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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감독원이 정정명령 및 정정신고서 제출을 요구한 지 두달이 다 되어가지만 SK이노베이션과 SK아이이테크놀로지은 합병과 관련해 아무런 조치도 내놓지 않고 있습니다. 3개월 이내에 정정신고서를 내야 하니 이제 약 한달이 남았습니다. 기한을 넘기면 신고서는 철회된 것으로 간주됩니다.
SK그룹은 신중을 기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두산그룹의 두산밥캣-두산로보틱스 합병이 금융감독원의 잇단 제동으로 결국 철회된 선례를 반면교사로 삼을 것입니다. 합병가액 산출이 타당했는지, 합병을 추진해야 할 불가피한 경영상 이유가 무엇인지, 소액주주 보호 및 반대 주주에 대한 설득 방안도 보다 촘촘히 보강해야 할 것입니다.
정정신고서가 금융감독원으로부터 수용된다고 해도 주주들의 충분한 동의를 얻어낼 지는 미지수입니다. SK아이이테크놀로지 주주들의 주식매수청구권 행사금액이 3,500억원을 초과하거나, SK이노베이션 발행주식의 20% 이상 주주의 반대로 소규모 합병 방식이 아니라 정식 주주총회를 열게 될 경우 SK이노베이션 주주들의 주식매수청구권 행사금액이 6,000억원을 초과하면 합병은 무산됩니다.
일반주주의 입장에서는 SK이노베이션측이든, SK아이이테크놀로지측이든 합병이 쌍수를 들어 환영할 일은 아닐 것입니다. SK이노베이션측에서는 ‘왜 자회사 부실을 우리가 책임져야 하느나’라는 불만이 생길 수 있고, SK아이이테크놀로지측에서는 이미 실질 기업가치 대비 헐값에 강제청산 당하는 구조라며 합병에 반발해 주주 연대를 결성하는 등의 집단 행동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SK아이이테크놀로지 주주에게 제시된 매수가격은 1만 4,620원이니, 약 2,394만 주가 매수청구권을 행사하면 합병은 물건너 갑니다. SK이노베이션과 특수관계자의 지분율(53.35%)을 감안하면 주주총회 특별결의는 통과될 가능성이 높으니, 결국 반대주주의 매수청구권이 3,500억원을 넘는지가 관건인데, 일반주주 보유주식의 약 63%를 넘으면 합병이 무산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일반주주 입장에서는 현재 주가 수준에서 매수청구권을 행사할 경제적 유인이 없습니다. 매수청구권 행사가격이 역사적 저점 수준으로 현재 주가(10월 23일 1만 5,810원)보다 낮습니다. 주가가 행사가격 아래로 하락하지 않는다면, 소액주주들은 물리력 부족으로 주총에서 합병을 저지하기도 어렵고, 매수청구권마저 행사할 수 없는 당황스러운 입장에 놓이게 됩니다.
SK이노베이션이 SK아이이테크놀로지와의 합병을 소규모합병으로 진행하려면, 반대의사를 표명하는 주주가 20% 미만이어야 합니다. 이 경우 합병은 이사회 승인 결의만으로 확정되고. SK이노베이션 주주에게는 매수청구권이 주어지지 않습니다. 반대 주주가 20% 이상이 되면 소규모 합병 진행은 불가능하고, 임시주주총회(특별결의)를 열어 승인을 얻어야 하고, SK이노베이션 주주에게도 매수청구권이 부여됩니다. SK이노베이션 역시 최대주주인 SK㈜와 특수관계자 지분이 52.09%에 달합니다. 6~7% 지분을 보유한 국민연금 등 기관투자가들이 나서준다면 모를까 임시주주총회에서 합병을 부결시키기는 어렵습니다.
