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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엠 주가가 공개매수 청약일인 전날(2월 28일) 하이브가 제시한 12만원 이상(12만7600원)에끝났습니다. 공개매수를 통해 최대 25%의 지분을 추가 취득하겠다는 하이브의 계획은 사실상 실패로 돌아갈 가능성이 높아졌습니다.
하이브의 공개매수를 저지하기 위해 누군가가 시세조정을 했다는 의혹이 제기되었죠. 지난달 16일과 전날 특정 증권사를 통해 대규모 매수세가 유입된 것이 그 대상입니다. 오늘 금융감독원은 누군가가 주가를 공개매수 가격 이상으로 유지하려는 행위가 있었는지 조사하겠다고 밝혔습니다.
금융감독원의 조사가 에스엠 주주총회 전에 끝나기는 어려울 것이고, 시세조정 여부를 판단하기도 쉽지 않을 것입니다. 하이브와 카카오(+에스엠 현 경영진과 얼라인파트너스) 분쟁의 1차 승패가 주주총회에서 결정이 될 텐데, 금융감독원의 시세조정 조사는 변수가 되기 어렵습니다.
경영권 분쟁은 점입가경입니다. 전략적 사업 제휴를 하고자 할 뿐이라던 카카오가 '전면적인 전략의 수정'을 언급해 직접 링 안으로 뛰어들 태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사실상 에스엠 경영권을 확보하겠다는 속내를 드러낸 것이라고 볼 여지가 충분하고, 그렇기에 시장에는 카카오가 에스엠 주식에 대한 공개매수에 나설 것이란 예상이 나오고 있죠.
① 에스엠 경영진은 왜 기존보다 강화된 주주환원정책을 발표했을까요.
지난달 16일 언론에는 에스엠의 자사주 매입설이 보도되었고 실제로 27일 에스엠 이사회는 635억원의 자사주 매입을 결의했습니다. 다만 신한금융투자와 체결하려던 신탁계약은 실행되지 않았습니다. 에스엠 경영진은 자사주 매입을 주주 이익 제고를 위한 주주환원 정책의 일환이라고 주장했죠.
만약 올해초 7만원대이던 주가가 70% 이상 급등한 시점에 자사주 매입에 나섰다면, 주주이익 제고라는 주장은 설득력을 얻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주가가 적정 수준 아래로 과도하게 떨어졌을 때 자사주 매입을 해야 주주가치가 제고되지, 사상 최고 수준을 구가하고 있는 주가에서 자사주 매입을 하면 오히려 주주가치를 훼손할 수 있습니다.
에스엠은 지난 1월 공시했던 주주환원 정책(당기순이익의 최소 20%)에 대한 정정공시도 27일 내놓았는데요. 계획된 투자를 집행하고 순차입금(총차입금-현금)이 영업이익의 0.5~1배를 유지하는 범위에서 별도 당기순이익의 30%까지 주주환원을 하겠다는 내용입니다. 당기순이익의 30%는 하이브가 제시한 주주환원정책의 가이드라인입니다.

에스엠 이사회의 자사주 매입 결정과 주주환원정책 강화가 순수하게 주주 이익 제고 차원이었다고 믿기는 어렵습니다. 하필이면 이사회 결의가 하이브의 공개매수에 대한 청약 마감을 하루 앞두고 이루어졌기 때문이죠. 주가가 공개매수 가격인 12만원 이상을 유지하려는 의도가 있었다고 의심하는 것은 합리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에스엠 이사회가 발표한 새로운 주주환원정책을 문자 그대로 해석하면 '별도 당기순이익의 최소 30%'입니다. 기존의 정책 뿐 아니라 하이브가 제시한 계획보다도 강화된 것입니다. 일시적으로 순차입금이 영업이익의 1배를 넘더라도 당기순이익의 30%까지는 주주환원을 하겠다는 내용이거든요.
