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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한국 증시에 게놈(Genome) 전문기업 제넥셀이 의료기기 업체인 세인전자를 합병하며 코스닥 시장에 우회상장합니다. 여의도 증권가는 하이테크 바이오 기업이 등장했다며 환영했죠. 세인전자는 혈압계 시장이 강자로 실적 부진 후 턴어라운드 조짐을 보이고 있었고, 제넥셀은 초파리를 이용한 유전자 기술을 바탕으로 그 독창성이나 파이프라인에서 여타 바이오업체들과 차별적이라는 매력을 인정받고 있었습니다.
제넥셀은 카이스트(KAIST) 생명과학과 김재섭 교수가 동료인 정종경 교수, 유욱준 교수와 초파리 유전자 라이브러리를 기반으로 치매, 암, 비만 등 난치병 관련 유전자를 발굴하고 치료제 개발을 목표로 설립했습니다. 정종경 교수는 유전적 요인의 파킨슨병 발병 원인을 밝혀 유명해진 분이고, 유욱준 교수는 국내 1호 분자생물학자로 알려져 있습니다.
제넥셀의 학술적 성과는 유수 학회지를 통해 수차 공개되었고 치매치료제와 신생혈관촉진제 등 2개 분야에서 개발 후보 물질을 확보 중이었습니다. 현존 대형 신약들이 대거 특허 만료되면서 저렴한 가격의 제네릭 의약품이 시장에 공급되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타깃 차별화를 통해 성능이 개선된 신약을 개발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출처: 미래에셋증권, 2005.10.31 탐방 코멘트)
세인전자는 손목 부착용 혈압기 시장에서 세계 5위권의 생산능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유럽에 치중된 해외시장에서 대만업체의 거센 공격으로 성장 한계를 겪고 있었으나 복합기 출시를 계기로 미국 등 해외시장 확대의 전기를 모색 중이었고, 해외 판매처가 확보되면 성장의 촉매가 될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습니다. (출처: 미래에셋증권, 2005.10.31 탐방 코멘트)
당시 코스닥시장에서 바이오기업들은 귀한 몸이었습니다. 당장 수익이 나지 않아도 성장성 만으로 평균 기업가치가 1000억원을 훌쩍 넘었죠. 제넥셀은 기술적 독창성에 파이프라인까지 갖추어 더 높은 성장성을 인정받고 있었죠. 세인전자의 의료기기 사업이 턴어라운드된다면, 두 회사의 합병은 성장성과 수익성을 동시에 갖추는 셈이었어요. 단기 수익성이 부족한 특유의 약점을 보완한 바이오 상장기업의 탄생과도 같았습니다.
2005년 7월 제넥셀과 4인의 개인(김태형, 최우창, 장종원, 정세정)은 세인전자의 최대주주인 최태영 등으로부터 경영권 지분 280만주를 50억9600만원에 매입합니다. 제넥셀은 67만주를 12억1940만원에 취득하고 세인전자의 경영권을 확보하죠. 그 다음으로 제넥셀과 세인전자의 주식을 교환하는 방식으로 비상장사인 제넥셀을 세인전자의 100% 자회사로 만듭니다. 주식교환을 위해서는 각 회사의 주식가치를 평가해야 하는데, 세인전자는 기준주가로 1805원이 나왔고, 제넥셀은 이른바 본질가치법(자산가치 40% + 수익가치 60%)으로 나온 1만1537원을 20% 할인한 9229원으로 계산했습니다. 제넥셀 주주들은 1주당 세인전자가 발행한 신주 약 5주를 받게 되었습니다.
당시 제넥셀의 주요 주주는 김재섭, 정종경, 유욱준, 박미령 등이었고, 이들은 주식교환으로 세인전자의 대주주가 됩니다. 특히 김재섭은 11.93%의 지분율로 최대주주가 됩니다. 아쉽게도 그 당시 김재섭 등 주요 주주가 제넥셀 지분을 각각 얼마나 보유하고 있었는지 공시로 확인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교환비율로 역산을 해 보면 김재섭이 19.5%, 김재섭의 배우자 박미령이 7.8%, 정종경과 유욱준이 각각 7.4% 보유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김재섭 등이 교부받은 세인전자 신주는 2년간 보호예수 대상이 되었지만, 1년 후부터 매월 5%씩 처분할 수 있었습니다.

