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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프로젠 김재섭 회장은 초파리 연구로 우리나라 바이오 신약 개발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기대를 모았습니다. 그가 KAIST 동료 교수들과 설립한 제넥셀이 코스닥 상장사 세인전자와 기업결합을 했을 때 여의도 증권가의 관심을 모았던 것도 그 때문이었죠. 하지만 그의 재능은 오히려 신약개발이 아닌 자본시장에서의 자금조달과 M&A, 이를 통한 기업의 지배에서 더 빛을 발했습니다.


세인전자의 경영권을 인수한 김재섭 등은 2005년 10월 주식교환으로 제넥셀을 완전 자회사로 편입하고, 세인전자의 사명을 제넥셀세인으로 바꿉니다. 주식교환으로 김재섭은 최대주주에 등극했고, 대표이사에 선임되면서 곧바로 대규모 자금조달과 비상장사 ㈜에이프로젠 인수에 나섭니다.



제넥셀세인은 448억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추진했습니다. 임상실험 등에 대부분 조달자금을 쓰기로 했죠. 혈압계 매출이 100%이던 제넥셀세인이 바이오신약개발회사로 변모하는 순간이었습니다. 제넥셀세인은 자회사 제넥셀로부터 형질전환 초파리 기술을 도입하고 매출액의 10%를 제넥셀에게 지급하는 계약을 체결했고, 그해 11월에는 바이오의약업체인 에이프로젠과 주식교환 계약을 체결했습니다. 제넥셀 주식교환(10월), 에이프로젠와 주식교환 계약(11월), 유상증자 결정(12월)이 일사천리로 진행되고 있었죠.


에이프로젠은 항체공학적 기법을 이용해 신기술, 신소재, 신제품을 연구개발하는 회사로 2000년 설립됐습니다. 홍효정이 최대주주, 홍기방이 대표이사를 맡고 있었습니다. 당시 에이프로젠의 자본금은 15억원, 두 사람의 지분율 합계는 약 49.4%였습니다. 에이프로젠의 주식가치는 주당 4만1633원씩 약 125억원으로 평가되었습니다.


에이프로젠의 주식가치는 자산가치와 수익가치를 각각 40%, 60%로 가중평균하는 본질가치법으로 평가했는데요. 자산가치는 액면가에 미치지 못하는 4633원에 불과했어요. 그런데 2005년에 주당 약 1억3200만원이던 추정이익이 2006년에 약 27억원으로 증가할 것이라고 추정하면서 1주당 수익가치를 8만3626원으로 평가합니다.


에이프로젠은 한국생명공학연구원의 항체공학연구실장인 홍효정 박사가 설립했습니다. 대표이사인 홍기방은 홍내과의원 원장이었고요. 사내이사 중에는 KAIST 생명과학과 교수인 이균민과 고규영이 있었습니다. 이균민 교수는 동물세포공학의 세계적 전문가로 평가받고 있었고, 고규영 교수는 암 전이연구분야에서 명성이 높았다고 합니다. 두 사람은 제넥셀세인의 경영진인 김재섭, 정종경의 동료 교수였죠.


에이프로젠은 창립이래 매출이 한 차례도 2억원을 넘겨 본 적이 없었고, 2005년에도 9월말까지 약 1억8400만원대의 매출에 약 3900만원의 이익을 기록했습니다. 그런데 2006년에는 매출액이 47억5000만원, 당기순이익이 약 27억원으로 늘어날 것이라고 예상하고 기업가치를 구합니다. 외부평가를 맡은 회계법인은 회사가 제시한 예상 매출액과 라이선스 수익 등이 적절하다는 가정하에 평가했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항체공학기술용역 등 에이프로젠이 협의 중인 각종 계약이 실제 매출로 이어질 것이라고 본 것이죠.


