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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바이오에피스는 2012년 2월 삼성바이오로직스와 미국 바이오제약사 바이오젠 아이덱(이하 바이오젠)이 공동 설립한 합작회사입니다. 합작사라고 하지만 대부분 자본은 삼성이 댔습니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자금과 인프라를, 바이오젠은 바이오시밀러 개발에 필요한 기술력과 글로벌 경험을 제공하는 방식의 합작이었거든요.
삼성바이오에피스는 1647억원의 납입자본으로 설립된 후 그해 바로 유상증자를 실시해 납입자본이 2400억원이 되었는데요. 그중 삼성바이오로직스가 납입한 자본이 2040억원에 달했습니다. 그 뒤로도 유상증자는 2017년까지 매년 이루어졌습니다. 그 규모가 2013년 약 900억원, 2014년 약 1807억원, 2015년 약 1235억원, 2016년 약 2000억원, 2017년 약 2000억원 등 5년간 7941억원, 설립 첫해를 포함하면 총 1조 342억원에 달합니다. 삼성바이오로직스가 9784억원을 출자했고, 바이오젠은 2012년 360억원, 2013년 135억원, 2015년 약 63억원 등 총 558억원을 투자했습니다.

바이오젠은 삼성바이오에피스 설립 당시부터 지분 50%-1주까지 매입할 수 있는 콜옵션을 보유하고 있었지만, 삼성바이오에피스는 2014년말까지 삼성바이오로직스의 종속회사로 분류되었습니다. 분식회계 논란과 소송을 통해 널리 알려진 것처럼 삼성바이오로직스가 대부분 지분을 보유하고 있었고 이사회 5명 중 4명을 삼성측에서 선임할 수 있었죠. 또한 바이오젠이 보유한 콜옵션에 대해 삼성바이오로직스는 그 존재를 사업보고서에 공시하지 않았고, 회계상 부채로도 반영하지 않았습니다. 내부적으로 콜옵션의 존재를 은폐하려는 시도가 있었다는 정황도 검찰 수사결과 드러났습니다. 콜옵션 관련 자료를 삭제하라는 지시가 이루어졌고, 2015년 9월 ‘재경팀 주간업무현황’ 문건에는 ‘콜옵션 관련 부채를 계상할 경우 완전자본잠식이 된다’는 내용이 있었죠. 어쨌거나 삼성바이오에피스는 2014년말까지 삼성바이오로직스의 종속회사였습니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삼성바이오에피스 지분가치를 원가법으로 처리해, 2014년말 현재 4612억원으로 계상했습니다.
2015년 상황이 갑자기 바뀌었습니다. 바이오젠이 보유한 콜옵션이 깊은 내가격(옵션 행사로 이익이 발생하는 구간)에 있고, 콜옵션이 실제로 행사되면 지배력을 잃게 된다며 삼성바이오로직스가 삼성바이오에피스를 종속회사가 아닌 관계회사로 재분류한 겁니다. 이때 처음으로 삼성바이오에피스에 대한 기업가치 평가가 이루어지죠.
삼성바이오로직스가 보유한 삼성바이오에피스 91.2%의 지분의 가치는 4조8086억원으로 평가되었습니다. 100% 지분으로 환산하면 주식가치를 5조2700억원 정도로 평가받은 겁니다. 그해 삼성바이오에피스의 매출액은 고작 239억원(연결 기준)이었고 1666억원의 순손실를 기록했습니다. 삼성바이오로직스가 출자한 자본이 5784억원에 달했지만 삼성바이오에피스의 순자산은 2902억원밖에 되지 않았죠.

대체 어떻게 5조원 이상의 가치가 매겨졌을까요? 당시 기업가치는 위험조정 순현재가치(NPV)로 평가되었는데, 미래 현금흐름을 추정한 뒤에 그 현재가치를 구하는 방식입니다. 결국 삼성바이오에피스가 미래에 얼마나 많은 돈을 버느냐를 여러가지 가정하에 추정하고 그 가치를 측정한 셈인데요. 당시 외부평가기관들은 삼성바이오에피스의 매출 성장률을 최고 105.3%, 영업이익률을 최고 57.4%로 추정했습니다.
그 평가가 적정했느냐고요? 삼성바이오에피스의 매출액은 이듬해인 2016년 1475억원으로 5배 이상 늘었고, 2017년에도 100% 이상 증가했죠. 2019년에도 다시 100% 이상 증가했습니다. 하지만 영업이익은 2018년까지 적자를 이어갔고, 2019년부터는 20% 이상의 영업이익률을 기록 중입니다. 영업활동 현금흐름은 2020년까지 순유출 행진을 이어가다가 2021년부터 순유입으로 돌아섰습니다.
통상적으로 기업가치를 평가할 때는 향후 5년간의 현금흐름을 추정합니다. 가끔 향후 10년까지도 추정을 하는 경우가 있지만, 매우 이례적입니다. 먼 미래일수록 추정 결과에 대한 신뢰는 떨어질 수밖에 없죠. 그리고 여기서 현금흐름은 영업활동 현금흐름에서 경상적인 자본적지출을 차감한 잉여현금흐름을 의미합니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영업활동 현금흐름이 2020년까지 적자였으니, 잉여현금흐름은 더 말할 필요가 없죠.
금융당국과 일부 회계전문가들은 ‘과도하게 낙관적인 평가’라고 지적했습니다. 특히 이때가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이 합병하기 직전이어서 이재용 부회장의 승계 작업과 관련된 회계조작이라는 의혹이 제기되었죠. 제일모직은 삼성바이오로직스의 지분 45.65%를 보유하고 있었고, 삼성바이오에피스의 지분가치가 높게 평가되면 제일모직이 보유한 삼성바이오로직스의 지분가치도 높아져, 결국 제일모직의 기업가치 상승으로 이어지죠. 삼성물산과 합병비율에서 이재용 부회장 지분이 높은 제일모직이 우위를 점하게 되는 겁니다.

두 회사의 합병비율은 삼성물산 1주당 제일모직 0.35주였습니다. 삼성물산 주주에게는 불리했고, 제일모직의 지분 23.2%를 보유한 이재용 회장에게는 유리했죠. 금융당국과 검찰은 삼성바이오로직스의 회계변경에 대해 합병비율을 유리하게 만들기 위한 고의적 회계조작이라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2024년 행정소송 1심에서 법원은 회계처리 변경이 삼성바이오로직스의 자본잠식을 회피하기 위한 목적이었고,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과 연관성이 있다고 인정하면서도 “고의적인 분식회계로 단정짓기는 어렵다”고 판단했습니다.
바이오젠이 보유한 콜옵션은 삼성바이오에피스의 지분을 50%-1주까지 매입할 수 있는 권리였습니다. 콜옵션을 행사한다고 해도 과반의 의결권을 가질 수 없었죠. 그런데 왜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콜옵션이 행사되면 삼성바이오에피스에 대한 지배력을 상실한다고 주장한 걸까요?
그건 지배력에 대한 판단을 단순한 지분율이 아니라 ‘실질적 지배력’에 따른다는 IFRS 규정에 근거한 주장이었습니다. 콜옵션이 행사되면 삼성바이오에피스의 이사회는 삼성측과 바이오젠측이 각각 3명씩 동수로 구성되고, 중요한 경영의사결정에서 반드시 양측의 동의가 필요해지는 공동경영 체제가 된다는 것이죠. 바이오젠의 동의 없이는 삼성 단독으로 전략적인 의사결정을 할 수 없으니 ‘실질적 지배력’이 상실된다는 논리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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