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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바이오로직스가 10년 전인 2015년 회계법인에서 평가받은 삼성바이오에피스 100%의 지분 가치는 약 5조 2700억원으로 추정됩니다. 삼성바이오로직스가 당시 보유하던 91.2%의 지분가치 4조 8086억원을 100% 지분으로 환산한 값입니다(회계법인의 평가가 적정했는지는 논외로 합니다). 그런데 현재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삼성바이오에피스 지분 100%를 보유하고 있고, 그 장부가치는 약 3조 2650억원이죠.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삼성바이오에피스가 그 동안 매우 심각한 실적 부진을 겪었거나, 중요한 사업부문을 쪼개 팔기라도 한 걸까요? 아닙니다. 그런 일은 없었습니다.


삼성바이오로직스가 삼성바이오에피스를 종속기업에서 관계기업으로 재분류한 2015년말 삼성바이오로직스의 지분율은 91.2%였습니다. 물론 합작회사인 미국회사 바이오젠의 콜옵션 행사 가능성을 반영하지 않은 실제 지분율입니다. 2017년까지 삼성바이오에피스 지분의 장부가액은 약간 상승했지만 큰 변동이 없습니다. 삼성바이오로직스가 2016년과 2017년에 각각 2000억원의 추가 출자를 단행했지만, 삼성바이오에피스가 연속 적자를 내는 바람에 장부가액이 거의 제자리였습니다.




그런데 2018년 6월 29일 바이오젠이 실제로 콜옵션을 행사합니다. 약 922만여주를 취득해 지분율을 50%-1주로 끌어 올리죠. 콜옵션 행사 가능성이 높다며 삼성바이오에피스를 종속기업이 아닌 관계기업으로 재분류한 2015년의 삼성바이오로직스의 회계처리가 사후 입증된 셈이죠. 이때 지분 매각의 대가로 삼성바이오로직스가 받은 현금이 얼마일까요? 당시 언론에는 약 7486억원으로 보도되었습니다만, 삼성바이오로직스의 장부에 찍힌 숫자는 약 7595억원이었습니다. 주당 5만원의 매입가와 이자비용을 더한 값이었죠.


당시 바이오젠으로 매각된 삼성바이오에피스 지분은 44.6%, 장부가액은 2조 2998억원(1주당 24만 9000원)정도였습니다. 그걸 7595억원에 넘겼으니 엄청난 손실을 본 셈인데요. 삼성바이오로직스가 콜옵션 행사에 대비해 약 1조 9000억원을 파생상품부채로 계상하고 있었기 때문에 장부에는 오히려 처분이익을 본 것으로 나타납니다.


바이오젠의 콜옵션 행사로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삼성바이오에피스 지분 50%+1주만을 보유하게 되었고, 그 지분의 장부가액은 2조 5618억원으로 낮아지게 되었습니다. 여기까지는 2015년 회계법인에 의뢰해 받은 삼성바이오에피스의 기업가치가 적용되어 왔다고 할 수 있습니다.


2020년에 그 맥락이 완전히 깨지게 됩니다. 물리적으로는 아무런 일도 없었지만 삼성바이오로직스의 재무제표 작성 기준이 바뀌었기 때문이죠. 아주 사소하고 전혀 중요하지 않은, 그리고 전혀 그럴 필요가 없는 변경이었습니다. 바로 개별 재무제표에서 별도 재무제표로의 전환입니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2019년까지 개별 재무제표를 작성했습니다. 그런데 2020년부터는 개별 재무제표가 아닌 별도 재무제표를 작성합니다. 개별 재무제표는 종속기업이 없는 회사, 다시 말해 연결 재무제표를 작성할 필요가 없는 회사가 작성하는 재무제표를 말합니다. 반면 별도 재무제표는 종속기업이 있는 회사가 연결 재무제표와 별도로 자기 자신만을 주체로 작성하는 재무제표를 말합니다.


사실 이건 기업회계를 어느 정도 알고 있는 사람도 이해하기 어려운 대목입니다. 개별 재무제표나 별도 재무제표나 특정 기업이 자기자신에 대해 작성하는 재무제표이니 다를 게 없습니다. 구분의 실익이 없어서 혼동해서 부르기도 합니다. 단지 종속회사 지분이 있고 없고의 차이일 뿐이거든요.



개별 재무제표와 별도 재무제표는 아주 작은 차이가 있습니다. 개별 재무제표는 관계기업 지분의 장부가액을 지분법으로 평가하는 반면에, 별도 재무제표는 지분법과 원가법 중에서 선택할 수 있습니다. 지배기업은 관계기업에 대해 중요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으니 원가법으로 회계처리하거나 공정가액으로 처리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할 수 있습니다. 관계기업의 순자산 증감에 따라 장부가액을 조정하는 지분법이 논리적이죠.


그런데 연결재무제표를 작성하는 상장사의 경우에는 이미 연결 재무제표에서 종속회사의 순자산을 반영하고 있으니, 별도 재무제표에서는 연결 재무제표와 속성이 같은 지분법 대신에 원가법을 허용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투자자의 편의나 기업의 실질보다는 재무제표 작성의 편의를 우선 배려한 기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개별 재무제표를 작성하고 있었고, 개별 재무제표와 별도 재무제표가 다를 게 없으니, 특별히 바꿀 것도 없이 개별 재무제표를 별도 재무제표로 부르면 될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굳이 지분법으로 평가하던 삼성바이오에피스 지분가치를 별도 재무제표에서 원가법으로 바꿉니다. 그렇게 아무 일도 없이 삼성바이오에피스 지분 50%+1주의 장부가액은 약 2조 6500억원에서 5171억원으로 고쳐집니다.


개별 재무제표에서 별도 재무제표로의 전환은 삼성바이오에피스에 대한 평가가 2014년 이전으로 돌아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회계법인에 의뢰해 삼성바이오에피스의 기업가치가 5조원이 넘는다는 평가를 받고, 그 기업가치를 근거로 바이오젠이 보유한 콜옵션의 가치가 높아졌으니, 콜옵션 행사가능성을 반영해 삼성바이오에피스를 종속기업이 아닌 관계기업으로 봐야 한다는 논리가 최소한 삼성바이오로직스 재무제표에서 사라진 셈이죠.


2020년 다시 매겨진 삼성바이오에피스 지분 50%의 장부가액 5171억원은 어떻게 나온 값일까요? 삼성바이오로직스가 현금출자한 9784억원과 바이오젠이 출자한 558억원 등 총 1조 342억원의 50%에 해당하는 값입니다. 삼성바이오로직스의 출자액 중에 지분 50%에 해당하는 값이라고도 할 수 있죠.



그럼 삼성바이오로직스가 이때까지 삼성바이오에피스에 투자한 순출자액은 얼마일까요? 약 9784억원을 출자해 94.61%의 지분을 갖고 있다가, 바이오젠의 콜옵션 행사로 44.6%를 7595억원에 팔았으니 그 차액인 약 2190억원이 될 것입니다. 1주의 차이가 있을 뿐 똑같이 50%의 지분을 가진 삼성바이오로직스와 바이오젠의 순투자액이 2190억원과 8153억원으로 역전이 되어 버렸죠. 상당한 위화감과 함께 이게 끝이 아니겠구나라는 느낌이 들지 않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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