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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공업은 배합사료 업체인 고려산업과 선박 엔진밸브를 제조하는 케이에스피 등 2개의 상장 자회사가 있고, 비상장 계열사도22개가 있습니다. 콜타르업체인 동서화학공업, 농산물 수탁판매업체인 부산청과㈜, 건설자재업체인 중원엔지니어링, 콘크리트화학제품업체인 동서화학, 도료업체인 동서페인트, 세제와 방향제를 만드는 에버코스 등이 대표적입니다.


금강공업이 기업집단의 중심이기는 하지만 해외 자회사를 제외하면 지배 지분을 보유한 계열사는 고려산업과 케이에스피(이하 자회사)와 부산청과(고려산업의 100% 자회사) 정도이고, 비상장사인 동서화학공업이 동서화학을, 중원엔지니어링이 에버코스를 각각 거느리고 있습니다.



대부분 계열사는 오너 일가인 전정열 회장과 그의 가족들이 경영권을 직접 행사하고 있는데요. 전정열 회장은 이범호 대표이사와 함께 대표이사로서 경영을 총괄하고 있고, 고려산업에도 대표이사 회장으로 근무 중입니다. 차남 전재범씨는 금강공업, 고려산업, 케이에스피 등 상장 3사의 사장과 중원엔지니어링의 대표이사로 재직하고 있습니다. 또 전 회장의 처인 안영순씨는 금강공업의 최대주주이면서 동서화학공업의 대표이사를 맡고 있죠.


금강공업의 주요 계열사들은 대부분 설립된 지 30년 이상 지난 기업들입니다. 과거에는 각기 주인이 달랐고, 큰 실패를 겪었습니다. 전정열 회장 일가가 법정관리나 채권단 관리(화의)를 받던 기업들을 하나하나 인수해서 지금의 기업집단이 된 것이죠.


전 회장 일가는1998년 외환위기 때 회사를 잃을 뻔 했습니다. 부도 발생으로 자본 감소(80%)와 화의절차에 들어가면서 2001년 KTB8호기업구조조정조합이 제3자배정 유상증자로 최대주주가 되었죠. 하지만 2006년 11월 조합이 해산하고 조합원 중 출자지분이 가장 많은 안영순씨(7.31%)가 최대주주로 복귀합니다.


그 후에는 미주제강이 계열사 성원파이프와 함께 장내매수에 나서 최대주주로 등극, 전 회장 일가가 다시 한번 회사를 잃을 위기에 놓입니다. 하지만 이번엔 2009년 금융위기가 터지면서 사정이 급격히 나빠진 미주제강이 금강공업 지분을 중원엔지니어링에 장외매도하고 물러납니다.


비록 부도가 발생한 적이 있지만, 금강공업은 2000년부터 19년 연속 흑자 행진을 해 온 회사입니다. 그렇게 건실한 기업이니 최대주주 일가의 재산 형성에도 크게 도움이 되었겠죠. 그래선가요? 동양그룹이 망한 이후 법정관리에 들어갔던 동양네트웍스가 지난 2015년 회생계획의 일환으로 서울시 종로구 가회동의 토지와 건물을 매각했는데요.



매물로 나온 이 토지와 건물은 다름 아닌 서울특별시 민속문화재인 가회동 한씨 한옥이었고 매입한 이는 금강공업의 최대주주 안영순씨와 차남 전재범씨였습니다. 안씨 모자는 가회동 한씨 한옥을 123억원에 취득합니다.


이 대단한 한옥의 취득자금을 어떻게 마련했는지 미스터리입니다. 원래부터 100억원이 넘는 현금을 동원할 수 있는 엄청난 재력가였다면 할 말이 없지만, 안영순씨와 그의 두 아들, 그리고 계열사인 중원엔지니어링이 보유한 금강공업 주식은 은행에 담보로 잡혀 있었고, 한옥 취득 이전 몇 년동안 지분을 처분해 현금화한 적도 없습니다. 안영순씨와 전재범씨는 금강공업의 상장 계열사 고려산업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지는 않았으니, 고려산업 지분을 매각해 자금을 마련한 것도 아닙니다. 그렇다고 금강공업이나 고려산업이 대주주를 위해 취득자금을 빌려준 흔적이 있지도 않더군요.



