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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빵시장에 대해 사전 지식이 거의 없습니다. 어릴 때는 학교 앞 구멍가게에서 '보름달'을 주로 사 먹었고, 어른이 돼서는 집 근처 파리바게트에서 생일 케이크를 종종 사면서 단지 소비자로서 접했을 뿐입니다. 삼립식품은 구멍가게나 편의점에서 봉지빵(양산빵)을 팔고, 파리바게트는 직영점이나 가맹점을 통해 직접 빵을 만들어 파는 일명 '베이커리'시장에 속한 회사라는 정도나 알고 있습니다. 두 시장 모두 빵을 파는 곳이니 넓게는 경쟁 관계에 있으나 주요 소비자층이나 구매 채널은 확실히 다를 겁니다.
'봉지빵 왕국' SPC삼립 실적 빵빵해진 이유??
우연히 눈에 띈 하나의 기사 제목입니다. 삼립식품(정식 사명은 SPC삼립이지만, 삼립식품이라고 부르겠습니다)의 실적이 올 들어 좋아졌다는 것과 양산빵 시장을 주요 경쟁자라는 걸 제목으로 알 수 있습니다. 얼마나 빵빵해졌길래 기사를 썼을까? 흥미가 돋습니다.
기사는 삼립식품이 최근 주요 무대를 동네 슈퍼에서 편의점으로 바꾸면서 '전기(轉機)를 마련'했고, 올해 2분기에 매출과 영업이익에서 모두 기대치를 웃도는 실적을 올렸다고 전합니다. 기존의 양산빵 외에 샌드위치와 디저트류를 라인업에 추가해 편의점에서 팔기 시작한 것이 주효했다는 겁니다.
그런데 빵빵해졌다는 그 실적이 고개를 갸우뚱하게 합니다. 2분기 매출액은 6082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12.3% 늘었는데, 영업이익은 166억원으로 전년 동기(167억원)과 같습니다. 어? 매출만 늘었을 뿐이네요. 그것도 전에 하지 않던 걸 추가로 하는 바람에 늘어난 것이지, 기존에 팔던 게 더 잘 팔린 게 아니네요. '전기를 마련했다'고까지 했는데, 삼립식품은 일(매출)을 더 많이 하고도 소득(영업이익)은 전혀 늘지 않았는데요. 대체 어디가 어떻게 빵빵해진 건지 모르겠습니다.
전기를 마련하는데 주역이 된 베어커리 부문에 대한 실적도 언급이 되어 있습니다. 2분기가 아니라 상반기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2795억원 매출(전년 동기비 4.3% 증가)에 162억원의 영업이익(전년 동기비 8.0% 증가)을 올렸답니다. 성장을 하기는 했지만 별로 특별할 것도 없어 보입니다.
이래서는 삼립식품이 샌드위치를 들고 편의점 시장에 뛰어들어 얼마나 성과를 거둔 것인지, 그것이 삼립식품 전체의 펀더멘털에 어떤 의미를 갖는지 짐작하기 어렵습니다.
삼립식품의 성장은 양산빵의 성과일까요, 확장의 결과일까요?
내친 김에 삼립식품(연결 기준)의 실적을 분기별로 쪼개 보았습니다. 매출과 이익 모두 점진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전기'를 마련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매출에 어떤 변화가 생겼다면 그 시점은 올해 2분기가 아니라 오히려 지난해 2분기에서 찾아야 할 것 같습니다. 그때부터 매출이 매분기 증가하고 있으니까요. 올해 2분기 12%대의 매출 증가는 이전 분기의 증가세가 더해진 결과일 뿐입니다.
삼립식품이 샌드위치와 디저트류를 들고 편의점 시장 공략에 나선 것이 최근이라면 아직 그 성과는 가시화되지 않았을 지 모르겠습니다. 아니면 편의점 공략 시점이 지난해 2분기 전후 일 수도 있고요.

기업이 꾸준히 성장하고 있다는 것은 단지 매출의 확대를 의미하지는 않는다고 봅니다. 추가적인 자본의 투입 없이도 순자산이 증가하고 있어야 진정한 성장일 수 있습니다. 삼립식품의 지배주주지분을 납입자본과 유보이익(이익잉여금+기타포괄손익누계)으로 나누어 보았습니다. 납입자본은 2017년 크게 줄고 유보이익은 매년 꾸준히 증가하고 있습니다.