불과 한달 여 만에 기존에 발표한 주주환원정책을 수정한 것은 이례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바꾸더라도 3월 정기주주총회 결의 결과에 따라 바꾸는 것이 상식적이겠죠. 주주환원 정책이 주주총회에서 의결권 대결을 할 때 승패를 결정할 중요한 변수가 될 수 있기 때문에 하이브가 제시한 수준 이상으로 강화된 새로운 제안을 한 것이라고 해석하는 게 무리는 아닐 것입니다.
에스엠이 자사주 매입을 결정하고 주주환원정책을 강화하는 게 일반주주 입장에서 당연히 반길 일입니다. 하이브와의 경영권 분쟁이 발생해서 일반주주들이 얻게 된 혜택이라고 할 수 있죠. 양측이 일반주주를 자기 편으로 끌어들이기 위한 경쟁을 하면 할수록 혜택은 더 커질 것이라고 기대할 수 있습니다.
② 에스엠 경영진은 카카오를 새 주인으로 낙점해 두었던 것일까요.
얼마 전까지만 해도 경영권 분쟁의 당사자는 하이브(+이수만)와 에스엠의 현 경영진이었습니다.최대 관심인 주주총회 결과 역시 카카오와 사업제휴를 통한 에스엠의 홀로서기와 하이브와의 M&A를 통한 시너지 중에서 주주들이 어느 쪽을 선택할 것이냐가 관전 포인트였죠.
그러나 에스엠이 우선적 신주인수권을 카카오에 부여하는 계약이 공개되면서 완전히 새로운 국면에 돌입했습니다. 하이브는 불공정 계약이라며 법적 대응을 예고했고, 카카오는 '전략의 수정'을 선언했죠.
이수만씨와 하이브가 에스엠의 제3자(카카오) 배정 유상증자와 전환사채 발행에 대해 발행금지 가처분신청을 낸 것은 카카오의 목적이 '전략적 제휴' 목적이 아닌 에스엠의 '경영권 확보'라고 보기 때문입니다. 향후 발행할 신주와 전환사채 등 주식연계증권을 카카오가 우선적으로 인수할 수 있는 권리를 갖게 된다는 것이 그렇게 보고 있는 중요한 근거였던 것이죠.

카카오는 우선적 신주인수권이 전략적 제휴 관계를 약화시키지 않으려는 조항, 다시 말해 소수지분 투자자인 자신들의 지분 희석을 방어하기 위한 일반적인 조항이지, 에스엠 지분의 추가 매수를 노린 것은 아니라고 합니다. 하지만 하이브가 그 말을 믿어 줄 리 없죠.
카카오는 일반적인 조항이라고 하지만, 증권업계의 생각은 다를 겁니다. 재무제표를 읽는 사람들 역시 이 같은 조항을 과거에 본 기억이 없습니다. 무엇보다도 최대주주(이수만)가 따로 있는 상황에서 에스엠 경영진이 최대주주의 지분율 희석을 유도할 수 있는 계약을 카카오와 한 것은, 최대주주에게 적대적인 행위임을 부인할 수는 없습니다. 이수만씨가 지분을 매각하지 않더라도, 이수만씨를 견제하거나 장기적으로 최대주주를 카카오로 대체할 수 있는 길을 열어 둔 것이니까요. 에스엠 경영진은 이수만씨가 최대주주로서 경영에 개입할 수 있는 영향력을 확실하게 제거하고 싶었나 보다 의심할 수밖에 없습니다.
에스엠 경영진과 카카오의 주장대로 계약 당시에는 전략적 제휴라는 순수한 의도로 우선적 신주인수권을 부여했다고 해도, 앞으로도 그 의도가 변하지 않을 것이라는 보장이 없습니다. 예를 들어 하이브가 에스엠의 최대주주가 되고, 카카오는 소수지분을 보유한 전략적 제휴 관계로 남았을 경우, 하이브를 제3자로 하는 신주나 전환사채 발행에 카카오의 동의를 합니다. 카카오가 동의를 하지 않는다면 제3자를 통한 자본확충은 오로지 카카오를 통해서만 할 수 있게 되죠. 이게 과연 순수한 사업제휴의 관계이고, 주주 공통의 이익에 부합하는 것일까요.