사실 그럴 만한 사정도 아니었습니다. 2000년 이후 흑자행진을 한 금강공업이지만 현금흐름이 썩 좋지 않았습니다. 영업활동에서 창출한 현금은 유무형 자산에 투자하고 나면 남기는커녕 오히려 부족한 상황이었습니다. 2000년 이후 16년동안 금강공업의 영업활동으로 인한 현금흐름은 4,268억원(개별 기준, 이하 같음)에 달하지만 같은 기간 유무형 자산에 대한 순지출은 5,554억원에 달했습니다. 부족한 현금을 채우기 위해 16년간 1,759억원을 외부에서 순차입해야 했습니다. 비록 금강공업 주식을 담보로 잡혀 있었지만, 그 외에 현금을 동원할 다른 수단이 있었다고 추측할 수 밖에는 없겠네요.


1957년 창립된 고려산업은 외환위기 전까지 꾸준히 성장했지만 1997년 ㈜신동방의 미도파 M&A에 무리하게 참여하는 바람에 역풍을 맞습니다. 외환위기 때 막대한 부채와 주식평가손으로 재무상황이 크게 악화된 데다 퇴출 금융기관의 차입금 상환 압박이 겹치자 견디지 못하고 1999년 워크아웃을 신청하죠. 당시 고려산업의 최대주주는 신덕균 회장과 세 아들(성수, 명수, 영수)이었는데, 워크아웃 중이던 2005년 금강공업에 인수됩니다.


고려산업은 금강공업에 인수된 직후 계열사 지분 취득에 활용됩니다. 2015년에 유전자분석 서비스회사 ㈜D&A지분 77.9%를 약 2억원에 취득하고, 2016년에는 부산청과 지분 48%를 약 29억원에, 동서화학공업 지분 17.15%를 약 15억원에 양수합니다.


케이에스피는 2007년에 최대주주 임호열씨가 지분을 매각하며 최대주주가 네오플럭스 기업구조조정조합-이스트블루-서울레저컨소시엄으로 여러 차례 바뀌다 2008년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회생절차(법정관리)에 들어갑니다. 2010년 류흥목씨가 최대주주이던 한국공작기계㈜가 인수하면서 법정관리를 졸업하게 되죠. 하지만 2016년 이번에는 모회사 한국공작기계가  법정관리에 들어가게 됩니다. 덩달아 케이에스피도 다시 회생절차에 들어가게 되죠. 금강공업은 회생절차 중인 케이에스피를 2018년 11월 제3자 배정 유상증자로 인수하게 됩니다.


금강공업이 케이에스피 유상증자에 참여할 때 전장열 회장 외 3인이 동참해 총 80.13%의 지분을 취득하는데 이때 유상증자에 참여한 인물 중에는 고려산업 주인이었던 신성수씨가 있었습니다. 신성수씨는 고려산업이 금강공업에 인수된 후에도 2005년까지 대표이사를 맡았고 보유 주식을 전부 처분했지만 지금도 등기이사로 남아 있고, 고려산업 자회사인 대양개발의 회장을 맡고 있습니다.


또 대양개발의 현 대표이사인 구영화씨라는 분인데, 이 분은 신성수씨의 형제인 신명수씨가 100% 지분을 갖고 있던 눌원문화재단의 감사였습니다. 고려산업이 금강공업에 인수되었지만, 과거 주인과 주요 인사는 여전히 회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런 사례는 케이에스피에서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현재 케이에스피의 사내이사는 이범호 대표이사와 전재범 사장, 박현호 영업이사(상무) 등 3명인데 박현호 상무는 금강공업에 인수되기 전부터 영업이사를 맡고 있던 인물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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