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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프로젠그룹 김재섭 회장이 처음 설립한 회사는 초파리 연구를 위해 카이스트 동료 교수들과 설립한 제넥셀이었고, 2005년 7월 코스닥 상장사인 세인전자를 인수해 대표이사에 선임된 후 제넥셀세인이라고 상호를 변경하고, 주식교환을 통해 제넥셀을 제넥셀세인의 100% 자회사로 만들죠. 주식교환은 김재섭을 제넥셀세인의 최대주주로 만들어 줍니다.


이듬해인 2006년 2월 제넥셀세인은 당시 홍기방씨가 대표이사이던 에이프로젠과 다시 한번 주식교환 거래를 합니다. 에이프로젠은 항체공학적 기법을 이용해 신기술, 신소재, 신제품을 연구개발하는 회사였는데요. 에이프로젠 보통주 1주당 제넥셀세인 보통주 6.35주가 교부되면서 에이프로젠이 제넥셀세인의 100% 자회사가 되는 거래였습니다.



김재섭은 세인전자 지분을 인수할 때부터 에이프로젠과 주식교환을 성사시킬 때까지 굉장히 빠른 행보를 보여주는데요. 통상 다른 회사의 경영권 지분을 인수하거나, 주식교환을 통해 모자관계가 되는 기업결합이 수면 위에 드러나기까지는 상당한 준비기간이 필요하고, 무언가 중요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신호가 나오게 마련입니다.


김재섭이 지분을 인수하기 7개월 전인 2004년 12월, 세인전자는 300만 달러(한화 약 31.5억원) 규모의 해외신주인수권부사채 발행을 결정합니다. 표면이자율(쿠폰)이 6개월 리보(Libor)이고, 만기이자율이 6개월 리보에 4.5%를 가산하는 조건인 이 사채는 한누리투자증권의 주관으로 발행되어 홍콩에 있는 장부상 회사(SPC)가 인수합니다.


상당히 독특한 구조의 발행인데요. 장부상 회사는 이 채권을 기초자산으로 CBO(채권담보부증권)를 발행해 자금을 조달합니다. 발행시장 CBO(Primary CBO)라고 부르는 것으로 일종의 유동화사채(ABS)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참고로 지금은 신주인수권과 사채가 분리된 방식의 분리형 신주인수권부사채발행이 제한되지만, 당시에는 허용되고 있었습니다.


세인전자는 해외신주인수권부사채를 발행한 이유에 대해 '2005년 상반기 출시 예정인 복합측정기(혈압계+혈당계) 수주 물량의 대폭적인 증가가 예상된다'고 했습니다. 설비 확장을 통해 외주처리되는 공정을 자가화하고, 본사 사옥을 증축할 자금이 필요하다는 것이었죠. 향후 회사 매출이 빠르게 성장하는 바람직한 미래가 예상된다는 얘기잖아요. 그런데 최대주주는 경영권 지분이 매각을 추진하고 있었던 셈입니다.


세인전자의 신주인수권은 해외에서 75%, 국내에서 25%가 소화되었는데요. 신주인수권의 19%를 인수한 건 네델란드 투자은행 ABN암로의 런던지점이었고, 그 외 생소한 외국의 펀드(Piraruku fun)와 한국의 개인 등이었습니다.


ABN암로는 신주인수권 취득 당시 보유목적을 단순투자라고 신고합니다. 그런데 5개월 후인 2005년 5월 투자목적을 '경영참여'로 변경 신고합니다. 경영진 변경이나 정관변경, 나아가 임원 취임 등으로 직접 경영에 참여할 수 있다는 뜻을 밝힌 거죠. 김재섭이 세인전자 지분을 인수하기 2개월 전이니, 이때는 이미 지분 인수를 위한 과정이 진행되고 있었을 겁니다.


보유목적을 경영참여로 바꾼 ABN암로는 돌연 신주인수권의 약 절반을 라이온하트인베스트먼트라는 다른 투자자에게 양도하고, 한달 뒤 김재섭 등이 세인전자의 지분을 인수하게 되죠. 이 과정에서 세인전자의 주가는 급등합니다. 그러자 ABN암로와 라이온하트인베스트먼트는 신주인수권을 행사해 보통주를 수령한 후 장내에 내다 팝니다.