만약 이달말 주주총회에서 선임될 에스엠 경영진이 카카오와 이해관계를 함께 하는 관계라면, 향후 카카오는 이사회를 움직여 제3자 배정 신주발행이나 전환사채 발행으로 지분율을 높여갈 기회를 얻게 됩니다. 결국에는 하이브를 넘어 최대주주에 오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되면 카카오를 제외한 모든 주주들의 지분율은 희석될 수밖에 없죠.
우선적 신주인수권의 존재는 카카오를 제3자로 한 신주 및 전환사채 발행금지 가처분소송에 중요한 쟁점으로 작용할 것입니다. 법원이 카카오의 지분 취득을 전략적 제휴를 위한 계약이 아니라 경영권 확보를 목적으로 하는 것이라고 판단할 여지가 그 전보다 높아졌다고 볼 수 있죠.
③ 하이브 vs. 카카오의 쩐(錢)의 전쟁, 장기전으로 갈까요.
카카오가 처음부터 에스엠 경영권을 목표로 했거나, 전략적 제휴를 원했을 뿐인데 의심을 받은 김에 전략을 수정해 에스엠 인수로 목표를 바꾸었다고 한다면 주주총회 전에 공개매수를 선언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카카오엔터는 제3자 배정 유상증자로 지난달 24일 8975억원의 현금이 생겼고 그 중 5770억원을 타법인 주식 등을 취득하는 데 쓸 수 있습니다. 조달한 자금을 반드시 사전 목적 대로 써야 하는 것은 아니니 최대 8975억원의 총알이 생겼다고 볼 수도 있죠.

하이브측이 제기한 가처분신청을 법원이 인용해 카카오의 신주 및 전환사채 인수가 불발된다고 해도 카카오가 '공격 앞으로'를 결정한다면 막대한 현금 동원력을 바탕으로 에스엠에 대한 인수에 나설 수도 있습니다. 이 경우 3월 주주총회에서 경영권 분쟁이 해소되지 않고 장기전으로 돌입할 수 밖에 없겠죠.
일각에서 얘기하는 것처럼 카카오가 자회사 카카오엔터를 앞세워 주당 14만원 선에서 공개매수에 나설 경우 5770억원으로 에스엠 주식 400만주 이상을 매입할 수 있고, 단숨에 하이브와 이수만씨가 보유한 430만주에 근접하게 됩니다.
이렇게 되면 하이브도 가만히 있을 수 없겠죠. 12만원으로 제시한 가격을 최소한 카카오가 제시한 수준 이상으로 다시 공개매수에 나설 가능성이 생깁니다. 만약 공개매수 경쟁이 3월 주총 전에 이루어진다면 주총장에서 치열한 표 대결이 펼쳐질 수 밖에 없을 겁니다. 주주총회에서 의결권이 있는 주주는 지난해 말 현재 주주명부 기준으로 이루어지니 하이브와 카카오는 의결권이 없지만, 양측의 공개매수 경쟁은 위임장 경쟁을 더욱 격화시킬 것이 자명합니다.
그렇지만 주총에서 어느 한편이 승리한다고 전쟁이 끝날까요. 이미 최대주주의 지위를 갖고 있고 에스엠 경영권을 정조준하고 있는 하이브가 물러날 리는 없고, 카카오가 처음 견지했던 전략적 제휴자로 물러나지 않는다면, 에스엠 경영권 분쟁은 장기전으로 돌입할 것 같습니다. 하이브와 카카오는 출혈이 불가피하겠지만, 에스엠 일반 주주들 입장에서는 나쁠 게 없겠죠. 역시 싸움은 붙여야 맛인가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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