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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가증권시장과 코스닥시장 상장사들(금융업 제외)이 달성한 연간 당기순이익을 전부 더하고, 영업활동 현금흐름(이하 영업현금흐름)을 전부 더한 다음, 당기순이익 합계에서 영업현금흐름 합계를 빼면 늘 음(-)의 값이 나옵니다. 대체로 기업의 당기순이익보다 영업현금흐름이 더 크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물론 모든 기업의 영업현금흐름이 순이익보다 큰 것은 아니지만, 지주회사 그리고 렌탈업처럼 금융을 기반에 둔 회사가 아니라면 대부분 그렇습니다.


대체로 현금이 동반되지 않는 비용들 때문입니다. 비용은 수익에서 차감돼 이익을 줄이지만, 현금이 동반되지 않으면 영업현금흐름은 줄지 않겠죠. 물론 현금이 동반되지 않는 이익(유가증권 평가이익 등)도 있지만, 대체로 현금이 동반되지 않는 비용보다 적습니다. 많은 기업에서 그 이유는 감가상각비 때문입니다. 기업의 현금창출능력을 대강 파악하고자 할 때, 영업이익에 감가상각비 등을 더한 에비타(EBITDA)를 쓰는 것도 그런 연유입니다.



그런데 상장사 중에도 영업현금흐름이 당기순이익보다 적은 기업이 꽤 많습니다. 어쩌다가 한두 해 그럴 수는 있지만, 매년 그런 기업도 상당합니다. 감가상각비처럼 고정적으로 현금이 수반되지 않는 비용이 없다면 그럴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매년 그렇다면 뭔가 좀 이상한 겁니다. 심지어 매년 이익을 내고 있지만 현금흐름 기준으로는 적자인 기업이라면 심각한 문제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 영업현금흐름이 음의 값이라는 건, 회사가 벌어들인 현금보다 영업활동을 하느라 지출한 현금이 더 많다는 뜻입니다. 매년 그렇게 되면 회사의 통장 잔고는 언젠가 바닥을 드러내게 되겠죠.


국내 최고의 드라마 제작사인 스튜디오드래곤은 올해 3분기까지 481억원(개별 기준)의 순이익을 올렸습니다. 8개 자회사의 실적을 반영한 연결 손익계산서 기준으로는 461억원으로 조금 줄어듭니다. 그런데 영업현금흐름은 275억원(개별)으로 거의 절반 수준이고, 연결 기준으로는 76억원으로 순이익의 16%밖에 되지 않습니다.



스튜디오드래곤은 2016년 CJ E&M에서 물적분할로 설립된 후 적자를 낸 적이 한번도 없습니다. 최근 2년간 창사이래 최대의 당기순이익을 기록했고, 지난해처럼 4분기에 주춤하지 않으면 올해 기록을 경신할 가능성도 있습니다.


하지만 연간 영업현금흐름이 흑자를 기록한 건 지난 개별 기준으로 2019년 딱 한번, 연결 기준으로도 2020년 딱 한번 뿐입니다. 하지만 현금흐름 흑자의 크기는 그때도 올해도 순이익에 비해 보잘 것 없습니다. (스튜디오드래곤은 8개 자회사가 있지만 재무구조나 실적에 미치는 영향이 미미해 개별 기준과 연결 기준을 모두 볼 필요는 없을 듯합니다. 앞으로는 연결 기준으로만 기술하도록 하겠습니다)



스튜디오드래곤 영업현금흐름이 순이익보다 크게 적은 이유는 점점 커지고 있는 제작비 부담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드라마제작비는 매출(주로 드라마 편성 또는 드라마 판매)에 대응해 매출원가가 되는데요. 일부는 제작원가로 바로 매출원가에 포함되지만, 일부는 무형자산인 판권이 되고, 상각의 과정을 거쳐 매출원가가 됩니다. 제작이 완료되지 않은 드라마의 경우에는 건설중인 자산(무형자산)으로 기록되었다가 제작이 완료되면 판권으로 대체됩니다.


보통 드라마 총 제작비의 30%가량이 판권으로 분류되는 것 같습니다. 올해 3분기까지 스튜디오드래곤의 매출원가는 5085억원에 달하는데요. 이 중 제작원가는 3090억원이고 무형자산 상각비가 1337억원입니다. 제작원가와 무형자산 상각비가 전체 매출원가의 87%에 달합니다.


