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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이후 SK이노베이션 소그룹 내에서 대규모 합병 거래가 집중적으로 발생하고 있습니다. 상당 수는 재무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배터리 사업(SK온)의 재무구조 및 현금창출능력 강화 차원이라고 이해할 수 있는데, SK온에 흡수된 대표적인 사례로는 SK트레이딩인터내셔널(2024년 11월 1일완료), SK엔텀(2025년 2월 1일 완료), SK엔무브(2025년 11월 1일 완료)가 있습니다.


세 회사 모두 SK이노베이션의 석유사업을 영위하는 회사로 이익과 현금흐름 창출능력이 돋보이는 곳입니다. SK트레이딩인터내셔널은 연간 수천 억원의 영업이익을 내는 원유 트레이딩 사업을 하는 곳이고, SK엔텀은 울산·인천 등의 대규모 원유 저장 인프라를 바탕으로 안정적인 임대수익을 내던 사업인데, SK에너지에서 떼어내서(인적분할) SK온에게 줬습니다.


SK엔무브는 프리미엄 윤할기유 시장에서 글로벌 1위 공급자입니다. 마진율이 시황 정체기에도 10%대 중후반에 달해 일반 정유업에 비해 훨씬 높고, 올해 미국-이란 전쟁 여파로 공급차질이 빚어지면서 2분기 영업이익률이 무려 34.9%까지 치솟았죠. SK이노베이션의 알짜 캐시카우인데요. 과거 재무적 투자자(FI)인 에코솔루션홀딩스에 매각했던 지분 40%를 지난해 7월 8,593억원에 전량 되사온 뒤 곧바로 SK온과 합병을 결정했습니다.


SK온은 SK이노베이션 소그룹 내에서 ‘돈 먹는 하마’ 같은 존재였습니다. 모회사인 SK이노베이션의 등골을 빼먹고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그런데도 SK온의 재무부실이 해결되지 않자, 아예 자신의 현금 파이프를 통째로 SK온에 꽂아 준 형국입니다. 자신의 알짜 자산들을 SK온에 줘버렸으니, 지주회사인 SK이노베이션이 돈줄은 얇아질 수밖에 없죠.


SK이노베이션은 SK온을 돕느라 재무적으로 상당히 희생을 한 상태였습니다. 2021년 자체 총차입금이 1조 8,930억원이었는데, 2025년말에는 11조 7,200억원으로 무려 6배 이상 불었고, 부채비율, 차입금의존도 등 재무지표들이 크게 악화되었죠. 2023년과 2025년 두 차례나 1조 1,370억원과 2조원의 대규모 유상증자를 단행해 SK㈜를 비롯한 주주들에게 손을 벌려야 했습니다.


그래서 그랬는지, 2024년 11월에는 SK㈜가 SK이노베이션을 위한 특단의 조치를 하죠. 바로 LNG·발전 사업자 SK E&S를 SK이노베이션에 흡수합병한 겁니다. SK E&S는 매년 1조원 안팎의 안정적인 현금흐름을 창출하는 SK㈜의 확실한 캐시카우라는 평가를 받던 회사였습니다. SK온을 구하느라 체력이 크게 떨어진 SK이노베이션을 위해 SK㈜가 보약 한첩을 처방해 준 모양새였습니다. 이 거래에 대해 금융당국과 시장에서 여러 논란이 있었고 수 차례의 정정공시가 이루어졌습니다. 하지만 SK이노베이션 주주총회는 87.75%라는 압도적인 지지율로 통과시켰습니다. SK E&S 합병이 유리하다는 공감대가 주주들 사이에 형성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SK온에 흡수된 3개 회사, SK이노베이션이 흡수한 SK E&S는 비상장회사였습니다. 모회사인 SK이노베이션과 SK㈜가 사실상 완전 지배하고 있었던 회사들이었고, 일반 주주는 없었던 회사들입니다. SK이노베이션이나 SK㈜ 주주 입장에서는 어차피 연결실체 안에서 벌어지는 거래라 이해관계의 충돌 여지가 크지 않았습니다.


SK이노베이션은 지난달 2차전지 핵심소재인 분리막을 생산하는 SK아이이테크놀로지와 합병을 선언했습니다. 그런데 이 거래는 지금까지의 합병과는 완전히 다른 스토리입니다. SK이노베이션은 2019년 분리막 사업을 물적분할해 SK아이이테크놀로지를 세웠고, 2차전지 주가가 천정부지로 치솟던 2021년 유가증권시장에 상장시켰습니다. 이른바 ‘쪼개기 상장’이었고 SK이노베이션은 구주매출로 1조원이 넘는 막대한 현금을 챙겼습니다.



