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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내 2차전지 3인방의 실적은?
엘지에너지솔루션, 삼성SDI, SK온은 지난해 매우 실망스러운 실적을 기록했습니다. 이달 6일로 배터리 3인방의 연간 잠정실적 발표가 완료되었는데, 미국 IRA 세액공제 효과를 반영하고도 4분기에 모두 적자를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연간으로는 LG에너지솔루션과 삼성SDI의 매출액이 20% 이상 줄었고, 영업이익과 순이익이 70% 이상 감소하는 것으로 집계되었습니다.

SK온은 연간 14조원의 매출을 기록, 전년보다 8.8% 증가했고 영업손실은 1조원을 초과했습니다.연간 50조원 수준의 매출과 6000억원 수준의 영업이익을 창출하는 SK트레이딩인터내셔널과의 합병효과(합병기일 11월 1일)를 반영한 결과입니다. SK트레이딩인터내셔널의 11~12월 실적을 제거한 배터리사업의 매출은 전년의 반 토막 수준이고, 영업손실은 1조원이 넘습니다. 3분기까지 누적매출이 전년 동기(10.2조)의 절반도 되지 않는 4조6679억원에 그쳤고, 6일 SK이노베이션이 기업설명회에서 밝힌 4분기 배터리부문 매출이 1조5897억원인 점을 감안하면, SK온 배터리 연간 매출은 약 6조3000억원 수준으로 추정됩니다. SK온의 영업손실은 합병효과를 반영하고도 전년보다 5000억원가량 확대되었고 당기손실은 2조원을 넘겼습니다. 연간 1조원을 훌쩍 넘기는 금융비용이 큰 부담이 되고 있습니다.
◇ 해외 주요 경쟁업체들과 비교하면
국내 2차전지업체의 실적은 중국의 경쟁업체들과 매우 대조적입니다. 글로벌 1위 업체인 CATL은 지난해 3분기까지 매출이 감소했지만, 그 폭은 LG에너지솔루션이나 삼성S야의 절반 정도인 12.5%에 그쳤습니다. 당기순이익은 오히려 26% 증가했습니다. 아직 발표되지 않은 4분기 순이익은 신기록이 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옵니다. 매출 감소에도 불구하고 3분기 매출총이익률이 2018년 4분기 이후 최고인 31.2%에 달했습니다.

CATL은 최대 전기차 시장인 중국시장의 터줏대감이라 그렇다치고, 일본 파나소닉의 에너지사업부문은 어떨까요? 지난해 4월~12월까지(3월 결산법인임) 매출은 9% 감소에 그쳤고, 영업이익은 16% 증가했습니다. 국내 3인방보다는 CATL에 가까운 흐름입니다.
CATL과 파나소닉의 매출 감소는 판매가격 하락에서 주로 기인한 것으로 설명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업이익이 증가한 것은 주요 소재인 원자재가격 하락과 에너지저장장치(ESS)의 판매 및 수익성 호전에 따른 것이라고 합니다.
2차전지 판매가격과 원자재가격 하락은 국내외 업체 모두에게 적용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내 업체들의 실적이 유난히 나쁜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익의 감소는 이해할 수도 있습니다. 국내 업체들의 매출원가율은 80%이상(SK온은 90% 이상)으로 매우 높아서 매출이 감소하면 매출마진이 더욱 크게 줄어들고, 판매관리비나 금융비용 부담도 높은 편입니다. IRA 세액공제도 전년에 비해 줄었습니다.
문제는 매출의 급격한 감소입니다. 삼성SDI의 경우 지난해 3분기까지 주력제품인 소형전지 판매가격이 개당 평균 3295원으로 2023년 평균인 3585원보다 약 8.1% 하락했습니다. LG에너지솔루션의 전동공구용 배터리 판매단가는 지난해 3분기까지 평균 1.61달러로 전년 평균 1.89달러보다 14.8% 하락했습니다. 사업보고서에 공시한 판매가격이 전체 제품의 평균 가격을 의미한다고 볼 수 없지만, 그걸 감안해도 20%가 넘는 매출 하락은 충격적입니다.

