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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이노베이션에게 SK아이이테코놀로지는 소규모 합병의 대상이라, 주주총회를 거치지 않고 이사회 결의만으로 합병결정이 이루어졌습니다. 반대 주주에 대한 주식매수청구권도 부여되지 않지요. 그러나 SK아이이테크놀로지에게는 주주총회의 특별결의에 따른 승인이 필요한 합병이고, 반대 주주에 대해서는 주식매수청구권이 부여됩니다.
합병하는 회사가 상장사라면 자본시장법에 따라서 최근의 주가를 기준으로 합병가액이 결정되고 그에 따라 합병비율을 정하면 법적인 거래조건을 충족하게 됩니다. 지난 8월 24일을 기산일로 기준주가(1개월, 1주일, 최근일 가중평균 주가)에 의해 정해진 합병가액은 SK이노베이션 12만 5,862원, SK아이이테크놀로지 1만 4,783원이고, 그에 따른 합병비율은 SK아이이테크놀로지 1주당 SK이노베이션 0.1174540주로 산출되었습니다.
그런데 SK이노베이션과 SK아이이테크놀로지는 모회사와 자회사의 관계이고, 과거 SK이노베이션에서 물적분할 후 상장한 관계라는 특수성이 있지요. 그로 인해 발생하는 이해상충의 문제가 있습니다. 형식적으로는 절차적 정당성이 인정된다고 해도 실질적인 정당성까지 확보되는 것은 아닙니다.
증권신고서에 따르면 SK아이이테코놀로지는 자체적인 능력으로 자금조달이 쉽지 않고, 따라서 차입금을 상환하지 못해 디폴트에 빠질 위험마저 있는 상황입니다. 전기차 캐즘이 언제 끝날 지 모르는 일이고, 업황이 살아난다고 해도 중국업체들의 거센 저가 물량공세를 이겨내고 장기 생존 가능성을 보장받을 수 있을 지 확신할 수 없습니다. SK이노베이션 일반주주 입장에서는 엄연히 남의 회사인데, 크게 할인된 가격이라면 모를까 시장가격대로 합병하는 게 달갑지는 않을 겁니다. 그런데 주주총회에서 의결권을 행사하지도 못하고, 주식매수청구권도 행사하지 못하게 되었죠.
SK아이이테크놀로지 주주의 입장은 또 다르죠. SK아이이테크놀로지는 2021년 주당 10만 5,000원으로 코스피 시장에 입성했습니다. SK아이이테크놀로지 주주들이 SK이노베이션으로부터 주당 10만원 이상 주고 샀다는 말이죠. 그런데 지금은 주가가 공모가 대비 90% 가까이 폭락한 상황에서 SK이노베이션이 다시 흡수하겠다는 것이니까, ‘고가에 팔고 헐값에 되사는’ 형국으로 보일 수밖에 없습니다. 소액주주 가치의 훼손이라는 아주 민감한 이슈입니다.
SK그룹은 이번 합병에 대해 외부 회계법인의 평가를 받았습니다. 상장사 간 합병에서 기준주가 방식을 적용할 경우 외부평가는 법적인 의무가 아닙니다. 비상장사와 합병할 때 또는 시가를 적용하지 않고 자산가치에 따라 합병가액을 결정할 때 의무사항이 됩니다. 이번 합병에서 회계법인의 평가를 받은 것은 법적인 의무이어서가 아니라 상법상 이사의 면책 및 공정성을 소명하기 위한 자발적인 평가였던 셈이죠.
회계법인이 현재가치할인법(DCF법)에 따라 평가한 합병비율의 범위는 기준주가에 따른 합병비율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외부 전문가의 평가에 의하더라도 합병비율이 불공정하지 않다는 객관성을 확보한 것이죠. 게다가 증권신고서에는 법무법인(김앤장·율촌)의 법률의견까지 들어 있습니다. 의견서에는 외부평가기관의 평가를 받은 것이 법무부 가이드라인의 취지 및 주주 충실의무를 선제적으로 반영한 것이라며 ‘거래조건의 공정성’을 보강한 것이라고 적혀 있습니다. 또한 유상증자 등 다른 구제적 수단이 아닌 흡수합병이 ‘가장 효과적이고 실질적인 방안’이라는 평가도 담고 있죠.
SK그룹이 기준주가에 따라 합병을 추진하면서도 외부평가기관의 평가를 받고, 법률의견서까지 첨부한 것은 2025년 상법 개정과 법무부의 가이드라인을 의식한 것으로 보입니다. 개정상법은 이사의 전체 주주에 대한 이익 보호와 공평 대우 의무를 규정하고 있죠. 자본시장법에 따라 기준주가 방식으로 합병을 했더라도 소액주주의 가치가 훼손됐다면 소송 리스크에서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또한 법무부 가이드라인은 법적 구속력을 갖지는 않지만 계열사 간 합병 등 이해상충 가능성이 있는 거래에서 ① 이해관계 없는 독립이사 등으로 구성된 특별위원회 설치, ② 법률ㆍ재무 등 독립적인 외부전문가의 검토, ③ 주주에 대한 충실한 정보 제공 등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서 SK이노베이션과 SK아이이테크놀로지는 특별위원회를 설치하고, 회계법인을 고용해 외부평가를 실시했던 것이죠.
그런데도 금융감독원은 정정신고서를 요구했습니다. 증권신고서의 형식이 잘못되었거나, 중요사항을 누락 또는 거짓 기재했기 때문이라고 보기는 어렵고 ‘투자자의 합리적인 투자판단을 저해하거나 투자자에게 중대한 오해를 일으킬 수 있는 경우’에 해당된다고 보았을 것입니다.
두산밥캣 사태 이후 금융감독원의 심사 기조는 상당히 달라졌습니다. 법령과 형식 요건을 준수했는가를 넘어 "주주가 합리적으로 판단할 수 있을 만큼 배경과 이해상충, 대안을 투명하게 밝혔는가"로 전환되었습니다. 금융감독원이 거슬린 대목은 언론들이 지적한 것들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우선 일반주주들에 대한 사전 설명이나 설득 과정이 없었습니다. 회사는 8월 25일 이사회 결의 직후 증권신고서를 제출했습니다. 일반주주를 대상으로 한 주주간담회는 9월 14일로 한참 뒤로 잡았죠. 일반주주와의 실질적인 소통이 없었고 주주간담회는 사후 약방문과 같았습니다.

더 직접적인 것은 회계법인이 추정한 SK아이이테크놀로지의 향후 실적 전망입니다. 당장 내년부터 매출이 늘고 적자가 감소해 2029년에는 영업이익 흑자전망을 예상했죠. 그 이후로는 매출과 영업이익이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것으로 내다봤습니다.
3년 후 턴어라운드할 것이라는 전망과 주가가 공모가 대비 90% 가까이 폭락한 시점에서 ‘합병 이외에 답이 없다’는 논리는 뭔가 어울리지 않습니다. 유상증자, 포괄적 주식교환(SK이노베이션의 100% 자회사가 되는 것) 등 다각도로 검토한 결과 흡수합병이 가장 좋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했는데, 그에 대한 설득력 있는 근거가 신고서에 분명하게 적혀 있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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