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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바이오로직스가 지난달 인적분할을 결정했습니다. CDMO사업부문인 삼성바이오로직스를 존속회사로 두고, 바이오의약품 개발회사인 삼성바이오에피스 지분을 떼어 신설회사인 삼성에피스홀딩스를 설립하기로 했죠. 분할이 예정대로 진행되면 올해 10월 삼성바이오로직스는 CDMO사업만 남게 되고, 삼성바이오에피스는 삼성에피스홀딩스의 100% 자회사가 되어 삼성바이오로직스와 지분관계가 완전히 분리됩니다.
삼성바이오로직스의 인적분할에는 많은 이슈가 숨어 있습니다. 한 동안 잠잠했던 삼성그룹의 지배구조 개편이 재점화되는 것 아니냐는 것에서부터 삼성그룹이 이재용 회장의 트로피 사업으로 바이오부문을 집중 육성할 것이라는 예상이 나오고 있습니다. 삼성바이오로직스를 활용한 그룹 지배구조 개편이나 삼성그룹의 차세대 먹거리는 바이오부문이 될 것이라는 전망은 사실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닙니다. 삼성바이오로직스의 분할도 시기의 문제라는 얘기가 많았죠.

우선은 삼성바이오로직스의 인적분할 그 자체부터 살펴봅니다. 분할 목적에 대해 삼성그룹이 내세운 것은 ⑴일부 고객사의 이해상충에 대한 우려를 완전히 불식하고 역량과 자원을 집중시켜 CDMO회사로서 지속적인 성장모멘텀을 확보한다는 것과 ⑵바이오시밀러 사업의 정체성을 명확하게 해 시장에서 온전한 가치를 평가받겠다는 것 ⑶지주회사(삼성에피스홀딩스)의 신사업 투자를 통해 새로운 성장동력을 발굴하겠다는 것을 들고 있습니다.
삼성바이오로직스의 주요 고객은 머크(MSD), 화이자, 노바티스, GSK, 로슈 등 글로벌 빅 파마입니다. 이들은 삼성바이오로직스에 주문을 넣을 때 자신들의 의약 제조기술이 삼성바이오에피스로 넘어가는 것 아니냐고 우려해 왔다고 합니다. CDMO회사가 자체적으로 신약을 개발하면 안된다는 것은 업계 불문율인데, 삼성바이오로직스가 바이오시밀러 회사인 삼성바이오에피스를 자회사로 두고 있으니 납득이 되는 우려죠. 삼성바이오로직스는 확실하게 방화벽(firewall)을 구축하고 있다고 주장하지만 이해상충 우려는 고객사 입장에서 합리적인 것이었고, 삼성바이오로직스의 수주에 약영향을 줄 수 밖에 없었습니다.
두 번째 이유로 들고 있는 ‘온전한 가치평가’는 삼성그룹의 시각을 드러냅니다. 삼성바이오에피스가 삼성바이오로직스의 자회사로 있는 바람에 시장에서 그 가치가 온전하게 평가받지 못하고 있다는, 다시 말해 삼성바이오로직스의 주가에 삼성바이오에피스의 가치가 제대로 반영되지 못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는 것이죠. 인적분할로 삼성에피스홀딩스가 재상장하면, 기존의 삼성바이오로직스 시가총액보다 인적분할된 두 회사(존속 삼성바이오로직스, 삼성에피스홀딩스)의 시가총액의 합이 훨씬 커질 수 있다고 기대하고 있는 겁니다.
인적분할 이후 CDMO사업과 바이오사업이 각자의 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 기회를 만들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는 합리적입니다. 이해상충에 대한 고객들의 오해가 희석되면 CDMO부문의 수주 경쟁력을 높일 수 있고 바이오부문에 대한 지원 부담을 줄일 수 있을 것입니다. 바이오부문은 기존 CDMO고객의 눈치를 보지 않고 신약개발에 적극적으로 나설 수 있고 국내외 M&A 등 다양한 성장전략을 구사할 수 있는 융통성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CDMO부문에 가려 삼성바이오에피스의 가치가 현재 저평가되어 있고, 분할 자체만으로더 높은 평가를 받을 수 있을 지에 대해서는 고개를 갸우뚱할 수밖에 없습니다. 삼성바이오에피스가 저평가되었다는 것은 삼성바이오로직스의 현재 주가가 저평가되었다는 말인데, 이리 보고 저리 보아도 객관적인 지표들은 오히려 삼성바이오로직스가 비교 대상기업들에 비해 높은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고 알려주고 있거든요.

삼성바이오로직스는 매우 빠른 성장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2020년 매출 1조원을 돌파한 지 4년만인 지난해 4조5000억원대로 올라섰고, EBITDA도 거의 5배 증가해 2조원 돌파를 눈앞에 두고 있습니다. KOSPI 기업 중 EBITDA 순위가 어느덧 34위까지 올라왔습니다.
그런데 경영실적보다 더 빨리 오른 게 시가총액입니다. 삼성바이오로직스의 시가총액(73조원)은 삼성전자, 5일 현재 73조원으로 삼성전자(350조원), SK하이닉스(163조원)에 이어 무려 3위입니다. EBITDA 합계가 무려 33조원으로 삼성바이오로직스보다 16배 이상 많은 현대차와 기아의 시가총액 합계(75조원)와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입니다. 그 만큼 다른 국내 상위 기업들과 비교해 향후 성장성의 가치를 높게 인정받고 있다는 뜻이죠.
기업가치를 비교하는 지표로 가장 널리 쓰이는 EV/EBITDA를 비교해 보면 삼성바이오로직스가 얼마나 높은 평가를 받고 있는지 확실하게 알 수 있습니다. 시가총액 상위 20위 안에 드는 기업 중에서 삼성바이오로직스(37.9)보다 EV/EBITDA가 높은 곳은 셀트리온(41.0)이 유일합니다.

삼성바이오로직스의 대부분 실적은 CDMO에서 나옵니다. 그러나 CDMO가 보여준 그간의 성장성과 실적이 높은 EV/EBITDA의 모든 근거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CDMO는 대규모 설비와 수주경쟁력이 매우 중요한 제조업의 특성을 갖고 있습니다. 규모의 경제가 경쟁력의 원천인 만큼 EV/EBITDA가 높게 형성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삼성바이오로직스의 EV/EBITDA는 오히려 다른 바이오기업의 그것에 가깝습니다. 삼성바이오에피스와 같은 바이오시밀러 기업인 셀트리온과 비슷하죠. 국내 바이오기업은 미국 나스닥시장의 바이오기업에 비해 높은 밸류에이션을 받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나스닥 바이오기업인 바이오젠(Biogen)의 EV/EBITDA는 약 10배 수준이고, 암젠(Amgen)은 약 12배 수준입니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나스닥의 바이오기업에 비해서도 훨씬 높은 프리미엄을 인정받고 있는 셈입니다. 우리나라는 바이오기업의 밸류에이션이 높은 것으로 세계적으로 정평이 나 있습니다. 해외 투자자들이 깜짝 놀랄 정도죠.
마이크로소프트가 만든 인공지능 프로그램, Copilot에게 세계적인 CDMO기업의 밸류에이션을 뽑아 달라고 해보았습니다. 여기에서도 삼성바이오로직스의 기업가치에 다른 CDMO기업과 비교해 높은 프리미엄이 포함되어 있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다만, Copilot이 자료의 출처에 대해 명확한 시점과 기준을 제시하지는 못해 참고용으로만 활요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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