삼립식품은 매년 이익을 사내에 유보해 순자산을 늘려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납입자본이 준 것은 그 유보이익으로 감자를 했거나 자기주식을 매입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렇게 꾸준히 성장하는 것이 삼립식품의 텃밭이자 정체 또는 축소되고 있을 양산빵 시장에서 일군 성과인지, 아니면 베이커리 시장 등 새로운 돌파구를 마련했기 때문인지는 추가 분석이 필요합니다.
SPC그룹에서 삼립식품의 위상은 절대적입니다.
그 전에 삼립식품이 SPC그룹에서 어느 정도의 위상을 갖고 있는지 보겠습니다. 그룹의 최상위 지배회사인 파리크라상은 삼립식품 지분의 40.7%를 보유하고 있고, 그 외에 한때 삼립식품의 최대 경쟁자였던 샤니를 비롯해 많은 계열사를 두고 있습니다.
보름달을 팔던 삼립식품은 1997년 외환위기에 망했고, 언젠가부터 SPC그룹에 편입되어 파리바게트와 같은 계열이 됐습니다. 베이커리 시장의 독재자가 양산빵 시장으로 영토를 확장한 것이죠. 그래도 여전히 SPC그룹의 핵심은 베이커리겠거니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게 아니더군요. 삼립식품은 국내 양산빵 시장을 무려 71%(2017년 매출액 기준)나 점유하고 있는 지배적인 사업자였습니다. 외환위기 당시 샤니와 양강 체제를 이루고 기린, 서울식품과 경쟁하던 때와는 차원이 달랐습니다. 양산빵이 빠르게 성장하는 시장이 아니라 기존의 경쟁자들이 사업을 철수 또는 축소한 영향도 있겠지만, 70%가 넘는 압도적인 점유율은 경쟁의 성과인 동시에 무시할 수 없는 경쟁력의 원천이기도 합니다. 후위 그룹들은 쓸 수 없는 전략을 구사할 수 있게 되니까요.

삼립식품은 SPC그룹의 주축이자 확실한 캐쉬카우(cash cow)입니다. 자산총액은 당연히 5000억원대의 계열사 지분을 보유한 파리크라상이 절대적이지만, 매출 면에서는 삼립식품이 오히려 파리크라상을 압도합니다. 삼립식품과 파리크라상을 제외한 다른 기업들은 제빵업과 수직계열에 있는 식자재 유통업이거나 포장재를 생산하는 곳이고 그 외에는 삼립식품과 파리크라상을 보완하는 정도의 존재감입니다.

현금흐름 창출력에서 봐도 삼립식품은 파리크라상에 밀리지 않는 SPC그룹의 핵심입니다. 영업이익은 파리크라상에 버금가고, 영업으로 벌어들이는 현금은 다소 밀리지만, 매년 점포 확장 등에 큰 돈이 들어가는 파리크라상과 달리 자본적 지출에 대한 부담이 없어 잉여현금흐름은 월등합니다.
삼립식품의 위상은 SPC그룹의 전략이 만들어낸 결과물입니다.
파리크라상이 운영하는 파리바게트는 CJ푸드빌이 운영하는 뚜레쥬르와는 상당한 격차를 두고 있는 베이커리 시장의 절대 강자입니다. SPC그룹이 국내 제빵 시장 전체를 장악하고 있다고 보아도 무리가 없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파리크라상은 삼립식품과 파리바게트라는 불세출의 두 장수를 거느린 군대와 같습니다. 양산빵 시장엔 삼립식품이 베어커리 시장엔 파리바게트가 출정을 해 있는 셈이죠. 하지만 늘 그래야 한다는 법은 없는 겁니다. 제빵 시장의 절대 강자이니까요. 가맹점 중심인 베이커리 시장이 접근하기 어려운 편의점이나 간편가정식(HMR) 시장에는 베이커리 제품을 들고 삼립식품이 출정할 수도 있는 것이죠. 양수겸장이 가능한 SPC그룹입니다.
같은 계열 안에 있는 샤니는 과거 삼립식품의 가장 강력한 경쟁자였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삼립식품이 SPC그룹의 양산빵 시장 공략을 주도하고 있죠. 두 회사의 경쟁력이 SPC그룹에 편입된 이후 급격하게 한쪽으로 기운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이 역시 그룹의 사업전략 중 하나였습니다. 분산된 힘을 삼립식품으로 몰아주는 게 더 낫다고 판단한 것이죠.

SPC그룹은 2011년 샤니의 매출처에 대한 영업권을 삼립식품으로 넘깁니다. 그룹 내 양산빵의 매출처를 삼립식품으로 일원화한 것이죠. 샤니는 삼립식품에 빵을 공급하는 회사로 바뀌고 삼립식품의 매출은 급격한 상승 곡선을 그리게 됩니다. 어떤 의미에서 지금의 삼립식품은 과거 삼립식품과 샤니의 경쟁력과 시장지위를 넘겨받았다고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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