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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스플레이산업은 여전히 LCD의 시대입니다. LG와 삼성이 OLED니 QLED니 하며 싸움을 벌이고 있지만, 그건 차세대 주도권을 쥐기 위한 다툼이라고 봐야 합니다. 그러나 LCD가 CRT를 깔끔하게 패퇴시킨 것처럼 LCD가 쉽게 주인공의 자리를 OLED에 내줄 것 같지는 않습니다. OLED는 아직 번인 현상이라는 치명적인 약점을 극복하지 못하고 있고, OLED의 장점은 LCD 기술의 진보로 어느 정도 커버가 가능해 보이니까요. 삼성의 QLED(사실은 QD-LCD)가 바로 LCD기술로도 OLED와 비슷한 화면을 보여줄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는 사례라고 볼 수 있습니다.



디스플레이 시장의 구도는 대형 LCD가 중심에 있습니다. 소형 LCD를 매출에서 압도합니다. OLED는 중소형이 빠르게 성장할 것으로 전망됩니다. 대형 OLED가 LCD를 대체하는 속도는 상대적으로 느릴 것으로 예상되고 있습니다.


정부를 등에 업은 중국 업체들의 대대적인 투자는 대형 LCD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그 시장이 가장 크고, 그 시장을 잡아야 선두 업체가 되니까 그러겠죠. 그리고 지금까지 대형 LCD 시장을 이끌던 업체가 다름 아닌 LG디스플레이 입니다.



LG디스플레이는 사업보고서에 대형 패널 시장에서 점유율을 공시합니다. 2016년 29.4%였던 점유율이 서서히 내려와서 지금은 28.4%까지 하락했습니다. 그렇게 크게 떨어지지는 않았죠? 대형 LCD 수요가 가장 많은 곳은 대형 TV인데요. 그 시장에서 점유율은 오히려 2016년 28.2%에서 29.4%로 올라갔습니다. 자체 기준에 의한 점유율이니 그대로 믿어줘도 될지는 다소 의문입니다만, 상당히 의외의 결과입니다. 중국시장의 폭발적인 수요로 급성장한 것이 대형 TV의 디스플레이 수요라면, 최근 중국 업체의 공격적인 투자로 공급과잉이 가장 심화된 곳도 대형 TV용 디스플레이 일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점유율만큼은 잘 버티고 있습니다. 오히려 모니터와 노트북에서 시장을 좀 뺏기고 있나 봅니다.


그렇다면 LG디스플레이가 상당한 타격을 입고 있다고 해도 그 이유가 시장을 크게 잃었기 때문이라고 보기는 어렵겠습니다. 그 보다는 공급 과잉에 따른 대형 LCD의 가격 하락의 영향이 컸던 것이죠. 여기에 LCD 이후를 준비하기 위해 과감하게 투자한 OLED에서 아직 결실을 맺지 못한 결과일 겁니다. 투자를 하느라 비용(감가상각비 등)은 발생하는데, OLED 매출은 기대만큼 늘지 않고 있는 것이죠.



위 차트는 한국기업평가의 LG디스플레이 평정 보고서에 실린 겁니다. 대형 TV 패널 가격이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가파르게 하락하고 있습니다. 2015년 이후 수요는 거의 정체되거나 올 들어서는 감소하고 있는 것과 달리 공급은 최근 2년간 폭증했기 때문이죠.


그런데 왜 삼성디스플레이는 거의 타격을 입지 않은 것처럼 보일까요? 삼성디스플레이의 제품 또는 가격경쟁력이 LG디스플레이보다 우월하기 때문일까요? 아니, 그렇게 보이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그 반대라면 몰라도. 삼성디스플레이가 타격을 적게 입었다는 평가에도 재무제표를 읽는 사람들(재읽사)은 동의하지 않습니다.


삼성디스플레이는 이른바 캡티브(Captive) 마켓 플레이어에 가깝습니다. 전 세계 시장을 누비며 제품을 파는 회사로 보기 어렵습니다. 삼성디스플레이의 최대주주는 삼성전자로 무려 84%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연결회계 관점으로는 삼성전자와 한 회사라고 볼 수 있습니다. 삼성디스플레이의 매출은 대부분 삼성전자를 위시한 특수관계자 매출입니다.