그런데 합병과 관련해 묘한 딜레마가 하나 있습니다. SK이노베이션이 SK아이이테크놀로지 주식에 대해 투자자들과 체결한 주가수익스왑(PRS)입니다. 2025년 7얼 SK아이이테크놀로지는 설비투자 및 운영자금 마련을 위해 3,000억원 규모의 제3자배정 유상증자를 단행했고, 엠에스파워제일차㈜, 퓨처스파크제일차㈜, 블루노블레스제일차㈜ 등 재무적 투자자들이 인수했습니다.

엠에스파워제일차 등 재무적 투자자들은 증권사가 설립해 준 장부상회사(SPC)이고, 인수한 주식을 담보로 유동화증권(ABSTB)을 발행했습니다. 뒤에 증권사가 있는 셈이죠. 그리고 SK이노베이션은 이 장부상 회사들과 주가수익스왑 계약을 체결했죠. 계약 만기나 중도 매각 시점에 발생한 매각차익이나 매각차손, 그리고 배당 등의 수익이 SK이노베이션에 귀속되고, 장부상 회사들은 수수료(PRS프리미엄)를 얻게 되죠.
장부상 회사들이 인수한 SK아이이테크놀로지 신주는 총 1,048만 9,508주로 지분율로 따지만 12.83%에 이릅니다. 이 주식들이 매수청구권을 행사한다면 이사회가 정한 매수청구가액 한도 3,500억원을 넘어설 가능성이 높아지겠지만, 그럴 리는 없을 겁니다.
장부상 회사들이 SK아이이테크놀로지 신주를 인수한 가격이 2만 8,600원입니다. 이미 1,300억원 가량의 평가손실이 발생한 상황이죠. 장부상 회사들은 어차피 수수료만 받으면 되므로 합병이 되든 안되든 중요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만약 이 주식들이 매수청구되면 SK이노베이션과 SK아이이테크놀로지는 주당 1만 4,620원이 아니라 PRS 계약에 따라 신주 인수원금인 3,000억원을 고스란히 돌려주어야 할 테니까요.
그런데 SK이노베이션이 SK아이이테크놀로지를 합병하게 되면, 장부상 회사들이 보유한 주식은 합병비율(1:0.1174540)에 따라 약 123만 여주의 SK이노베이션 주식으로 교환이 됩니다. 결과적으로 SK이노베이션은 PRS계약으로 자기주식을 유동화한 셈이 돼 버리는 거죠.
상장사가 자기회사 주식을 기초자산으로 PRS 같은 장외파생상품 계약을 하거나 유동화하는 것이 자본시장법상 명확하게 금지되어 있지는 않습니다. 전례가 아주 없는 것도 아니고요. 하지만 지배구조 측면이나 상법상 자기주식 취득 규제의 측면에서는 매우 민감한 쟁점에 노출될 수 있습니다.
차액정산형 PRS는 원칙적으로 주식 소유권이 장부상 회사에 있으니 상법상 자기주식 직접 취득에는 해당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실질적으로 원금을 보장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로 자기주식 취득과 동일한 경제적 효과를 낸다면 우회적인 자기주식 취득이 아니냐는 논란이 생길 수 있습니다.
PRS 계약구조에서 장부상 회사는 SK이노베이션 주식으로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습니다. 십중팔구 경영권을 가진 최대주주에 우호적인 방향으로 의결권 행사가 되겠죠. 회사 돈으로 손실을 보전해 주는 장부상 회사가 일반주주 지분을 희석시키고, 이사의 주주에 대한 충실의무를 위반할 수 있다는 리스크에 노출될 수 있습니다.
합병이 이루어지기 전에는 SK아이이테크놀로지 주가에 따라 파생상품 손실이 발생하지만, 합병이 이루어지고 주식교환이 되면, SK이노베이션 주가에 따라 파생상품 손익이 결정되게 됩니다. 이미 상당한 평가손실이 발생한 상황이므로, 합병 후 SK이노베이션 주가가 오르지 않는다면, SK이노베이션은 계약 만기 시점인 2028년 8월 막대한 현금 정산 손실을 피할 수 없습니다. 합병 후 SK이노베이션은 자사 주가 등락에 따른 현금 유출 리스크를 남겨 놓게 되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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