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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 1주일 되었습니다. 한국기업평가가 LG디스플레이 신용등급(AA-) 전망을 '안정적'에서 '부정적'으로 조정했죠. 국내 3개 종합 신용평가사 중에서 한국신용평가가 이미 10월에, 나이스신용평가도 지난달 19일에 LG디스플레이 신용도를 똑같이 조정했죠. 한국기업평가가 막차를 탄 겁니다.

우리나라 투자자들은, 특히 개인들은 주가에는 민감하게 반응하지만 신용등급 변동에는 신경을 덜 쓰는 편입니다. 하지만 실은 기업 입장에서 주가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것이 신용등급입니다. 신용등급이 떨어졌다는 것은 시장에서 빚 갚은 능력을 전보다 낮춰 본다는 것이고, 그건 그 기업의 자금조달이 어려워질 것을 의미합니다. 자금조달이 어려워진다는 것은 기업의 생존과 직결되는 아주 중요한 이슈입니다. 사람이 생명을 유지하는 것은 피가 돌기 때문이고 기업이 생명을 유지하는 것은 돈이 돌기 때문이거든요. 자금조달이 어려워지면 돈의 흐름에 문제가 생기고 결국 기업의 생명이 위협받게 됩니다.
물론 신용평가사들이 LG디스플레이의 신용등급을 떨어뜨린 것은 아닙니다. 떨어뜨리겠다고 예고한 것도 아니죠. 문자 그대로 현재의 신용등급인 AA-가 앞으로도 유지될 가능성이 '부정적' 이라고 판단한 겁니다. 하지만 이건 신용평가사들의 논리일 뿐입니다. 회사채 등 신용시장에서 '부정적' 전망은 '절반'의 등급 하락으로 받아들여지죠. 그리고 신용평가사들 역시 실무적으로는 이 등급 전망(Outlook)이라는 것을 0.5 노치(notch) 쯤의 등급 조정으로 다루고 있죠.
LG디스플레이의 AA-등급은 여전히 높은 등급입니다. 이론적으로는 매우 우량한 회사들만 받을 수 있는 등급입니다. 그런데 한 노치 떨어지면 A+등급이 되죠. A등급 역시 꽤 우량한 회사들이 받는 등급 맞습니다. 하지만 AA등급과 A등급은 엄연히 다르죠.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AA등급이 아니면 장기 회사채를 원활히 발행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금리가 높아지는 건 당연하고요, 회사채가 시장에서 소화되기가 여의치 않습니다. 국내 회사채 대부분은 기관투자가들이 매입을 하는데, 큰 기관투자가들은 A등급 이하 채권을 잘 안 사려고 하거든요. 이건 우리나라 회사채 시장의 구조 문제에서 기인한 현상이니 본 글에서는 더 이상 언급하지 않겠습니다.

LG디스플레이의 신용도 하락은 좀 심각해 보입니다. 올해 초에 이미 AA에서 AA-로 내려 앉은 것인데 해가 바뀌기도 전에 다시 한번 떨어질 처지에 놓은 거잖아요. 기업의 신인도가 아주 빠르게 나빠지지 않는 한 이런 일은 거의 없습니다. 게다가 솔직히 말해서 LG디스플레이에게는 지금의 신용등급도 좀 과해 보이거든요. 신용평가사들이 그나마 봐주고 있는 거라고 봅니다. 차마 한 해에 두 번 등급을 내리지는 못하겠으니 원칙대로 하면 내려야 하는 등급을 유지시켜주고 있을 겁니다. 신용평가사는 투자자를 위해 존재하는 자본시장의 신호등이지만, 국내 신용평가사들은 좀 기업 입장을 많이 고려하는 편입니다. 신용평가 수수료를 투자자가 아닌 기업에게 받으니 그렇겠죠.

위 표는 한국기업평가가 디스플레이산업에 대해 적용하고 있는 신용평가 방법론을 요약한 표 중 하나입니다. 신용등급을 매기는 데는 그 기업의 사업적인 역량과 재무적인 역량을 함께 고려하는데, 그 중 재무역량을 평가하는 요소들과 등급을 매핑하는 표라고 보시면 됩니다. 신용평가가 기계적인 작업이 아니고 평가자의 고도의 판단력이 가미되는 것이라 방법론대로 등급이 나오지는 않습니다만, 그래도 저 표에서 크게 어긋나면 좀 이상한 것이죠.
또 하나 염두에 두셔야 할 게 있습니다. 국내 평가사들은 신용등급을 매길 때 재무적 역량보다 사업역량을 더 중시합니다. 재무역량은 아무래도 숫자로 표시되는 게 많지만 사업역량은 정성적인 평가가 많이 들어갑니다. 전문적인 영역이라고 볼 수 있죠. 하지만 그 만큼 인간의 손이 많이 타게 돼서 논리적이지 못한 부분도 많습니다. 반면 글로벌 신용평가사인 S&P나 무디스는 재무적인 항목에 대해 상대적으로 엄격하게 적용하는 편입니다.
사업역량을 놓고 LG디스플레이 이야기를 하자면 전혀 다른 논리와 근거로 강한 반박이 들어올 수 있습니다. 그 싸움을 제가 할 이유가 없죠. 명백하게 숫자로 나타나는 재무항목만 한번 보겠습니다.
우선 EBITDA마진으로 표시되는 수익성입니다. AA등급을 유지하려면 20% 이상은 돼야 합니다. 안타깝게도 LG디스플레이의 EBITDA마진은 2015년 이후 단 한 차례도 20%를 넘긴 적이 없습니다. AA등급을 유지하고 있던 시절에도 10%대 중반을 넘어가지 못했습니다. A등급 기업 수준이었죠. 그리고 최근 2년은 한 자리 마진율로 떨어졌습니다. BBB등급 수준이죠.

