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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장사 지배구조를 취재하다 보면 종종 주주와 회사 사이에 위화감이 들 때가 있습니다. 분명히 경영권 지분을 가진 최대주주가 있지만, 회사의 경영활동에서 최대주주의 존재가 느껴지지 않는 그런 기업들이 있죠. 이런 경우는 통상 최대주주가 상장사라는 이점을 이용해 자금을 조달한 뒤, 그 자금을 회사의 성장이 아니라 최대주주의 다른 목적을 위해 사용하곤 합니다.


휴림로봇은 최대주주의 존재가 느껴지지 않습니다. 휴림로봇의 최대주주인 휴림홀딩스, 휴림홀딩스의 최대주주인 제이앤리더스㈜가 모두 장부상 회사와 마찬가지여서 그렇기도 하겠지만, 제이앤리더스의 100% 지분을 보유한 김지영이란 분은 정체가 전혀 드러나지 않습니다. 휴림로봇과 삼부토건으로 이어지는 지배구조의 정점에 있는 분인데, 회사 경영에도 관여하지 않고 언론에도 등장한 적이 없습니다. 왜 인수했는지 모르겠네요.


경영진의 이력이 참 흥미롭습니다. 휴림홀딩스 대표인 황만회씨에 대해서는 이미 언급한 바 있고요. 휴림로봇의 현재 대표이사인 김봉관씨는 20년간 로봇업계에 종사한 전문가로 언론에 소개가 되었는데, 원래 휴림로봇 출신은 아니더라고요. 산업기술대학교 겸임교수를 지냈고 한울로보틱스, 퓨처로봇 등에서 근무를 했는데 기획실장과 전략사업팀장 등으로 일을 했습니다. 연구쪽 보다는 기획통인 것 같고, 휴림로봇에 입사해서도 기획실장을 잠깐 맡다가 2019년 10월 사내이사로 선임되었습니다. 외부 영입 케이스인데, 기존의 경영진이나 주주와 어떤 인연인지 모르겠습니다.


이때 함께 사내이사에 선임된 사람이 김봉관씨 전에 대표이사를 지낸 정광원씨입니다. 정광원씨는 중국에서 대학을 나왔더라고요. 태영산업이라는 회사를 다녔고, 2018년 10월 임시 주주총회에서 사외이사로 선임되면서 휴림로봇과 공식적인 연을 맺게 됐습니다. 당시 Inentertainment라는 비상장사 이사를 지내고 있었더군요. 사외이사로 1년가량 근무를 하다가 2019년 10월에 사내이사가 되면서 바로 대표이사로 선임됩니다. 아주 독특한 이력이네요.


정광원씨는 현재 코스닥 상장사 파라텍의 대표이사이기도 합니다. 휴림로봇 대표이사가 된 지 1년 후인 2020년말에 각자 대표이사, 지난해 1월에 단독 대표이사가 되었습니다. 파라텍의 최대주주는 휴림인프라투자조합으로 17.74%의 지분을 갖고 있습니다. 휴림투자조합은 지난해 6월 설립된 신설회사인데, 휴림로봇이 62.75%, ㈜스카이스타홀딩스라는 곳에서 37.25%를 출자했습니다. 결국 파라텍은 휴림로봇의 계열사인 셈입니다.


정광원씨는 2020년말부터 지난해 10월까지 10개월간 휴림로봇과 파라텍, 두 코스닥 상장사의 대표이사를 겸임했습니다. 그런데 파라텍의 대표가 되었을 때는 휴림투자조합이 파라텍의 최대주주가 되기 전이었습니다. 정광원씨가 먼저 대표이사가 되고, 10개월 뒤에 휴림투자조합이 최대주주가 되었죠. 그리고는 김봉관씨에게 휴림로봇 대표이사직을 넘겨주고, 파라텍 대표만 맡게 된 겁니다.


