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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B아이엔씨(DB Inc.)는 DB그룹의 지주회사 역할을 하지만 공정거래법상 지주회사는 아닙니다. 2021년말 지주회사 요건을 충족해 지난해 1월 지주회사 강제전환을 통보받았지만 지난해말 기준으로는 지주회사 요건을 충족하지 않아 공정거래법의 적용을 받지 않게 되었죠.


지주회사란 주식 소유를 통해 다른 회사의 사업내용을 지배하는 것을 주된 사업으로 하는 회사로, 공정거래법에서는 장부상 자산총액이 5000억원 이상이면서 소유하는 자회사 주식가액 합계액이 자손총액의 50% 이상이라는 두 가지 요건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지주회사로 전환되면 2년 이내에 자회사의 주식 50%(비상장 30%)이상을 보유해야 하고, 순환출자가 금지됩니다.


DB그룹은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할 생각이 없는 것으로 시장에서 보고 있습니다. 지주회사로 전환될 경우 핵심 계열사인 DB하이텍에 대한 지분율을 30%로 끌어 올려야 하는데, 현재 지분율 12.42%를 감안하면 대규모 현금 투입이 필요하죠. DB하이텍의 시가총액은 2조에서 3조사이에 형성됩니다. 21일 현재로는 2조3200억원가량입니다. 약 18%를 추가 취득하려면 못해도 4000억원이 넘습니다.


DB아이엔씨는 자산총계가 4000억원대입니다. DB하이텍 지분을 단기간에 30%대로 끌어 올릴 물리력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대대적인 유상증자와 외부차입을 통해 지분 매입자금을 마련할 수도 있겠지만 상당한 무리가 따르게 될 게 뻔합니다. 그 정도의 외부차입은 현실적으로 불가능에 가까울 뿐 아니라, 설사 가능하다고 해도 부채비율이 200% 이상으로 뛰게 될 겁니다.


DB아이엔씨의 자기자본은 대략 3000억원 정도입니다. 필요자금 중 절반을 유상증자로 조달한다고 해도 기존 자기자본의 67%에 달합니다. 그 중 42%를 김준기 창업회장과 김남호 회장, 그리고 김주원 부회장이 부담해야 합니다. 보유 지분을 팔거나 담보로 잡히면 마련할 수야 있겠지만 적지 않은 위험이 따르는 결정입니다.


그런데 따로 손을 쓸 필요도 없이 올해 초 공정거래위원회는 DB그룹을 지주회사 전환 대상에서 제외시켰습니다. DB아이엔씨의 자산총액이 2021년말 6104억원이었던 DB아이엔씨의 자산은 지난해말 4287억원으로 대폭 줄어, 규제 대상인 5000억원 아래로 떨어졌기 때문이죠.


자산규모가 크게 줄어든 이유는 바로 DB하이텍의 주가하락이었습니다. DB아이엔씨는 DB하이텍을 자회사도 아니고 관계회사도 아닌 기타포괄손익-공정가치측정 금융자산으로 분류하고 있고, 주가의 상승과 하락을 반영해 공정가액으로 평가를 하고 있는데요. 2021년말 4008억원이던 공정가액이 지난해말 2048억원으로 크게 하락한 겁니다. 그 바람에 DB아이엔씨의 자산규모가 5000억원 아래로 떨어졌고요.



따지고 보면 DB아이엔씨가 지난해 초 지주회사 전환을 통보받았던 것도 DB하이텍의 주가 상승 때문이었죠. 전년말 2812억원이던 DB하이텍 지분의 공정가액이 4008억원으로 뛰면서 DB아이엔씨 자산이 6000억원을 넘게 되었거든요. 동시에 DB아이엔씨 자산에서 DB하이텍 지분이 차지하는 비중이 60%가 넘어버렸죠.


운 좋게(?) 피했지만, DB그룹의 지주회사 체제 전환은 살아있는 이슈입니다. DB하이텍의 주가가 상승하게 되면 언제든 자산총액 5000억원, 자회사 주식 비중 50%를 넘게 될 테니까요. DB아이엔씨에서 DB하이텍 지분이 차지하는 비중이 너무 커서 그렇습니다. 실제로 6월말 현재 DB아이엔씨의 자산총액은 6053억원으로 다시 5000억원을 넘어섰고, DB하이텍 지분가치도 3479억원으로 올라, 다른 자회사 주식을 감안하지 않아도 50% 비중을 넘습니다.