신용등급은 어느 분기, 어느 해의 지표로만 평가하지 않습니다. 영어로는 'through the cycle(TTC)'이라고 해서 경기가 오르고 내리는 주기 전체를 통틀어 평가한다고들 합니다. 기업 실적이 좋아지거나 나빠져도 즉각적으로 등급이 오르내리지 않죠. 그렇다고 해도 LG디스플레이는 좀 심합니다. 디스플레이 산업은 주기가 다른 산업에 비해 빠릅니다. 주력 상품의 교체가 빠르죠. 5년이면 2회 이상의 주기 회전이 있었을 겁니다. 사이클이 두 번 도는 동안 수익성은 등급을 만족시키지 못했죠.
커버리지 지표라는 게 있습니다. 회사가 창출하는 현금흐름으로 차입금과 이자를 얼마나 부담할 수 있는지 그 능력을 보는 지표입니다. 디스플레이 산업에는 차입금과 이자 외에 설비투자가 추가됐네요. 설비투자에 그 만큼 많은 돈이 정기적으로 들어가는 산업이라는 의미겠지요?
순차입금이 EBITDA의 50% 이하여야 AA등급으로 자격이 있습니다. 순차입금이 그 기업이 6개월동안 창출할 수 있는 현금흐름을 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죠.

LG디스플레이는 그 기준에 한참 못 미칩니다. AA등급이던 시절에도 역시 그랬습니다. 지난해에 2.9배, 올해 9월말 현재로는 무려 9.6배로 그 비율이 급격히 치솟았습니다. 나빠지는 속도도 속도거니와 앞으로 당분간 고공비행을 한참 더 할 것 같다는 게 더 걱정스럽습니다. 언제쯤 순차입금이 연간 EBITDA의 절반 수준으로 떨어질 수 있을까요. LG디스플레이의 실적이 엄청나게 좋아지거나 차입금을 대거 상환해야 가능한데 말입니다. 순차입금 커버리지 비율로는 이미 BBB등급에도 미치지 못합니다. 상당히 민망합니다.
EBITDA/Capex 지표를 볼까요. 연간 지출하는 설비투자가 EBITDA의 얼마를 차지하느냐를 보는 건데요. 연간 EBITDA가 설비투자의 1.25배는 넘어야 AA등급을 받을 수 있습니다.

최근 5년을 통틀어 딱 한 해 2015년에 그 조건을 충족했습니다. 이후로는 줄곧 하락했죠. 2017년 이후로는 EBITDA 전체를 다 설비투자에 써도 돈이 부족합니다. 버는 돈으로 투자를 충족할 수 없다면, 당연히 있는 자산(현금 포함)을 털어서 충당하거나 외부에서 자금을 끌어들여야 하겠죠. 빚이 늘어날 수 밖에 없습니다.
세 가지 카테고리로 이루어진 재무역량 평가에서 마지막은 레버리지 지표입니다. 부채비율과 차입금의존도로 측정을 합니다. 부채비율은 자기자본 대비 부채의 부담을, 차입금의존도는 자산에서 차입금이 차지하는 정도를 말하죠. AA등급 요건은 부채비율 50% 이하, 차입금의존도 20% 이하입니다.

다른 재무지표에 비해 좀 낫습니다. 부채비율이 최근 5년간 AA등급 기준에 미치지 못하긴 했지만 그래도 2017년까지는 그 부채비율이 차입금 때문은 아니었습니다. 차입금 의존도가 20% 아래였습니다. 그런데 2018년 이후 차입금이 빠르게 늘고 있습니다. 9월말 현재 자산총액의 30%를 차지합니다. 두 등급 모두 A도 아니고 BBB등급에 가까이 가 있습니다.
LG디스플레이가 AA등급에 어울리지 않는 재무지표들을 갖고도 그동안 그 등급 군에 속할 수 있었던 것이 사업적인 역량이 재무적인 약점을 보완하고도 남을 만큼 뛰어났기 때문이라고 한다면 할 말이 없습니다. 우리나라 대표 디스플레이 기업이라는 데는 당연히 동의하지만, 사업역량이 아주 뛰어났다면 최근과 같은 재무지표의 추락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LG디스플레이의 신용등급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요소가 하나 더 있습니다. 바로 40% 가까운 지분을 들고 있는 LG전자의 후광효과 입니다. 여차하면 LG전자가 지원을 할 수 있다는 가능성 때문에 LG디스플레이는 자체적인 채무상환능력보다 1노치 정도 높은 등급을 받고 있습니다. 혼자의 힘으로는 현재 A+등급 정도의 상환능력 뿐이라는 것이죠.
신용평가사는 말합니다. 신용등급은 지금의 재무구조와 실적으로 매기는 것이 아니라고요. 향후 몇 년간의 실적과 재무상태를 추정해 등급을 준다고 합니다. 그걸 'forward looking'이라고 하지요. 재무제표를 읽는 사람들(재읽사)은 믿지 않습니다. 신용평가사의 추정 능력이 증권사 리서치실보다 뛰어나다고 절대 생각하지 않거든요. 증권사들도 1년 이후를 맞추지 못하는데, 한 애널리스트가 여러 업종을 담당하고, 추정의 기술도 부족한 신용평가사가 그보다 먼 미래를 보고 등급을 준다고요?
지금 LG디스플레이의 지표가 분명히 말하고 있습니다. 2~3년 전 당신들이 주었던 등급은 틀렸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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