이쯤에서 휴림로봇의 최대주주 변천사를 볼 필요가 있습니다. 휴림로봇은 2015년 중국회사인 베이징링크선테크놀로지로 최대주주가 변경됩니다. 베이징링크선은 중국 최대 휴대폰 유통업체로 알려진 디신통 그룹 계열사라고 합니다. 국내에 디신통코리아라는 법인도 있더라고요. 구글에서 검색하면 직원 5명이 해외직구 사이트로 나옵니다.


베이징링크선에 인수 된 후 동부로봇에서 디에스티로봇으로 상호를 변경하고, 2017년 9월에 회생절차 중이던 삼부토건의 유상증자에 200억원을 투자해 15.63%의 지분을 인수합니다. 2019년 3월에 다시 상호를 지금의 휴림로봇으로 변경하고, 3개월 후인 6월에 최대주주가 에이치엔티일렉트로닉스로 바뀝니다.


에이치엔티는 구주를 인수한 게 아니라 제3자배정 유상증자에 참여해 최대주주가 되었죠. 유상증자 직전인 2019년 3월말 기준으로 휴림로봇의 최대주주인 베이징링크선의 지분율은 6.74%에 불과했습니다. 2015년에 휴먼로봇을 인수해 이듬해 2월 28%까지 지분율이 올라갔고, 공동 보유자(리드 드래곤) 보유분을 포함하면 40% 가까이 되었는데, 2016년 9월 이후 대표이사를 해임하고 중국인(천징)이 대표이사로 오더니 이사회결의 무효 확인 소송, 임시주주총회 개최 금지 가처분 소송 등 주주와 기존 경영진 사이에 경영권 분쟁이 벌어지고, 최대주주 베이징링크선이 보유지분 대부분을 장외 매도합니다. 매수자는 대덕뉴비즈1~3호 조합과 에스알투자조합이라는 곳이었죠.


경영권 분쟁을 거친 후 인수한 게 삼부토건인데, 2018년 5월에 삼부토건 지분을 매각하기로 하면서 다시 최대주주와 회사 간에 소송전이 벌어지죠. 이때 삼부토건 매각 거래 구조가 좀 복잡했는데, 이에 대해서는 나중에 따로 다루어 보겠습니다.


이때 불거진 분쟁이 장기화되면서 해를 넘기고, 베이징링크선의 특수관계자 지분이 사라지면서 최대주주의 지분이 6.74%까지떨어진 겁니다. 이때 회사는 50억원 규모의 제3자배정 유상증자를 실시하고, 에이티엔티일렉트로닉스가 단독 참여하면서 최대주주가 바뀌게 되었죠.



당시 에이치엔티는 총자본 약 1000억원, 연 매출액 2270억원 정도 규모의 회사였고, 최대주주는 총자산 13억원, 연간 매출 45억원 정도의 ㈜한국전자(지분율 20.79%)였습니다. 한국전자의 대표이사이자 최대주주는 강성덕씨로 33.40%의 지분을 소유하고 있었고요.


흥미롭게도 최대주주가 바뀌기 전인 그해 3월 주주총회에서 손영석 대표이사 등 7명의 임원과 100명의 직원에게 지분율 3.42%에 해당하는 주식매수선택권(스톡옵션)이 부여되었더군요. 그리고 이인, 김재인, 이권노 등 3명의 사내이사와 동아일보 편집국장과 전남일보 대표이사를 역임한 박기정씨가 사외이사로 선임됩니다.


그런데 최대주주가 바뀌었으니 경영진도 새로 꾸렸겠죠? 6월에 에이치엔티로 최대주주가 바뀌고 임시 주총이 열린 게 10월인데, 이때 에이치엔티 부사장 박종철씨와 함께 신임 이사가 된 사람이 정광원씨와 김봉관씨입니다. 이분들은 이미 휴림로봇의 사외이사와 기획실장으로 먼저 와 있었죠.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면, 제3자배정 유상증자의 배정자로 에이치엔티를 선택한 것은 다름 아닌 휴먼로봇의 경영진이었을 겁니다. 이사회를 열어 결정했을 테니까요. 휴림로봇의 경영진은 자신들과 직원들에게 스톡옵션을 부여하고, 에이치엔티를 새로운 최대주주로 영입한 후에 휴림로봇에 참여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정광원씨와 김봉관씨를 이사로 뽑았습니다. 에이치엔티 몫의 자리였겠죠. 심지어 새로운 대표이사가 된 사람이 에이치엔티 부사장 박종철씨가 아닌 사외이사 정광원씨라는 사실이 사뭇 흥미롭습니다. 정황상 정광원씨와 김봉관씨는 에이치엔티쪽 인물로 분류할 수 밖에 없습니다.