더구나 지난해 원화는 미국 달러화에 비해 내내 약세였습니다. 연평균 달러/원 환율은 2023년 달러당 1306원에서 1364원으로 상승했습니다. 달러표시 매출액이 감소했어도 원화표시 매출액은 그보다 덜 감소합니다. 2차전지 업체들이 선물환계약이나 통화스왑 등을 통해 환헤지를 했어도 그 영향이 전부 사라지는 건 아닙니다.
특히 반 토막이 된 SK온의 매출 실적은 예상했던 결과이기는 하지만 여전히 당황스럽습니다. SK온은 지난해 3분기 미국 IRA 세액공제 덕분에 창사이래 처음으로 분기기준 영업흑자를 기록해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았습니다. 가장 중요한 매출 감소에 대해서는 회사측의 구체적인 설명이 없었고 언론도 주목하지 않았습니다.
SK온은 제품의 판매가격이 영업기밀에 해당한다며 공개하지 않고 있습니다. 판매가격 하락의 영향 정도를 파악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단가하락이 주요 원인인 것 같지는 않습니다. 지난해 SK온의 중대형 전지 생산실적은 3분기까지 9073만셀(Cell)로 전년 동기 약 18만셀의 절반에 불과했고, 전지용 원재료 매입액은 약 2조5000억원으로 전년 동기 약 7조원의 40%에 미치지 못했습니다. 95%에 달했던 가동률은 46.2%로 떨어졌습니다. 지속적인 설비투자로 생산능력이 커졌지만 공장의 절반은 멈추어 있던 셈입니다. 지난해 4분기 공장 가동률은 30%대로 떨어졌을 것이라는 추정도 있습니다.
◇ 전기차 캐즘으로 실적 부진 정당화되나?
국내 2차전지 업체의 실적 부진에 대해 대부분 언론은 물론이고 해당업체들조차 전기차 캐즘(Chasm)을 주요 원인으로 지목합니다. 캐즘은 도입 초기에 매출이 빠르게 늘었다가 일시적으로 수요가 정체되거나 후퇴하는 현상을 말합니다. 전 세계적으로 전기차 판매가 감소했다면, 국내 업체들의 매출 감소를 탓하기 어렵습니다. 해외 경쟁업체들보다 더 충격이 컸구나 정도로 이해해야겠죠.
그런데 전기차 캐즘 현상은 연초에 잠시 나타났을 뿐입니다. SNE리서치에 따르면, 지난해 1~11월 글로벌(중국 제외) 전기차 인도량은 약 542만대로 전년 대비 6.3% 증가했습니다. 완성차업체 별로는 상위 10위업체 중 테슬라(7.3% 감소), 현대차그룹(-2.1%), 스텔란티스(16.1% 감소), R-N-M(17% 감소) 등 4개업체가 줄고 다른 업체들은 증가했습니다. 현대차그룹의 경우 아이오닉5와 EV6의 판매량이 부진했지만 EV3와 EV9의 글로벌 판매가 증가했습니다.

지난해 1~11월 글로벌(중국 제외) 전기차용 배터리 사용량도 13.3% 증가했습니다. LG에너지솔루션, SK온, 삼성SDI 등 3사의 배터리 사용량도 각각 6.4%, 12.6%, 0.4% 증가했습니다. 지난해 3사의 매출 감소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 수치입니다. 특히 현대자동차그룹, 메르세데스-벤츠, 포드, 폭스바겐 차량에 배터리를 공급하는 SK온의 공장 가동률이 50%를 밑돌고 매출이 반 토막이 된 것은 미스터리에 가깝습니다. 신차에 사용되는 배터리 사용량이 3인방 중 가장 큰 폭으로 늘었는데, 매출은 절반으로 줄었다니 말입니다. SK온의 실적에 대해서는 별도의 기사로 다룰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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