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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고랜드 사태 이후 4년이 지났지만 롯데건설은 여전히 공사대금 회수 지연, 과도한 차입금, PF우발채무의 현실화 우려, 현금흐름 창출 부족 등의 문제를 안고 있습니다. 모두 돈, 다시 말해 재무적인 이슈들입니다. 신용평가사들은 롯데건설의 재무적인 문제들을 오래 전부터 주목해 왔고, 지난해 신용등급을 A+에서 A0로 강등하는 조치를 취했습니다.
A0 신용등급에 대한 전망(Outlook)은 ‘안정적’입니다. 돌발적인 큰 변화가 생기지 않는다면 당분간 신용등급이 오르거나 내리기보다는 현재 수준에 머물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는 것이죠. 하지만 신용평가사들은 롯데건설의 상환능력에 대해 기대보다 우려에 무게가 실려 있는 것 같습니다.
한국신용평가가 정리한 롯데건설 신용등급의 주요 평가요소는 ‘주택 중심의 양호한 사업기반과 수주경쟁력 보유’, ‘공사원가 부담 완화에도 비경상적인 손실 부담은 지속’, ‘공사대금 회수 지연, 공사비 선투입으로 인한 자금소요’, ‘PF우발채무의 현실화 가능성에 대한 모니터링 필요’ 등입니다. 한국기업평가도 유사한 표현들로 롯데건설 신용등급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신용등급 하락 위험에서 벗어나려면 미수금, 차입금, 우발채무 문제의 해결이 필요하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한국기업평가와 한국신용평가는 두 개의 지표를 롯데건설 신용등급의 잣대(등급변동 요인)으로 삼고 있습니다. 한국기업평가는 부채비율과 EBITDA마진(EBITDA/매출액), 한국신용평가는 부채비율과 영업이익률입니다. 영업이익에 감가상각비를 더한 게 EBITDA이니 두 평가사가 주목하는 지표가 거의 같다고 볼 수 있습니다.
솔직히 ‘이게 맞나?’ 싶습니다. 영업이익과 EBITDA는 차입금, 미수금의 변화를 잘 반영하지 못합니다. 현금흐름이 마이너스여도 영업이익과 EBITDA는 플러스 일 수 있습니다. 건설사의 부채비율은 착시일 가능성이 늘 있습니다. PF우발채무는 현실화되지 않으면 부채비율에 영향을 주지 않습니다. 실질적으로 차입금이라고 할 수 있는 신종자본증권을 크게 늘리면 장부상 부채비율은 하락할 수 있습니다. 물론 신용평가사들은 단지 두 개의 잣대만으로 신용등급을 매기지 않습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하게 본 지표가 롯데건설에 대한 가장 큰 우려 요인들과 빗겨 있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롯데건설에게 신용등급의 추가 하락을 막는 것은 절대적으로 중요합니다. 단지 등급이 한 노치 떨어지는 문제에서 그치지 않고 대규모 자금유출과 사업 위축, 자금조달 여력 약화, 그로 인한 추가 등급 하락의 연쇄 리스크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신용등급은 하락이 하락을 불러 폭포수처럼 떨어지는 현상이 종종 나타나곤 합니다.

롯데건설은 신용등급 하락을 기한이익상실(EOD) 또는 조기 상환의 트리거(Rating trigger)로 삼고 있는 금융계약들이 있습니다. 한국기업평가에 따르면 롯데건설 신용등급이 1노치 하락해 A-등급이 되면 채권자가 즉시 상환을 요구할 수 있는 차입금이 4,000억원, 2노치 하락해 BBB+가 되면 추가로 3,850억원이 있습니다. 일반대출, 회사채, 기업어음과 단기사채가 포함된 금액입니다.
만약 신용등급 하락으로 트리거가 실제로 발동된다면, 유동성 대응력은 빠르게 소진되고 유동성위기가 재점화될 가능성이 커집니다. 롯데건설이 6월말 연결 기준으로 1조원 이상의 현금유동성을 보유하고 있지만, 그 현금유동성 전부를 차입금 상환에 쓴다고 해도 남는 차입금이 신종자본증권 포함 2조 8,000억원에 이릅니다. 현금흐름이 좋아서 ‘벌어서 갚을 수 있는’ 회사라면 그래도 믿음이 가겠지만, 롯데건설은 아직은 현금 벌이를 못하고 있기 때문에 빌려서 갚는 돌려 막기를 하거나 대규모 유상증자로 주주들에게 손을 벌려야 하는 입장에 있는 회사입니다. 유동성 대응력의 약화는 매우 민감한 이슈가 될 수 있습니다.