정광원씨가 파라텍 대표이사로 가게 된 과정은 더욱 눈길을 끕니다. 2020년 10월 파라텍의 최대주주 베이스에이치디는 ㈜엔에스이앤지와 경영권 지분 양수도계약을 체결합니다. 계약이 성공적으로 이행되면 최대주주가 교체될 예정이었습니다. 엔에스이앤지는 배관자재 업체로 청계천에 사무실을 두고 있었죠. 휴먼홀딩스 대표인 황만회씨의 회사 남산배관센타와 업종과 주소가 겹칩니다. 실제로 엔에스(NS)는 남산(NamSan) 영문표기의 이니셜이고. 남산배관센타와 업무적으로 연결된 곳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엔에스이앤지는 베이스에이치디가 보유한 파라텍 지분 중 32.70%를 422억원에 매수하기로 했습니다. 베이스에이치디는 계열사인 까뮤이앤씨를 통해서도 파라텍 지분 11.78%를 보유하고 있었는데, 이 지분은 유일후랜지라는 곳에서 140억원에 매입키로 계약했죠. 유일후랜지와 엔에스이앤지의 관계는 모르겠지만, 이 회사 역시 배관자재 회사입니다. 남산배관센타, 엔에스이앤지, 유일후랜지가 모두 배관자재기업이라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런데 엔에스이앤지와 유일후랜지는 그 만한 자금력이 있다고 보기 어려웠습니다. 엔에스이앤지는 자본금 1,000만원에 자산총액 2억2100만원의 영세업체로 순자산이 (-)9,800만원의 완전 자본잠식 상태였습니다. 유일후랜지도 자본금 1억원에 자산총액 17억원인데, 부채가 15억원이 넘는 작은 회사였습니다. 몇 백억원을 동원할 수 있는 회사로는 보이지 않습니다.


엔에스이앤지는 42억원의 계약금을 전액 차입할 예정이었는데요. 빌려주기로 한 곳이 다름아닌 휴림로봇이었습니다. 엔에스이앤지가 인수할 파라텍 지분 전부와 경영권을 담보로 42억원을 대주기로 했죠. 인수자금의 10%를 빌려주면서 422억원짜리 지분을 담보로 잡은 겁니다. 중도금과 잔금도 휴림로봇이 댈 모양이었나 보네요. 이 때 휴림로봇의 대표이사가 바로 정광원씨였습니다.


결론적으로 이 거래는 성사되지 않았습니다. 잔금지급일이 2021년 1월로 연기되었지만 잔금은 결제되지 않았고, 쌍방 모두 귀책 사유를 상대에게 돌렸습니다. 엔에스이앤지는 4.32%의 지분만을 확보하는데 그쳤습니다.


하지만 정광원씨는 엔에스이앤지와 매매계약이 이행되기 전인 2020년 12월 파라텍의 대표이사 자리에 오릅니다. 그리고 다음해 3월 정기주주총회에서 파라텍이 사외이사를 교체하는데 김연선씨라는 분입니다. 정광원씨와 김봉관씨가 휴림로봇 사내이사가 될 때, 사외이사로 선임된 분으로 서울예술대 무용과 출신의 ㈜준영스포츠 대표이사입니다.


파라텍은 올해 2월 11일 주주총회를 열었는데요. 사내 이사 1명을 신규 선임했습니다. 휴먼홀딩스 황만회 대표입니다. 언제부터인지 모르겠는데 파라텍 전략기획실장으로 있었더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