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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섭 에이프로젠 회장은 저명한 과학자 출신의 경영인입니다만, 증권시장에서는 M&A전문가또는 기업사냥꾼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닙니다. 이렇게 바람직스럽지 않은 꼬리표가 붙게 된 시작이 제넥셀세인의 경영권 인수와 그 이후의 잇따른 인수합병, 그리고 제넥셀세인의 상장폐지와 지분 매각이었습니다. 김 회장은 KAIST 생명과학부 교수로 재직하면서 초파리 연구를 이끌었고, 연구를 지속하기 위한 자금을 조달하고 바이오 신약을 만들겠다는 꿈으로 유전체 분석회사 제넥셀을 설립했지만, 실제로 코스닥시장에 입성한 후 보여준 행보는 그가 가졌던 이미지와는 사뭇 달랐죠.
독보적인 초파리 연구기술은 비상장사인 제넥셀이 코스닥 상장사인 세인전자와 유리한 조건으로 주식교환을 할 수 있는 기반이 되었고, 김재섭 회장은 최소한의 개인자금으로 상장사의 주인이 될 수 있었습니다. 김재섭 회장이 세인전자의 대표이사가 되면서 KAIST 동료 교수들이 설립한 에이프로젠 역시 높은 잠재력을 인정받으며 세인전자와 주식교환을 할 수 있었습니다. 바이오 신약개발 벤처기업과 의료기기 전문업체의 만남은 증권시장에서 큰 기대를 모았고, 그 기대의 중심에는 김재섭 회장이 있었죠.
도약의 기회가 될 것 같았던 제넥셀, 에이프로젠과의 주식교환은 되레 몰락의 시작이었습니다. 그나마 수익창출의 원천이던 의료기기 매출은 해마다 빠르게 감소했고, 기대했던 바이오 신약은 성과가 없었습니다. 제넥셀세인으로 이름을 바꾼 세인전자는 의료기기 제조설비를 제넥셀메디칼로 넘기고 바이오 신약 개발회사로 변신했습니다. 의료기기 매출은 제넥셀메디칼에서 사다 파는 상품매출로 바뀌었죠.
제넥셀세인은 김재섭 회장이 경영을 맡았던 2006~2008년 약 57억원을 연구개발에 지출했습니다. 매출액의 28%에 달하니 회사 입장에서 적은 금액이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그런데 같은 기간 제넥셀세인이 유상증자 등을 통해 조달한 자금이 369억원이었거든요. 조달한 자금을 주로 투입한 곳은 초파리 연구의 고도화라고 볼 수는 없었던 셈이었죠.

김재섭 회장의 제넥셀세인은 오히려 타법인을 인수합병 하는데 열을 올렸던 것으로 보입니다. 제넥셀세인은 제넥셀메디칼 유상증자에 총 26억원을 참여해 45.5%의 지분을 갖게 되었습니다. 제넥셀메디칼은 2006년 이전에는 제넥셀의 의료기기를 국내에 판매만 하는 회사였다가 2006년부터는 생산만 하는 회사로 바뀌었죠. 이 회사의 대표는 김재섭 회장의 형으로 알려진 김정출씨가 맡았습니다.
2008년 3월에는 한국슈넬제약에 3자 배정 유상증자로 100억원을 투입해 32.13%의 지분을 확보하고, 구주를 101억원에 취득해 지분율을 39.28%로 높였습니다. 한국슈넬제약의 최대주주는 오로라리조트홀딩스로 7.15%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었죠. 32.13%의 신주 값보다 구주 7.15%의 값이 더 비쌌던 셈입니다.
한국슈넬제약은 원래 건풍제약이라는 제약회사였는데, 부도와 기업회생절차를 거쳐 2002년에 한국슈넬제약으로 사명을 변경했고, 2004년에 유상증자가 되면서 박경우씨가 최대주주가 되었지만 경영권 분쟁을 겪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종합병원장인 김주성씨가 대표이사인 이호스피탈코리아라는 회사가 장내매입을 통해 최대주주에 오르게 되고, 박경우씨와 이호스피탈코리아 간에 경영권 분쟁이 발생하더니 2006년 1월에 이호스피탈코리아가 박경우씨 지분 5.39%를 28억원에 매입합니다.