주식교환으로 제넥셀을 자회사로 두게 된 세인전자는 상호를 제넥셀세인으로 변경했습니다. 제넥셀의 창업자 3인 중 김재섭, 정종경은 제넥셀세인의 이사회에 입성했고, 김재섭은 대표이사에 선임되었죠. 유욱준도 사내이사 후보였지만 일신상의 사유로 주총에 상정되지 않았습니다. 제넥셀세인으로 상호를 바꾼 세인전자는 의료기기업체에서 바이오기업으로 변신합니다. 그 과정으로 제넥셀에서 보유 중인 지적재산권과 향후 취득할 지적재산권을 제넥셀세인에서 이용하고, 매출액의 15%를 제넥셀에 지급하는 기술도입계약을 맺게 됩니다.
제넥셀세인은 제넥셀 인수의 효과로 주가가 급등했습니다. 그로 인해 신주인수권부사채를 보유하고 있던 외국인투자자들이 큰 이득을 보게 됩니다. ABN암로은행 런던지점과 라이온하트어드바이저리그룹인데요. 제넥셀과 주식교환을 하면서 발행주식 수가 늘었고, 그로 인해 신주인수권 행사로 취득하는 주식 수도 늘었죠. 그리고 그 주식을 주당 3000~4000원에 매각합니다. 세인전자 주식이 제넥셀 주식과 교환한 가격인 1820원보다 훨씬 높은 수준이었습니다.
세인전자는 2005년 기준으로 연 188억원의 매출과 약 19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했습니다. 보유하고 있던 타법인 주식에서 상당한 손실을 입고 있었지만, 본업의 실체는 분명히 있었습니다. 제넥셀은 어땠을까요? 카이스트 교수인 저명한 생명과학자가 공동으로 창업했고, 초파리를 이용한 독창적인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는 무형의 가치 외에 매출이나 이익 등의 펀더멘털 측면에서는 별로 내세울 게 없었습니다.
제넥셀은 2003년부터 매출이 발생하기 시작했지만, 세인전자에 인수된 2005년 매출이 5억원에 채 미치지 못했습니다. 반면 인건비와 연구개발비가 꾸준히 발생하면서 매년 10억원 이상의 영업손실을 입고 있었습니다. 2005년말 제넥셀에는 고작 1억원의 현금도 남아 있지 않았습니다. 세인전자 주가의 5배가 넘는 제넥셀의 주당 가치는 순전히 카이스트 생명과학자로 이루어진 경영진과 초파리 기술에 대한 기대값이었던 셈이죠.

과거 인터뷰에 따르면 제넥셀은 연구에 필요한 초파리 확보를 위해 설립되었습니다. 연구비로는초파리 연구가 역부족이어서 자금조달을 위해 벤처기업을 만들었고 카이스트, SK, 무한투자기술 등에서 투자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제넥셀의 가장 중요한 자산은 약 10만 종류에 달하는 초파리였고, 그 초파리를 만드는 데 약 60억원이 들었다고 합니다. 제넥셀은 치매, 파키슨씨병, 당뇨, 비만치료 등에 사용될 수 있는 유전자 및 화합물질을 개발했고, 옥스퍼드, 예일, 버클리 등 40여개 대학에 자체 제작한 형질전환 초파리를 공급했습니다.(출처: 화학저널 2005년 7월 26일 기사)
아마 코스닥 상장사인 세인전자를 인수한 것도 미래 연구개발비 조달이 가장 큰 목적이었을 겁니다. 세인전자의 의료기기 수익은 회사를 운영할 수 있는 최소한의 기반이 되어줄 수 있었고, 상장사로서 유상증자나 사채 발행 등을 통해 벤처기업으로서는 어려운 규모의 자금조달이 가능했을 테니까요.
하지만 우회적으로 코스닥 시장에 등장한 제넥셀은 예상과는 다른 성장 경로를 걷게 됩니다. ‘연구와 기술을 산업화’하겠다는 교수들의 의지로 설립되었고, 카이스트의 관심과 지원을 받는 벤처기업에서 코스닥 시장의 M&A 큰 손 김재섭의 왕국으로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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