스튜디오드래곤은 판권을 그 경제적 효익이 소비될 것으로 예상되는 형태를 반영하여 추정 내용연수 동안 상각합니다. 물론 경제적 효익이 현저하게 감소하면 손상차손으로 손실처리를 하게 되죠. 판권 등 무형자산 상각비와 손상차손은 순이익을 감소시키지만 현금유출이 수반되지는 않습니다. 순이익보다 영업현금흐름을 더 크게 만들죠.


반면 무형자산인 판권의 증가는 드라마제작으로 회사에서 현금이 유출되었음을 의미합니다.  보통 무현자산 증가는 영업활동이 아니라 투자활동으로 보는데요. 스튜디오드래곤의 경우 판권의 증가를 영업활동의 일부라고 보아 판권 확보에 들어간 제작비를 영업현금흐름에서 차감하고 있습니다.



판권에서 발생하는 상각비와 손상차손은 판권의 증가는 그 규모가 매년 거의 비슷하지만, 판권의증가액이 다소 큰 편입니다. 2021년과 2022년에는 그 차이가 꽤 컸고, 올해는 반대로 상각 및 손상차손이 약간 큽니다.


여기에는 두 가지 함의가 있는데요. 새로 생기는 판권과 판권의 상각 및 손상차손의 규모가 비슷하다는 것은 판권의 추정 내용연수가 그리 길지 않다는 뜻입니다. 거의 1~2년 안에 비용화 되는 것 같습니다. 또 새로 생기는 판권이 상각 및 손상차손보다 크다는 것은 순이익의 크기에 비해 영업현금흐름이 작게 된다는 것을 의미하죠. 지난 2021년과 2022년 스튜디오드래곤의 당기순이익이 사상 최대를 연속으로 갈아치웠는데도 불구하고 영업현금흐름이 대규모 적자를 보인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물론 판권이 순이익과 영업현금흐름의 괴리를 만들어내는 전부는 아닙니다. 드라마 판매 등의 매출이 외상으로 이루어질 경우에는 현금유입이 지연되겠죠? 스튜디오드래곤의 매출채권은 지난해 373억원, 올해 3분기까지 414억원 늘었습니다. 그만큼 영업현금흐름이 줄었습니다.


제작비의 또 다른 이름인 선급금이 있습니다. 드라마 제작에 참여기로 한 다른 회사들에게 미리 지급한 계약금 등이겠죠. 지난해 815억원 늘었고, 올해 58억원 늘었습니다. 역시 영업현금흐름을 줄이게 됩니다.


스튜디오드래곤의 판권 취득원가는 매년 큰 폭으로 늘어나 올해 9월말 현재 1조원이 넘어섰습니다. 그런데 장부가액은 고작 550억원에 불과합니다. 드라마 제작사로서 가장 중요한 무형자산을 취득하기 위해 들어간 금액의 90% 이상이 상각 또는 손상처리된 셈입니다. 판권의 상각이나 손상이 덜 이루어졌다면 스튜디오드래곤의 순이익은 훨씬 컸을 수 있습니다.



판권의 상각이나 손상처리가 빨리 이루어진다는 것은 판권으로부터 수익이 추가로 발생할 규모와 기간에 대한 회사의 기대가 낮다는 걸 시사합니다. 드라마 제작이 완료되고 1년 이상이 경과한 후에는 방영권의 판매 등이 크게 줄어든다는 뜻이겠죠?


뒤집어 생각하면 과거 드라마의 판권이 이미 거의 모두 상각되었기 때문에, 과거 드라마의 판매 등이 늘어나게 되면, 추가 비용 없이 매출이 증가하기 때문에 전부 이익으로 남게 될 것입니다. 전액 상각처리 되었다고 해서 지적재산권(IP)의 소유권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죠. 그렇게 제작된 드라마로부터 수익이 발생하는 규모와 기간이 늘어나게 되면 판권의 상각과 손상은 줄어들어 이익의 증가로 이어질 것입니다. 결국은 드라마 제작비에 비해 매출이 더 많이 더 오래 이루어지면 이익도 커지고 현금흐름도 좋아진다는 뻔한 이야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