KAIST 교수가 설립한 제넥셀과 에이프로젠을 잇따라 인수하면서 제넥셀 주가는 급등했습니다. 1월초 580원이었던 것이 12월에는 1만1000원까지 상승했습니다. 당연히 주식교환에 반대하는 주주가 거의 없었습니다. 해외전환사채를 보유하고 있던 오지 매니지먼트(OZ Management)와 같은 의문의 투자자들은 주당 3547원에 보통주로 전환해 최고 300% 안팎의 수익을 냈습니다.


주가 급등을 이용해 김재섭의 특수관계인이 차명주식을 처분하는 일도 있었습니다. 제넥셀의 재무담당 이사로 있던 김정출(현 에이프로젠바이오로직스 대표이사)이 차명으로 소유하던 제넥셀 주식을 제넥셀세인 주식으로 교환한 뒤 전량을 장내 매각해 32억원을 회수했습니다. 이 주식은 주식교환 당시 보호예수 대상에서 누락되어 있었습니다.


제넥셀세인은 이때 700만주의 신주를 주주배정 후 일반공모 방식으로 발행해 448억원의 자금을 조달하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공시 과정에서 오류가 발생해 계획이 철회되었고 마침 황우석 교수의 줄기세포 사건이 터지면서 주가가 4000원대로 급락하기도 했습니다. 결국 유상증자는 에이프로젠 인수가 완료된 후인 2006년 3월에 약 252억원으로 규모를 줄여 이루어졌습니다.


제넥셀과 에이프로젠의 실적을 포함한 2006년 제넥셀세인의 연결재무제표가 이듬해 3월 공개되었는데요. 2005년의 92억원 보다는 증가한 109억원의 매출을 기록합니다. 그런데 바이오의약사업의 매출은 고작 2억4600만원이었습니다. 제넥셀의 개별 매출은 약 2억1000만원, 에이프로젠의 개별 매출은 약 1억2000만원이었습니다. 주식교환 당시 2006년 예상매출액이 제넥셀은 99억원, 에이프로젠은 47억5000만원이었는데 말이죠. 제넥셀과 에이프로젠이 글로벌 제약사들과 계약조건을 협의 중이라던 신약관련 매출은 감감무소식이었습니다.



세인전자가 본체인 제넥셀세인의 의료기기사업의 매출은 2006년 106억원을 정점으로 57억원(2007년), 37억원(2008년), 24억원(2009년)으로 매년 급감합니다. 제넥셀세인의 주가를 한껏 끌어올렸던 바이오의약사업은 2007년 매출 0원, 2008년 3900만원, 2009년 1억1800만원의 매출을 올리는데 그쳤습니다. 주식교환 당시 장밋빛 전망은 한낱 신기루에 불과했습니다.


제넥셀세인의 최대주주인 김재섭과 그의 배우자 박미령은 2009년 5월 경영권 지분을 약 220억원에 코스피200종목 중 하나였던 한국기술산업에 양도합니다. 그것은 사실상 가라앉고 있는 배에서의 탈출이었습니다. 제넥셀세인은 이듬해 감사의견 거절로 모회사와 함께 동반 상장폐지되고 맙니다. 외부감사인의 감사결과에 따르면, 제넥셀세인은 적절한 절차를 거치지 않은 대여금과 선급금이 각각 85억원과 32억원에 달했고, 회계관리는 부실했으며, 내부통제제도는 자금거래의 실질을 파악할 수 없을 정도로 극히 취약했습니다.


2009년말 현재 제넥셀세인의 누적결손금은 896억원에 달해 자본잠식률이 85%에 달했습니다. 신주인수권부사채가 조기상환청구를 했지만 상환을 하지 못할 정도로 자금사정이 악화되어 있었습니다. 모회사인 한국기술산업도 비슷한 상황이었습니다. 대표이사이자 최대주주인 이문일은 적절한 절차를 거치지 않고 업무 외적으로 회사의 수표를 반출 및 반입하거나 자회사 자금을 사용했죠. 한국기술산업의 자본잠식률은 47%에 달했고, 신주인수권부 사채권자의 조기상환청구에 응하지 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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