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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섭 회장은 KAIST 재직 시절인 2000년 연구개발 전문기업 제넥셀을 설립했고, 2005년 7월 의료기기업체 세인전자와 포괄적 주식교환을 하면서 우회상장에 성공했습니다. 2006년에는 포괄적 주식교환으로 에이프로젠을 제넥셀세인(세인전자의 새 이름)의 완전 자회사로 편입합니다. 2006년에는 의료기기 생산시설을 제넥셀메디칼로 이전하면서, 제넥셀세인은 판매만을 담당하게 되었죠.


서브프라임 금융위기가 전 세계를 덮친 2008년 제넥셀세인에 큰 변화가 찾아옵니다. 2월에 에이프로젠과 제넥셀을 합병(제넥셀 소멸)하고, 3~4월에 100억원의 유상증자 참여와 115억원의 구주 매입으로 한국슈넬제약(슈넬생명과학, 현 에이프로젠바이오로직스)을 인수합니다. 주주우선 유상증자로 5월에 99억 5000만원을 확보한 뒤 6월에 대덕테크노밸리 산업용지를 56억원에 매입합니다. 7월에는 청계제약을 슈넬생명과학과 함께 인수(유상증자 10억원 포함 95억원)합니다. 당시 명분은 연구개발 기업인 제넥셀세인의 매출 변동성이 크다는 약점을 슈넬생명과학과 청계제약을 통해 보완한다는 것이었습니다.


2008년 제넥셀세인은 별도 매출액이 36억원에 불과했고, 당기순손실이 413억원에 달했습니다. 연속 적자로 결손이 심각했던 것도 문제였지만 매출액이 30억원 미만으로 떨어지면 상장폐지될 수 있었습니다. 상장유지 요건을 충족하기 위한 조치가 필요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두 회사를 인수하면서 제넥셀세인의 연결 매출액은 400억원으로 커졌지만, 보유 유동성은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고, 적자는 여전했습니다.


그런데 불과 6개월이 지난 2009년 1월 제넥셀세인은 크라제인터내셔날과 합병을 결정합니다. 김재섭회장 부부가 제넥셀세인의 지분을 매각하기로 한 것이죠. 물론 이 계약은 불발로 끝났지만, 제넥셀세인은 결국 4월에 한국기술산업에 팔리죠.


언뜻 이해되지 않는 김재섭 회장과 제넥셀세인의 행보에 대해 회사가 공시를 통해 설명한 내용이 있습니다. 슈넬생명과학을 인수했지만 영업실적 개선이 어렵다고 판단한 김재섭 회장은 주사제 제품만을 보유한 슈넬생명과학과 주력 제품이 겹치지 않는 청게제약 인수를 결정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청계제약 인수 잔금을 치르기 전인 2008년 9월 리먼 브라더스의 파산과 함께 금융위기가 닥쳤고 그 여파로 제넥셀세인은 자본시장에서 자금조달이 어려워졌죠. 게다가 금융권의 대출 상환 요청으로 연말에는 보유 현금이 바닥나는 상황에 처했습니다. 극심한 자금난에 봉착한 제넥셀세인은 슈넬생명과학을 다시 매각하려고 했지만, 금융위기 하에서 재매각 역시 쉽지 않았다고 합니다. 게다가 제넥셀세인의 핵심사업인 전자혈압계 사업 역시 총 매출의 90%를 차지하던 독일의 브라운(Braun)사가 전자혈압계 사업에서 철수하는 바람에 거래처를 잃고 맙니다.


김재섭 회장은 개인적으로 6억원을 차입해 회사에 대여해 직원들 월급을 지급하는데 보탰다고 합니다. 하지만 만기가 돌아온 외화사채 300만 달러(사채권자: 홍콩 피라루크펀드)를 갚을 길이 없었죠. 김재섭 회장은 피라루크 펀드를 만나 “제넥셀세인의 자산 및 계열사를 최대한 빨리 매각해 100만 달러를 먼저 상환할 것”을 약속하는 각서를 쓰고, 3개월의 상환 시한 연장을 받은 뒤, 유가증권시장 상장기업인 슈넬생명과학 대신 코스닥 상장사인 제넥셀세인 매각을 추진합니다.