이 틈을 파고 들었던 게 행동주의를 표방하는 펀드인 KCGI입니다. KCGI는 지난 3월 유한회사 캐로피홀딩스를 통해 DB하이텍 지분 7.05%를 매입하고 5월에 주주서한을 보냈는데요. KCGI는 서한에서 DB하이텍의 저평가 원인 중 하나로 지배주주인 김남호 회장측이 사적이익을 추구한다며, DB하이텍의 브랜드사업 물적분할(DB글로벌칩)과 자기주식 매입이 지주회사 전환을 피하기 위한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했습니다.


KCGI의 이 주장은 설득력이 좀 떨어진다고 생각합니다. 우선 물적분할되는 DB글로벌칩의 자산규모가 951억원으로 크지 않아서 총 자산이 2조원이 넘는 DB하이텍에 미치는 영향이 별로 없습니다. 물적분할이 주가하락을 유발할 수는 있지만 지주회사 전환을 막을 카드로는 효과가 별로 없습니다. 자기주식 역시 연중에 매입하고 연말에 매각하는 방식으로 주가 상승을 억제할 수 있겠지만, 대세 흐름을 바꾸어 놓기에는 역부족입니다. DB하이텍이 보유한 자기주식은 6월말 현재 220만주로 현 시세로 1150억원 정도 됩니다.


DB그룹이 지주회사를 피하는 가장 현실적인 방법은 DB하이텍 지분을 매각하거나, DB아이엔씨의 자산을 크게 늘려 자회사 주식의 비중을 떨어뜨리는 것인데요. DB하이텍 지분 매각은 하지 않겠다고 이미 입장을 밝혔죠. 자산을 늘리는 방식도 여러가지가 있지만 과거 SK그룹의 경우 연말에 단기차입을 크게 늘려 자산규모를 확대했다가 연초에 차입을 상환하곤 했는데요. DB그룹이 이 방법을 쓰려면 차입 규모가 상당해야 합니다. DB아이엔씨의 자산이 최소한 1조원은 돼야 어느 정도 사정권에서 벗어날 수 있으니까요.


DB아이엔씨가 DB메탈을 흡수합병하기로 한 것은 외부차입 없이 자산규모를 키워 자회사 주식 비중이 50% 아래로 떨어지게 하는 확실한 효과를 가져옵니다. 언론에서 두 회사의 합병을 사업 시너지 창출 목적보다 지주회사 전환 회피로 보고 있는 건 그 때문이죠.


DB메탈의 자산총액은 6월말 현재 4312억원입니다. 흡수합병 이후 DB아이엔씨의 자산총액은 1조원이 넘어서게 됩니다. 두 회사에 겹치는 자산이 거의 없어 합병을 하더라도 감소조정될 게 없습니다. 흡수합병 후 자회사 주식이 차지하는 비중은 40% 아래로 떨어지게 됩니다. DB하이텍 지분의 비중이 커져 50%를 넘어서게 되더라도 외부 차입이나 자사주 매각 등의 미세조정으로 대응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그 동안 유효하지 않았던 카드들의 쓸모가 생기는 셈이죠.



다만, 합병 이후 해결해야 할 이슈가 생깁니다. DB그룹은 공정거래위원회가 지정한 상호출자제한 기업집단입니다. 계열사 간 상호출자가 금지되고 신규 순환출자 역시 금지됩니다. 그런데 DB아이엔씨와 DB메탈이 합병을 하게 되면 상호출자와 순환출자가 생기게 되죠.


신규 순환출자는 DB하이텍의 관계회사인 동부철구가 DB아이엔씨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어서 DB메탈 합병으로 DB아이엔씨 → DB하이텍 → 동부철구 → DB아이엔씨의 고리가 생긴다는 것인데요. 합병법인)가 발생할 예정입니다. 하지만 동부철구가 보유한 주식 수가 3410주로 극히 소량이어서 순환출자 고리를 해소하는데 문제가 없을 것으로 보입니다.


DB아이엔씨와 DB하이텍의 상호출자는 문제가 됩니다. 공정거래법에서는 합병 등으로 인해 발생한 상호출자와 순환출자는 6개월 이내에 해소를 해야 하는데요. DB하이텍이 보유하게 되는 DB아이엔씨 지분 5.83%를 털어 내야 할텐데요.  이 지분이 어디로 가게 될 지가 관건입니다. 합병 법인의 재상장 후 시장에 내다 팔면 주가 하락을 압박하는 변수로 작용할 것이고, 지배주주인 오너 일가가 매입하려면 적지 않은 자금부담이 생깁니다. 우호적 관계가 있는 제3자에게 블록 딜 방식으로 매각해 파킹을 시도할 수도 있을 것 같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