 손실을 입었습니다. 최근 7년 중 순이익을 기록한 것은 2개년 뿐입니다.
에이티세미콘은 리더스기술투자 지분을 기준주가 915원에 경영권 프리미엄 535원을 얹어 주당 1450원에 샀습니다. 직전 1년간 코스닥 상장사 경영권 지분 양수도 거래의 평균 프리미엄(21.44%)를 크게 웃도는 57.47%의 웃돈을 준 겁니다. 이렇게 비싸게 주고 산 리더스기술투자는 에이티세미콘의 살림에 도움이 될까요? 에이티세미콘 사업확장의 과실은 누구의 몫이 될까요? 흥미로운 관전 포인트가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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