이때 만난 매수처가 수제 햄버거 프랜차이즈인 크라제인터내셔날이었고, 김재섭 회장은 계약금 20억원을 모두 제넥셀세인에 대여해 피라루크펀드에 10억원을 상환하게 했고, 나머지 10억원은 직원 월급과 운영비로 사용합니다. 크라제인터내셔날은 코스닥 시장 우회 등록이 목적이었습니다. 제넥셀세인에 90% 감자와 합병 결의를 요구했죠. 그러자 제넥셀세인의 주주들이 강력히 반발했고, 김재섭 회장은 매수자측의 잔금 미납을 구실로 크라제인터내셔날과 맺은 경영권 양수도계약의 파기를 선언합니다.


경영권 양수도계약 파기 공시가 나가자 즉시 연락을 해 온 곳이 한국기술산업이었고, 한국기술산업은 감자나 합병을 요구하지 않는 것은 물론 바이오벤처 자회사들의 사업을 제넥셀세인에 양도하겠다고 약속했다고 합니다. 김재섭 회장은 220억원을 받고 제넥셀세인을 넘겼죠. 김재섭 회장은 그후 배임 및 횡령 혐의로 피의자 조사를 받았지만 무협의 처분을 받습니다.



그런데, 이 같은 매각 경위와 어울리지 않는 팩트(fact)들이 있습니다. 한국기술산업이 제넥셀세인을 인수하기 위한 자금이 대부분 제넥셀세인 자회사인 슈넬생명과학에서 나왔고, 슈넬생명과학에 그 자금을 대준 곳은 팝인베스트먼트라는 신설회사였죠. 게다가 슈넬생명과학은 인수한 한국기술산업의 신주인수권부사채와 회사채를 제넥셀세인에 넘기는 대가로 제넥셀세인의 기존 핵심 자산들을 빼내 왔습니다. 김재섭 회장은 제넥셀세인을 잃었지만, 그 안에 있던 핵심 자산들을 거의 다 가져온 셈이고 슈넬생명과학에서 바이오사업을 이어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한국기술산업의 제넥셀세인 인수자금의 최종 출처로 보이는 팝인베스트먼트는 2008년 4월에 설립되었습니다. 제넥셀세인이 한국슈넬제약 인수를 추진하던 시기입니다. 팝인베스트먼트는 슈넬생명과학이 발행한 신주인수권부사채 170억원을 인수했을 뿐 아니라, 슈넬생명과학으로부터 한국기술산업 신주인수권부사채 30억원어치를 매입하기도 했습니다. 자본금 5000만원의 신설회사가 그 많은 돈을 어디서 구했을까요?



팝인베스트먼트는 2009년말 170억원의 슈넬생명과학 신주인수권부사채를 보유하고 있었고, 170억원의 단기차입금을 안고 있었습니다. 단기차입금은 어떤 개인으로부터 빌린 것이었는 것, 누군지 밝히지 않았습니다. 개인차입금이라고 표시한 것은 팝인베스트먼트의 주주가 아니었다는 것이죠. 한국기술산업에게 170억원을 빌려주기 위해 슈넬생명과학이 발행한 신주인수권부사채를 사줄 170억원을 빌려줄 동기가 있고, 당시 그 만한 현금을 보유할 수 있었던 개인은 누구였을까요?


팝인베스트먼트는 3인의 주주로 구성되어 있었고, 최대주주는 40%의 지분을 보유한 유원형씨였습니다. 있습니다. 사내이사와 감사를 역임한 주요 경영진이기도 했죠. 김재섭 회장의 개인회사 지베이스에도 유원형이라는 이름을 가진 분이 있습니다. 김재섭 회장의 형 김정출씨에 이어 2016~2017년 대표이사를 지냈고, 지금은 기타비상무이사로 있습니다. 팝인베스트먼트와 지베이스의 유원형은 동일인입니다.


팝인베스트먼트는 단지 한국기술산업의 제넥셀세인 인수자금을 위한 자금창구가 아니었습니다. 팝인베스트먼트는 김재섭 회장이 슈넬생명과학의 최대주주가 되어 그룹의 총수 자리를 유지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합니다. 팝인베스트먼트는 2013년 아이벤트러스로 상호를 변경했고 이듬해인 2014년 1월 에이프로젠바이오로직스와 흡수합병되어 해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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