이호스피탈코리아가 최대주주가 된 후 한국슈넬제약은 신주인수권부사채, 유상증자, 전환사채 등으로 자금을 조달하고 신약개발회사인 비즈바이오텍을 인수하는 등 적극적으로 사업확대에 나서는 모양이었습니다. 그런데 2007년 10월 돌연 오로라리조트홀딩스라는 곳이 나타나 전환사채 50억원의 전환권을 행사해 10.53%의 지분율로 최대주주가 됩니다.
오로라리조트홀딩스는 2007년 9월에 자본금 5000만원으로 설립된 회사였습니다. 설립된 지 이틀 만에 한국슈넬제약의 전환사채권(액면 50억원)을 53억원에 인수했고, 약 보름 만에 상장사의 최대주주가 되었어요. 오로라리조트홀딩스가 취득한 전환사채는 2007년 7월에 122억원 규모로 발행되었는데, 발행 한달 후부터 보통주로 전환이 가능했습니다. 그 중 액면 50억원어치를 무한9호기업구조조정조합에서 인수했고, 두 달 여 만에 오로라리조트홀딩스에 양도했죠.

무한9호기업구조조정조합은 무한투자에서 운영하는 조합이었는데, 한국슈넬제약이 전환사채 발행 두 달 전 경영참여 목적으로 11억원을 투자해 5%의 지분을 취득한 회사였습니다. 제넥셀세인은 당시 무한투자가 운영하는 무한메디컬벤터투자조합에 20억원을 투자하고 있었고요.
한국슈넬제약이 제넥셀세인을 제3자로 유상증자를 결의한 날이 2008년 3월입니다. 오로라리조트홀딩스가 최대주주가 된 지 6개월만이죠. 오로라리조트홀딩스가 지분을 제넥셀세인에 넘기기로 한 날도 같은 날이었습니다.
오로라리조트홀딩스는 김영기라는 분이 대표이사였는데 2008년 11월에 컨티넨탈아펙스홀딩스로 이름을 바꾸었다가 2014년에 해산합니다. 전환사채를 인수하는 과정에서 자본금을 7억원으로 증액했으니, 전환사채 인수에 들어간 자기자금은 최대 7억원이고, 나머지는 부채였을 텐데요. 53억원에 전환사채를 사서 101억원에 팔았으니 부채를 갚고도 45억 원 가량의 차익을 얻은 것으로 추정됩니다.
오로라리조트홀딩스는 제넥셀세인이 한국슈넬제약을 인수하는 과정에서 중간에 개입해 브릿지 역할을 했을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고는 소액으로 설립된 회사가 곧바로 대규모 자금을 조달해 상장사 전환사채를 매입해 최대주주가 되고, 제넥셀세인을 제3자로 내세워 유상증자를 실시해 최대주주 지위를 넘기고, 자신의 보유 주식을 비싼 값에 처분하는 과정을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한국슈넬제약을 인수한 제넥셀세인은 곧바로 청계제약 지분 100% 인수에 나섭니다. 제넥셀세인이 약 62억원을 투자해 67%의 지분을 갖고 한국슈넬제약이 30억원을 투자해 33%의 지분을 보유하게 되죠. 한국슈넬제약은 제넥셀세인이 인수할 당시 자본잠식 상태였고, 청계제약은 2년 연속 10억원 이상의 적자를 기록하고 있었습니다. 한국슈넬제약은 슈넬생명과학을 거쳐 현재 에이프로젠바이오로직스가 되었습니다. 청계제약은 2015년 슈넬생명과학의 자회사인 한국슈넬과 합병해 소멸했죠. 김재섭 회장을 증권시장에 데뷔시켰던 제넥셀세인은 사라졌지만, 당시 인수했던 회사들은 현 에이프로젠그룹의 일원이 된 셈입니다.
일부 보도에 따르면 제넥셀세인의 상장폐지는 김재섭 회장을 증권가의 유명인으로 만들었다고 합니다. 상장폐지의 원인 제공자로 지목되면서 많은 양도세를 냈다고도 하고요. 에이프로젠이 상장하기까지 여러 차례 실패를 겪는데, 그 이유를 제넥셀세인 상장폐지라는 김재섭 회장의 과거에서 찾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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