ABN암로가 신주인수권을 행사해 취득하게 될 세인전자 1주당 취득 단가는 115원에 불과했습니다. ABN암로와 라이온하트가 장내 매도한 보통주의 가격은 3179원~4019원이었습니다. 이 일이 있은 직후 세인전자는 주주총회를 열어 제넥셀과 주식교환을 결정했고, 김재섭은 대표이사에 취임합니다.


지금은 에이프로젠이라는 사명을 쓰는 케아아이씨는 당시 제철 플랜트업체로, 코스피 상장사였습니다. 당시 비상장사였던 에이프로젠과는 아무 관계가 없는 회사로, 에이스이공이공 주식회사가 최대주주였고 베스트투자자문에서 운용하는 베스트사모M&A3호라는 투자조합이 주요 주주였죠.



우연의 일치였을까요? 케이아이씨는 세인전자와 거의 같은 시기에 400만 달러(한화 42억원 상당)의 해외신주인수권부사채 발행을 결정합니다. 발행조건은 표면이자율(쿠폰) 6개월 리보금리, 만기이자율 6개월 리보에 4.5%를 가산하는 것이었습니다. 세인전자와 똑같은 조건이죠.


두 회사 신주인수권부사채의 대표주관사도 한누리투자증권으로 같았습니다. 납입일도 12월 14일도 같은 날이었고, 신주인수권 행사시 적용되는 환율도 1044.9원으로 같았죠. 케아이이씨가 신주인수권부사채를 발행한 직후 한 외국 투자은행이 금융감독원에 대량보유신고를 하는데요. 다름 아닌 ABN암로였습니다. 케아이이씨가 발행한 신주인수권의 19%를 취득했는데 이 역시 세인전자 때와 같았습니다.


ABN암로는 케이아이씨의 신주인수권도 약 절반을 라이온하트에 장외 매도합니다. 세인전자 신주인수권을 매도한 2005년 6월 7일이었습니다. 이쯤되면 우연이라고 보기 어렵죠. 세인전자와 케이아이씨는 처음부터 같은 구조로 해외 신주인수권부사채 발행을 기획했고, 사채는 아마도 같은 장부상 회사에 인수되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신주인수권의 인수자도 ABN암로 등으로 미리 정해져 있었을 테고요. 그리고 그 배경에는 김재섭 회장이 있었는지도 모르죠.


두 회사의 행보는 이후에도 비슷하게 이어집니다. 제넥셀세인이 해외 전환사채를 발행하자, 케이아이씨는 국내에서 신주인수권부사채를 발행하죠. 케이아이씨의 신주인수권부사채는 수급기업투자펀드제이차유동화전문회사라는 장부상회사에 인수되고, 이 장부상 회사가 발행하는 프라이머리CBO의 기초자산이 됩니다.


제넥셀세인은 2005년 11월 비상장사인 에이프로젠과 주식교환 거래를 추진합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에이프로젠 1주당 제넥셀세인 6.35주가 교환되어, 에이프로젠이 제넥셀세인의 100% 자회사가 되는 거래였죠. 이로써 제넥셀세인은 제넥셀과 에이프로젠 두 100% 자회사를 거느리게 됩니다. 김재섭이 세인전자 지분을 인수한 지 4개월 만이고, 두 회사가 해외 전환사채와 국내 신주인수권부사채 발행을 완료한 직후였습니다.


제철 플랜트 회사인 케이아이씨가 에이프로젠이 되는 건 상당한 시간이 흐른 뒤였습니다. 2013년에 나라케이아이씨로 사명을 변경했고, 2017년말에 비상장 바이오시밀러 전문기업인 에이프로젠이 나라케이아이씨를 인수하면서 유가증권시장 우회상장을 시도하니까, 10년도 더 지난 후의 일이죠.


이미 2004년말에 제넥셀세인과 케이아이씨에서 똑같은 구조의 해외신주인수권부사채가 같은 증권사를 대표주관사로 발행되고, 같은 투자자에 의해 신주인수권이 인수되는 우연의 일치가 발생한 것은 어쩌면 10년 뒤에 생길 일의 전조가 아니었을까요?


나라케이아이씨는 에이프로젠에 인수되면서 에이프로젠케이아이씨가 되었다가, 2021년 에이프로젠메디신으로 다시 이름을 바꾸었고, 2022년 비상장사였던 에이프로젠과 합병하면서 다시 상호를 변경해 지금의 에이프로젠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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