삼성전자 외 특수관계자 역시 삼성전자의 자회사이거나 계열회사 등이어서 사실상 거의 전부 삼성전자 때문에 발생하는 매출로 볼 수 있을 것입니다. 2017년 매출 30조원 중 24조원, 지난해 매출 28조원 중 18조원이 특수관계자로부터 나왔습니다. 그러니까 삼성디스플레이 매출은 삼성전자의 TV, 컴퓨터, 노트북, 휴대폰 등의 판매 실적에 연동될 수 밖에 없습니다. 업황의 영향을 덜 받겠죠?



반면 LG디스플레이는 특수관계자 매출이 매우 적습니다. LG전자가 37% 지분을 보유한 대주주인 건 삼성디스플레이와 비슷하지만, LG전자와 LG전자의 자회사로 구성된 특수관계자 매출은 전체 매출의 20% 정도에 불과합니다. 지난해 연간 4조2000억원을 LG전자 등에게 팔았고요. 올해 들어서는 9월말까지 2조6000억원 정도를 판매했습니다. 지난해 9월까지 누적 판매액인 3조1000억원에서도 상당히 줄었네요.


그러니까 LG전자는 글로벌 시장에서 BOE 등 외국의 업체들과 직접적인 경쟁을 하다 보니 실적에 더욱 큰 타격을 입을 수 밖에 없었던 것이고요. 비중이 20% 안팎인 캡티브 매출조차도 완충 역할을 못해준 셈입니다.


여기에 또 하나가 있습니다. 삼성전자가 세계 최대 휴대폰 업체라서 그렇겠지만, 삼성디스플레이는 대형 패널 시장의 이끄는 곳이 아닙니다(물론 본인들은 대형 LCD 시장 선도업체라고 합니다). 중소형 패널의 패권자라고 보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삼성에서 마치 OLED 보다 QD-LCD가 더 나은 것처럼 홍보를 하고 있지만 중소형 패널 부문에서는 OLED를 공급하는 과점업체입니다. 최근 그 지위가 좀 흔들리고 있기는 하지만요.


대형 OLED 시장보다 중소형 OLED 시장의 규모가 더 크고 성장 속도도 훨씬 빠르다고 했지요? 중국 업체의 공세로부터 그 동안 무풍지대와 같았던 곳이고요. 그러니 타격이 덜했던 것이죠. 그런데 삼성디스플레이도 대형 패널 부문에서는 상처가 상당히 큽니다. 거의 패퇴 수준입니다. 재무제표의 실적으로는 잘 표시가 나지 않지만, 대형 패널 시장에서 이렇게 밀려도 괜찮을까 걱정됩니다.


LG디스플레이가 자신들의 시장점유율을 대형 패널 기준으로 공시한다고 했지요? 삼성디스플레이는 비상장기업이라 사업보고서를 내지 않기 때문에 점유율도 발표를 하지 않습니다. 대신 모회사인 삼성전자가 발표를 하지요. 삼성전자는 디스플레이부문 점유율을 올해 반기까지 LG디스플레이와 마찬가지로 대형 패널 기준으로 발표했습니다. 그런데 3분기 실적을 발표하면서 스마트폰 패널로 점유율 산정 기준을 바꿨습니다. 왜 그랬는지는 아래 그림을 보시면 금방 눈치 채실 수 있습니다.



삼성디스플레이의 대형 패널 시장 점유율은 2015년 20%대에 있었습니다. 불과 3년만에 절반인 10%대, 그리고 올해 3분기 기준으로는 한자리 수대로 떨어졌습니다. 20%대 점유율이면 시장을 선도하는 업체의 명단에 들어갈 만합니다만, 9.7%의 점유율로는 좀 쑥스럽습니다. 삼성이 대형 패널 시장을 포기했을 리는 만무하고, 중국업체들에게 밀렸다고 봐야할 것 같습니다.


스마트폰 패널에서는 독보적인 시장 점유율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40%가 넘습니다. OLED 패널이 가장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곳도 스마트폰 시장입니다. LG디스플레이에는 없는 완충장치가 삼성디스플레이에는 있었던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