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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넬생명과학(현 에이프로젠바이오로직스)은 연 200억원대의 매출을 기록하는 업체였지만, 이익은 거의 내지 못했습니다. 매년 적자가 발생하면서 결손이 누적되고 있었죠. 영업활동으로 현금을 창출하지 못해 보유자산 매각과 외부 조달(유상증자, 전환사채 발행 등)로 자금조달에 나설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슈넬생명과학은 어디론가 지속적으로 자금을 대여해 주고 있었습니다. 2014년말에는 그 규모가 101억원에 달했죠. 주로 자금을 빌리는 곳은 다름 아닌 신약개발업체 에이프로젠(비상장사)이었습니다. 김재섭 회장 부부가 최대주주(44.9%)인 에이프로젠은 2014년말 현재 슈넬생명과학의 지분 9.33%를 보유한 단일 최대주주였고, 슈넬생명과학도 에이프로젠 지분 6.61%를 보유하고 있었습니다.

슈넬생명과학은 코스피 상장사의 지위를 갖고 있었기 때문에 전환사채 발행이나 유상증자를 통한 자금조달을 쉽게 할 수 있었고, 그렇게 조달한 자금의 일부는 매출이 사실상 발생하지 않는 비상장사 에이프로젠에 연구개발비 조달 등을 위해 흘러 들어갔습니다.
결손이 쌓인 슈넬생명과학은 결국 2015년 6월 보통주 2주를 1주로 병합하는 무상감자를 실시합니다. 자본금이 804억원에서 402억원으로 감소하는 대신에 결손금이 474억원에서 61억원으로 줄었죠. 하지만 극약처방의 효과는 그때 뿐이었습니다. 슈넬생명과학의 결손은 지속적으로 증가했고 에이프로젠바이오로직스로 이름을 바꾼 후에도 그 흐름이 바뀌지 않아 2024년말 현재 무려 2346억원에 달합니다. 그런데 에이프로젠바이오로직스의 자본총계는 2024년말 현재 3689억원에 달합니다. 결손이 늘어만 가는 회사의 자본이 늘어나고 있다면, 그건 주주들이 지속적으로 증자를 해 주었다는 얘기죠.
무상증자를 단행한 2015년에 슈넬생명과학에서 지베이스로 에이프로젠 지분이 이동합니다. 슈넬생명과학은 2014년에 9.9%의 에이프로젠 지분 중 3.3%(121만주)를 종속기업인 한국슈넬에 매각해요. 그리고 2015년 한국슈넬은 그 지분을 약 27억원에 지베이스로 매각합니다. 슈넬생명과학도 에이프로젠 보유지분 전량을 약 53억원에 지베이스로 넘깁니다.

슈넬생명과학이 보유하고 있던 에이프로젠 지분은 약 27억원의 웃돈이 붙어 지베이스로 팔렸습니다. 슈넬생명과학 연결손익계산서에 관계회사주식처분이익 약 27억원이 생긴 셈이죠. 지베이스로의 지분 매각이 슈넬생명과학 수익성을 다소나마 개선시킨 효과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슈넬생명과학에는 아픈 손가락이 하나 더 있었죠. 바로 자회사 청계제약이었습니다. 적자가 누적되고 있던 청계제약은 슈넬생명과학 연결실체의 적자를 키우는 존재였습니다. 슈넬생명과학은 2013년에 청계제약이 유형자산과 무형자산을 94억원에 매입하고, 대여금 30억원을 출자전환해 총 124억원의 현금유동성을 지원했죠. 2015년에는 청계제약의 자회사였던 한국슈넬에 흡수합병시켰습니다.
이앤엠레볼루션이라는 신재생에너지개발회사가 있습니다. 2013년에 신설된 이 회사의 신주인수권부사채를 청계제약을 통해 두 차례에 걸쳐 각각 16억원과 20억원어치 사줍니다. 2014년에는 청계제약이 신주인수권을 행사해 57.63%의 지분을 보유해 슈넬생명과학 계열사가 됩니다. 매출이나 이익은 전혀 발생하지 않는 회사였죠. 슈넬생명과학의 대여금을 받아 연명하던 곳 중 하나입니다. 2015년에 40억원의 현금을 대여해 주었습니다.
2016년 감사보고서를 보니 이앤엠레볼루션의 주주가 한국슈넬(청계제약을 흡수합병한), 그랑비즈, 지베이스 3곳이었고, 그랑비즈는 2007년 설립된 컨설팅업체로 김재섭 회장의 형인 김정출이 이사였습니다. 슈넬생명과학이 김재섭 회장 일가의 회사에 BW 인수로 자금을 지원하고, 자회사로 편입까지 한 것이었죠.
이앤엠레볼루션은 이후 에이지티로 사명을 변경했고 2022년에 에이프로젠아이앤씨로 합병되었습니다. 2019년에 마지막 감사보고서가 공시되었는데 그랑비즈가 55.93%, 지베이스가 16.70%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었죠. 부채가 자산을 33억원 초과하는 완전 자본잠식 상태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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