롯데건설이 지난달 26일 500억원의 공모 회사채 발행에 성공했는데요. 이 공모채에도 비슷한 조항이 있습니다. 롯데건설의 다른 채무 중 1,000억원 이상이 만기에 상환되지 않거나, 기한이익이 상실된 경우 이번에 발행된 공모사채 전액에 대해서도 기한이익 상실이 발생한다는 겁니다. 다시 말해 롯데건설 신용등급이 한 단계 하락하게 되면 이번에 발행한 공모채에 대한 즉시 상환 요구가 들어올 수 있다는 것입니다.
공모채 발행 성공은 롯데건설에게 매우 다행입니다. 회사채 시장에 여전히 롯데건설에 대한 수요가 살아 있다는 것을 확인했으니까요? 그런데 이번 공모채 발행을 위한 수요예측에는 증권사만 참여했습니다. 연기금, 자산운용사, 은행, 보험사 등은 전혀 참여하지 않았습니다. 전통적인 기관투자가들은 롯데건설을 신용리스크를 우려해 북(Book)에 담지 않았다고 해석할 수 있죠.
게다가 증권사들의 참여는 거의 대부분이 희망금리 최상단에 몰려 있습니다. 사더라도 싸게 사겠다는 의중이 드러난 셈입니다. 증권사가 롯데건설 회사채를 만기까지 보유하면서 이자수익을 누리기 위해 수요예측에 참여했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고금리 회사채를 확보해 리테일 시장에서 마진을 붙여 재판매할 생각으로 참여했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입니다.
롯데건설의 신용등급은 롯데건설에게만 달려 있지 않습니다. 모회사인 롯데케미칼의 신용등급이 하락해도 위협을 받습니다. 롯데케미칼의 신용등급은 AA-(부정적)입니다. 신용평가사들이 지금은 등급 하락을 고려하고 있지 않지만, 상승보다는 하락 쪽에 무게를 두고 바라보고 있다는 뜻입니다.
롯데케미칼은 2022년부터 4년 연속 대규모 적자의 늪에 빠졌 있었고, 올해 상반기 1,836억원의 영업흑자로 전환되었습니다. 하지만 하반기 이후 실적에 대한 신용평가사의 시각은 회의적입니다. 미국-이란 전쟁 이전에 저가에 매입한 나프타로 인한 래깅효과 등 긍정적인 요소가 하반기 이후 사라지고 기초화학부문, 이자전지소재 부문 등의 실적이 부정적으로 바뀔 것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한국신용평가는 EBITDA 대비 연결 순차입금이 5배를 초과하면 신용등급을 추가 하향한다는 지침을 공개하고 있는데, 순차입금이 EBITDA 5배를 상회하는 상황이 유지될 것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한국기업평가와 한국신용평가의 평가모델로는 롯데건설의 신용등급이 BBB 수준입니다. 모델로만 보면 BBB-~BBB+ 사이에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두 평가사가 보는 롯데건설의 자체 신용등급은 A-등급입니다. 여기에 ‘유사 시’ 롯데그룹의 지원가능성을 얹어 최종적으로 A0 등급을 준 것입니다. 모델등급보다 한 노치 높은 자체 신용등급은 신용평가사가 모델이 반영하지 못하는 기타 평가요소를 정상 참작해서 반영했다는 것을 의미하는데요. 그게 무엇인지는 명확하지 않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이 ‘유사 시 지원가능성’입니다. 신용평가사들은 롯데건설이 위기에 처했을 때 롯데그룹이 지원할 가능성을 매우 높게 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지원 주체의 핵심은 누가 뭐라고 해도 최대주주인 롯데케미칼입니다. 롯데케미칼의 신용등급 하락은 곧 롯데건설에 대한 지원의지와 지원역량의 훼손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롯데케미칼의 신용등급이 하락하고, 이를 롯데그룹의 지원능력의 약화라고 해석이 되면, 유사 시 지원가능성이 인정이 된다고 해도 롯데건설의 신용등급은 하락할 수 있습니다.
롯데건설의 1~2대 주주인 롯데케미칼과 호텔롯데는 이미 상당한 자금지원을 롯데건설에 했습니다. 롯데케미칼은 2022년에 단기대여금 5,000억원과 유상증자 876억원을 지원했고, 호텔롯데는 롯데건설 신종자본증권에 대해 4,000억원의 자금보충약정을 서주고 있죠.
하지만 지원의지와 지원능력은 함께 가지 않습니다. 롯데케미칼은 석유화학 불황으로 막대한 차입금과 유동성 압박을 받고 있고 사업구조조정에 여념이 없습니다. 신용등급도 하향 리스크가 있어 제 코가 석자인 형편입니다. 호텔롯데(AA-등급)는 코로나19 위기가 끝나고 상황이 나아졌지만 분업의 현금창출력이 폭발적이지 않은 상황에서 롯데건설을 홀로 떠받칠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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