5년 전 엄청난 인기를 끌며 주식시장에 등장한 이 회사는 지금 꼴이 말이 아닙니다. 주로 SK온에 분리막 소재를 납품하는 계열 내 밸류체인에 속해 있는 SK아이이테크놀로지는 SK온과 비슷한 전기차 캐즘의 피해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매출액은 2023년 6,483억원에서 2024년 이후 2,000억원대로 3분의 1토막이 났고, 올해 상반기 매출은 전년 동기 수준의 반토막(754억원)이 났습니다. 본업에서 수천억원의 손실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2024년과 지난해 2,000억원대 적자, 올해 상반기에도 1,364억원의 영업손실을 추가하면서 누적결손법인으로 전락했습니다.


현금흐름도 악화일로에 있습니다. 2024년 이후 본업에서 2,000억원 가까운 현금을 까먹었습니다. 그 와중에 해외에서 대규모 투자를 진행해 차입금이 눈사람 커지듯 커졌습니다. 상장 당시 순현금 기업이었는데 올해 상반기 차입금은 1조 8,362억원에 달합니다. 본업에서 돈을 벌지 못하고, 차입금 이자는 갚아야 하니 매년 돌려막기를 해야 할 형편입니다. 이를 피할 수 있는 방법은 대대적인 유상증자일텐데, 미래가 보여야 주주들이 지갑을 열지요.



분리막 시장은 중국업체들이 득세하고 있습니다. SNE리서치가 지난해 12월초 발간한 보고서에 따르면 글로벌 Top 10업체 중 8개사가 중국업체이고, SK아이이테크놀로지는 11위로 추정됩니다. 과거 이 시장의 강자였던 일본의 아사히 카세이와 도레이는 중국업체에 밀리고 있고, 급기야 도레이는 헝가리 분리막 합작법인 지분을 LG화학에 매각했고 나머지 지분도 정리하기로 했죠.


글로벌 분리막 생산능력은 2035년에 996억 제곱미터로 2024년 대비 2배 이상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는데, 중국업체들의 대규모 증설에 예정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중국업체들의 공세 속에서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맞불을 놓든지, 기술적으로 압도해야 할텐데 그러려면 또 돈이 필요합니다. 대규모 적자가 지속되는 가운데 얼마가 들지 모르는 자금을 지속적으로 수혈해야 하는 ‘밑 빠진 독’ 같은 상황이라는 거죠.


SK아이이테크놀로지는 2026년 5월 중국 장쑤 공장 지분 100%를 889억원에 매각했습니다. 충북 증평공장은 가동을 전면 중단하는 등 비용절감에 애를 쓰고 있죠. 하지만 자체적으로는 버티기 어려운 상황으로 점점 가고 있는 느낌입니다. 증권신고서에 이런 말들이 있습니다.


“추가적으로 절감 가능한 비용은 제한적이고, 자체적인 비용 절감을 통해 현금창출력을 개선시키기에도 한계가 다소 있는 상황”, “재무구조 악화에 따른 신용등급 하락 및 약정(Covenant) 위반 리스크를 고려할 때, 합병소멸회사의 추가적인 차입 여력은 제한적”, “합병소멸회사를 독립법인으로 유지할 경우, 단기적으로 합병소멸회사의 차입금 상환 불가에 따른 채무불이행(Default) 발생 리스크가 있는 것으로 판단”


한 마디로 그대로 두면 부도가 날 수도 있으니 모회사인 SK이노베이션이 품기로 했다는 얘기입니다. SK아이이테크놀로지의 최대주주는 53.35%의 지분을 가진 SK이노베이션이죠. 지난해 7~8월 3,000억원 규모로 실시한 제3자배정 유상증자도 신주를 인수한 장부상 회사(SPC) 들과 주가수익스왑(PRS) 계약을 맺었으니 사실상 SK이노베이션의 통제 아래 있을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게 약 12.8%쯤 되니 SK이노베이션의 실질 지분율은 66%에 이른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SK아이이테크놀로지는 상장사이고, 나머지 34% 지분을 보유한 일반 주주들이 있습니다. 독립적으로 잘 성장해 보라고 이미 사회에 내보낸 자식 같은 회사란 말이죠. SK이노베이션이 일반 주주들은 그 손실을 당연히 부담해야 할 입장이 아니죠. 어쩌면 “2차전지 시장이 계속 안 좋으면 SK온도 흡수합병하는 거 아니야?”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을 것 같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